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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하일기 07화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2025년 1월 12일 일요일

by 제갈해리
한일톱텐쇼에 출연한 일본 가수 나카시마 미카.

나카시마 미카,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부두에서 괭이갈매기가 울어서야

파도에 밀려밀려 떠올라 사라지는

과거나 조아먹고 저 멀리 날아가라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살구꽃이 내 생일에 피어서야

나뭇잎 사이 내린 빛살에 잠든다면

벌레의 껍질과 함께 흙이 될 수 있을까

박하사탕 항구의 등대

녹슬은 육교와 버려진 자전거

나무로 지어진 역의 난로 앞에 서서

어디로도 떠날 수 없는 내 마음은

오늘은 어제와 다를 바 없다는 걸

내일을 바꾸려면 오늘을 바꿔가야 해

알고 있어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마음이 텅 비었기 때문이야

채워지지 않아서 울고 있는 이유는

채워지고 싶다고 바라기 때문일까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신발끈이 풀렸기 때문이야

매듭을 고치는 건 아직은 서툴러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또 마찬가지야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소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야

침대 위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나

과거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어

컴퓨터의 희미한 불빛

윗층에서 들려오는 달그락 거림

인터폰의 울려대는 벨소리와

귀를 틀어막은 새장 속의 소녀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고 있는

좁디좁은 단칸방의 돈키호테

어차피 그 끝은 가혹할 텐데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차가운 사람이라 들었기 때문이야

사랑받고 싶다며 울고 있는 이유는

사람의 따스함을 이미 알고 있어서야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아름답게 당신이 웃어주니까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이유는

너무 진지하게 세상을 살아가서일까

내가 죽으려고 생각했던 건

아직 그대를 만나지 않아서야

그대 같은 사람이 태어난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좋아하게 되었어

그대 같은 사람이 살아갈 이 세상이

조금이나마 기대가 되곤 해




얼마 전, 한일톱텐쇼에서 한국 최초의 TV 무대를 선 보인 나카시마 미카. 한국에서는 <눈의 꽃>으로 유명한 그녀. 그녀는 2010년 '이관개방증'이라는 병을 앓고 활동을 전면 중단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관개방증은 귀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의도한 것보다 크게 들리는 병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노래해야 하는 가수에게는 치명적인 병이다. 나카시마 미카의 이관개방증은 심각한 수준으로, 양쪽 귀가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완치 또한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카시마 미카는 무대 복귀의 의지를 보였고, 결국 싱글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런 그녀의 한국에서의 최초 TV 무대. 그것도 자신이 이관개방증을 앓았던 경험을 고스란히 담아낸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을 불러 청중들의 마음을 한겨울 눈 녹듯이 녹여낸 그녀. 그녀의 아픔과 상처를 공감하기에 오늘 나는 나만의 또 다른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이라는 글을 쓴다.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돌이켜 보면 인생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있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 성소수자인 동성애자라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살 시도를 했을 무렵이었던 것인지, 대학 동기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조현병이 찾아왔을 무렵이었던 건지, 아니면 수많은 돈을 유흥비로 탕진하고 수천만 원의 빚이 쌓여 있는 최근 무렵인 것인지 인생의 무게는 매 순간 나를 옥죄고 힘들게 하고 있다. 어찌 보면 내 스스로 인생의 무게를 무겁게 만들고 있다는 아이러니도 있겠지만 말이다.


