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목상대 여몽과 대기만성 황충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성공에 목말라 있다. 좀 더 일찍 이른 나이에 성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청년기를 지나 중장년기에 접어들게 되면 뭔가에 쫓기듯 성과를 내기 위해 안절부절못하곤 한다. 그러나, 실상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면서 작은 성과에만 주목하다가는 다가올 큰 목표를 이뤄내기 어렵다. 눈앞의 작은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끈기 있게 기회를 기다리면서 자신을 갈고닦아야 한다. 설사 그것이 늦은 나이가 된다고 할지라도. 성공에 늦은 나이란 없다. 성공이란 것은 내면과 외면의 성숙, 그것은 마치 과실이 안팎으로 점차 차오르고, 무르익어가는 것과 같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굳이 빨리빨리 재촉하지 않아도 가을볕에 감나무가 주렁주렁 영글어 가듯이 나이가 들어 큰 수확을 거두기도 하는 법이다.
여기, 나이가 들어 크게 성공한 삼국지의 두 인물이 있다. 그들은 바로, 괄목상대 여몽과 대기만성 황충이다. 여몽은 동오의 세 번째 대도독이었고, 황충은 촉한의 오호대장군 중 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오와 촉에 길이 남을 명장들이었는데, 이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나이가 차서 크나큰 성공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먼저, 여몽의 이야기를 해 보자. 여몽은 16살에 뜻을 세워 도적을 토벌하고, 곧이어 손책의 휘하에 들어간다. 손책이 죽자, 후계를 이은 손권의 장수가 되는데, 여몽은 용감무쌍한 장수였지만,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를 정도로 글자를 전혀 깨우치지 못한, 일자무식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는 상소를 할 때 글이 아닌 말로 하거나 부하에게 대필할 정도로 지식이 부족했다. 군주인 손권은 그런 여몽과 장흠에게 학문을 닦아 보라는 권유를 한다.
"자네들은 크고 작은 공을 많이 세웠지만, 학식이 부족하니, 공부를 좀 더 해서 견문을 넓혔으면 하네. 내가 자네들더러 박사가 되라는 것이겠나? 단지 과거의 것을 많이 알고 지냈으면 하네. 나는 어렸을 때 주역을 제외하고, 시경, 서경, 예기, 춘추좌씨전 등을 읽어봤고, 형님의 위업을 이어 군주가 되어 자네들보다 바쁘네만, 군주가 된 뒤에도 삼사와 병서를 정독한다네. 하물며 나도 이렇게 매일 공부를 하고 있는데, 자네들은 왜 공부를 하지 않는가. 여몽과 장흠 자네들은 군사들을 이끌거나 무예를 익힐 때 순발력과 판단력, 그리고 재치가 좋으니, 공부만 한다면 금방 늘 것이네."
그러면서 손권은 손수 옛 위인들의 독서 습관까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여몽은 그런 손권의 권유에 깨달음을 얻고, 주위 사람들 중 누구도 여몽에게 학문으로 이길 수 없는 경지까지 공부에 힘썼다.
어느 날, 주유가 죽고, 노숙이 주유를 대신해 대도독이 되어 육구로 가던 길에 여몽의 군영 아래를 지나가게 된다. 노숙은 평소 여몽을 얕보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이 여몽이 대단한 사람이 되었으니, 만나보라고 권해 여몽을 만나 함께 술을 마신다. 노숙은 여몽과 이야기를 나누다 달라진 여몽의 식견에 "옛날 오나라에 있을 무렵의 어린 아몽이 아니오."라며 놀라워했고, 여몽은 "선비와 헤어지고, 3일이 지나면 곧 다시 눈을 비비고 상대해야 합니다."라고 답한다. 이것이 바로,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는데, 오하아몽(吳下阿蒙)은 학식의 진보가 없음을 뜻하고, 괄목상대(刮目相待)는 크게 학식이 진보함을 뜻하게 된다.
