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글사글 May 22. 2020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오랜만에 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보았다. 안부를 여쭙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 좋은 전화를 끊었다. 언제나처럼 손녀를 향한 할머니의 목소리는 다정했고 멀리 있어도 느껴지는 온기에 마음도 따뜻해졌다.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도 누군가에게 ‘틀딱충’이라 조롱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혐오가 만연한 이 사회가 답답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대부분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정말 당연하게도,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는다. 현재 청년 세대가 노인 세대에 가하는 혐오들이 지속되면 결국 그 혐오는 미래의 본인에게 돌아간다. 우리가 알고 모르는 사이에 가하는 혐오들은 부메랑이 되어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도 이 혐오를 멈춰야 한다. 분명히.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 장년의 88%가 노인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지하철에 타기만 했을 뿐인데 꼰대 냄새가 난다는 둥 노인을 향한 청년층의 가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버스를 탔는데 한 할머니께서 행동을 느리게 하시니까 버스 기사님이 할머니를 다그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늘진 할머니의 얼굴을 보자 마음이 아팠다. 혐오는 이러한 인격적 모독에서 그치는 것 뿐만이 아니다.

 최근 코로나 사태에 일어난 마스크 대란만 보아도 노인들은 마스크 재고량을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기 어려워해 마스크 구매에 어려움을 표출한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에겐 편하고 쉬운 것이지만 노인들에겐 정보의 격차로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일이다. 주거 환경은 어떤가? 돈이 있어도 부동산 측에선 ‘치매’, ‘고독사’ 등을 이유로 노인 세입자를 꺼린다고 한다.

국토교통부 2020 업무계획서

정부 계획서만 봐도 노인을 위한 거주 정책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노인의 일자리 확대에 힘쓴다고 하지만 IT산업 관련 직종을 업으로 삼은 노인을 본 적 있는가? 코딩, 드론 등 청년도 익숙지 않은 기술을 배워도 노인이 그 분야에 취업하기는 쉽지 않다. 노인은 도전을 못 하는 게 아니다.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한 것이다. 노인의 안정적인 생애 보장을 위해 노인 교육 확대, 공공 주거 지원, 일자리 보장 등 여러 정책이 지원되어야 한다.

 노인은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가 아니다. 100만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만 봐도 너무나 도전적이고 멋진 삶을 살고 계신다. 우리는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노인의 이미지를 지운 후 활기차고 세련된 노인의 이미지를 새로 그려야 한다. 그러려면 ‘틀딱충’, ‘꼰대’ 등 노인을 향한 혐오 표현을 지양해야 한다. 혹여 노인과의 생각 차이로 인해 답답하거나 화가 나도 특정 단어를 언급하며 집단 전체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노인과 청년이 함께하는 축제나 행사가 많아질 것이다. 청년과 노인이 함께하는 사회가 되고, 사회에 걸맞은 정책은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모든 일의 시작은 인식 개선에 있다. 하나는 둘이 되고, 마음이 많아질수록 힘은 커진다. 개인의 인식 개선은 더 큰 힘을 불러 모아 혐오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제는, 멈출 때가 되었다.

이전 03화 혐오로 뒤덮인 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