처음 자살 시도를 결심했을 때는 23살의 나이였는데, 그때는 사랑의 열병에 빠져 그런 막연한 결심을 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나를 좋아하지 않고 다른 이를 사랑하는 남자 후배에 대한 원망 내지는 절망 때문이었다. 그때 나와 절친한 여자 후배와 연인이었던 녀석의 남다른 친절과 배려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 나는 나에게만 친절하면서도 부드럽게 대할 줄 알았던 남자 후배 녀석이 나 말고도 여자 후배에게도 똑같은 마음을 주고 있던 상황에 너무나 속상하고 화가 났던 것 같다. 그 속상함과 분노는 원망과 절망으로 바뀌었고, 더 이상 나를 바라봐주지 않는 그 녀석에게 나를 바라봐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사약(死藥)의 성분인 부자가 든 '정로환'이라는 약을 60알가량 한꺼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차차 시간이 지나자, 환각 증세와 유사하게 사물이 겹쳐 보이기 시작하더니, 나는 어지러움을 느끼고 집 근처 공원에 쓰러졌다. 그런 나를 발견한 것은 아버지였다. 그때 당시 나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내 사랑(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집착이었는지도 모르겠다)을 알아 달라는 생각이 먼저였던 것 같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그 새벽에 친구들에게 호출 메시지를 보냈다. 내 메시지를 이상하게 생각한 고등학교 동창 한 친구가 아버지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집에 없는 것을 알고 당장 집 근처를 수색하고 다닌 끝에 나를 발견했다. 아버지는 당장 나를 데리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조치를 취했고, 나는 먹은 약을 모두 토해내고 나서야 환각 증상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먹은 약이 '정로환'이라는 소화제였는데, 나는 그 소화제를 먹고 나서 변의를 느꼈다. 내가 변이 마렵다고 하자, 병원 응급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내가 또다시 자살 시도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응급실 침대가 있는 자리에서 변을 보게 했다. 그때 나는 죽을 결심을 했을 때와는 반대로, 살려고 변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어이없게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죽으려고 결심했던 게 한없이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죽으려고 결심한 만큼의 힘으로 더 기를 쓰고 살 걸 하는 후회와 자조가 밀려왔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아버지와 친구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었다. 우울증이 심했던 종전의 나에 벗어나 다음 해 군대에 입대하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했다. 군대에 입대하면서 다시 우울증이 심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서 적절한 관심과 위로를 받았기에 잠시나마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죽으려고 생각한 순간은, 내가 대학 선배, 동기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만취해 술주정을 부려 그 뒤로 공개적으로 따돌림을 당한 일로 충격을 받아 망상 장애가 와서 조현병에 걸린 때였다. 그때 나는 학교에서 천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선배, 동기들에게 신망이 두텁고 인기가 많았었는데, 단 한 번 '대면식'이라는 회식 자리에서 주사를 부려 그들 모두의 인심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 그들은 나를 공개적으로 따돌리고 아는 척조차 하지 않았고, 나는 한순간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생각에 패닉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때 나는 패닉 상태가 되면서 망상 장애를 앓았는데, 국가의 민간인 사찰이 자행되어 내가 국가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나는 당시 (지금에 와서는 왜 찾았는지 모르겠지만) 안전가옥을 찾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가려고 시도했다가 경호원과 경찰에게 쫓겨났고, 결국 근처 레스토랑 담을 넘어 들어가 무단침입으로 경찰에 붙잡혀 종로 경찰서에 연행되었다. 그때 나는 보통 사람들과의 반적인 대화가 도저히 불가능했고, 경찰의 취조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경찰은 종로 경찰서로 나의 가족들을 소환했고, 어머니의 동의로 나는 결국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었다.


그때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절망적이라면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갑자기 영문도 모르게 경찰들에게 붙잡혀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좋은 의료진과 환자들을 만나고, 적절한 약 처방과 다양한 치료 활동을 통해 나는 불과 3개월 만에 조기 퇴원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나는 만성 질환처럼 매일 조현병 약을 복용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예방 주사를 맞고 있다.


이제는 정신과에 가는 것이 익숙해져서 내가 딱히 불행하다거나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약간 마음 상태가 불편한 것이겠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조현병 하면 사회적인 악질 범죄가 떠오르는 정신 질환이지만, 정기적으로 치료 약을 복용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면 남들처럼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나는 꾸준히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내 병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순간, 그때마다 적절한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숨 쉬고 살아가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요즘 즐겨 듣고 있는, 나카시마 미카의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처럼 죽고 싶은 절망적인 순간에도 희망을 조망할 수 있는 삶의 아름다움이라든가, 인생의 소중함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자살시도를 감행하고 약을 입에 털어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장이 변을 배출하기 위해 나에게 변의를 느끼게 했던 것과 같이, 내가 종로 경찰서에 연행되고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강제 입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한 만성 질환 환자에 불과하다는, 비교적 가벼운 생각처럼 인생은 죽고 싶은 순간의 연속일지라도 언제나처럼 숨 쉬고 살아가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의 연속은 아니었을까.


나카시마 미카,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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