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져 있었다. 착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이라는 옛 어른들의 계율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말하고 행동했고, 그것은 나에게 무한한 뿌듯함을 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니, 친절하게 대해 주어도 나에게 나쁘거나 악하게 돌아오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내가 도움을 준 사람들은 그 도움이 계속되자,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더 바라고 원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이 권선징악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착하게 대해준다고 반드시 선의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악하게 대한다고 반드시 악의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진 피터팬처럼 좀처럼 어른답지 못한, 중간쯤은 어른아이로 남은 상태로 자라 버렸다. 나는 아직도 착하게 대하면 사람들이 나에게 선의로 다가올 거라고 믿고 있다.
일례로, 내가 20대 초반에 힘들게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고 있을 때였는데, 한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고 내게 부탁해 왔다. 나는 친구가 힘든 상황에 처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때 당시 한 달 치의 월급을 모두 그에게 빌려주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 돈을 술값과 담뱃값으로 모두 날려버렸다. 그러고는 내게 돈을 갚으려 들지도 않았다. 그 돈은 내가 한 달 동안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이었는데, 나도 좀처럼 한꺼번에 쓰기 힘든 큰돈이었는데, 그 녀석은 그 돈을 그렇게 한 번에 써 버리고 갚지도 않다니...... 나는 그 친구에게 큰 실망을 하게 되었고, 그 뒤로 자연스레 그 친구와의 관계는 멀어졌다.
나는 그 뒤로도 많은 사람들과 돈거래를 하기는 했지만, 번번이 돈을 갚지 않거나 상환을 차일피일 미루는 등 나를 실망시키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나는 이제는 확실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려고 하는데, 이는 내가 호구로 전락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요즘도 지인들과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으면 내가 종종 돈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자꾸 내가 돈을 내다보니, 마치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다 보면 언젠가 사람들도 내 좋은 뜻을 이해해 줄 거라는 생각에 돈을 내곤 했는데, 한편으로는 손해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내게 떠오른 방법은 더치페이를 하는 것이었다. 서로가 먹고 마신 만큼 비교적 정확하게 나눠서 계산을 하는 것이다. 나는 더치페이가 모두에게 좋은 계산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에게 특별히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아직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키덜트다. 그러나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조금씩 현명하게 행동하고 처신해서 나의 이런 특성을 커버해 나가려고 한다. 그것이 이 험난하고 엄혹한 세상 속에서 나를 보호하고 지키는 일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