이후, 여몽은 유비와의 형주 쟁탈전에서 형주 남부 3군(장사, 영릉, 계양)을 복속시키기도 하며, 노숙이 죽은 후에는 대도독의 자리에 올라 관우가 지키던 형주를 급습해 탈취하는 데 성공하고, 맥성에서 익주로 도망치려던 관우를 사로잡는 성과까지 올린다. 그 직후, 비록 병에 걸려 안타깝게도 죽음을 맞이하지만, 형주를 점령함으로써 동오의 영토를 넓히고, 삼국정립 과정에서의 기반을 닦는 데 일조한다.
한편, 이번에는 촉한의 장군 황충의 이야기를 해 보자. 노익장의 대표격 인물인 황충은 원래 형주목 유표의 수하로, 유표의 조카 유반을 수행하다가 유표 사후, 유표의 아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자, 장사태수 한현의 수하 장수가 된다. 적벽대전의 참패 이후, 조조가 형주에서 철수하고, 유비가 형주 남부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황충은 장사에서 유비군에 맞서 싸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명장 관우와 무예를 겨루게 되는데, 몇 백 합이 되어도 지치는 기색이 없이 용감하게 싸운다. 장사가 유비에게 점령되고, 유비가 자신의 집으로 찾아와 직접 설득하자, 유비의 휘하 장수가 된다.
익주 공방전에서 유비군의 선봉에 서서 유장의 군대를 섬멸하고, 유비가 입촉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 유비의 두터운 신임을 얻는다. 이후, 한중 공방전에서는 또 다른 노장 엄안, 책사 법정과 함께 조조가 보낸 위장 장합, 하후상, 한호에 대항하는 원군으로 참전한다. 황충이 출전을 자원할 때, 제갈량이 황충에게 "그 연세에 무리하시다가 돌아가십니다."라고 만류하자(제갈량은 일부러 자신의 계략에 황충이 말려들어 격노하도록 격장지계(激將之計)를 썼다), 두꺼운 활을 단숨에 꺾어서 아직 정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맹관에 도착해 위군을 상대로 교병계(驕兵計:적을 교만하게 만들어 방심하게 한 뒤, 유리한 상황에서 일거에 격파하는 계략)를 써서 일부러 패배하는 척하다가 일거에 위군을 섬멸해 버린다. 이어서 천탕산을 공격한 황충의 군대는 위군의 진영에 불을 질러 위군을 혼란에 빠뜨리고, 부장인 엄안은 당황하는 위장 하후덕의 목을 베는, 큰 전공을 세운다.
한편, 정군산은 조조가 가장 신임하는 위의 대장 하후연이 지키고 있었는데, 이때 제갈량이 다시 한번 격장지계로 황충이 나이 들었음을 들어 만류하자, 황충은 "염파(廉頗)는 80살이 되어서도 밥 한 말에 고기 열 근을 먹었고, 다른 제후들이 그 용맹이 두려워 감히 조나라를 넘보지 못했소. 나 황충도 염파에 비해 뒤지지 않소."라고 하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결국 제갈량은 황충의 출전을 허락하고, 황충과 엄안, 법정은 정군산으로 출전해 하후연에 대적한다. 황충은 하후연의 부장 두습이 지키던, 정군산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봉우리를 빼앗아 법정에게 맡겨 지리적, 정보적 우위를 점하게 한다. 열받은 하후연이 싸움을 걸지만, 산봉우리에서 전황을 지켜보던 법정이 흰 깃발을 세워 아직은 시기상조임을 알려 황충은 싸움에 응하지 않는다. 하후연의 군대가 지친 기색을 보이자, 법정이 빨간 깃발을 세우고, 이를 본 황충은 사전에 정해둔 신호였던 붉은 깃발을 보자마자 적진으로 돌격해 순식간에 하후연의 목을 베어버린다.
이렇게 한중 공방전에서 크나큰 공을 세운 황충은 유비가 곧이어 한중을 점령하고, 한중왕의 자리에 오르자, 관우, 장비, 조운, 마초와 함께 오호대장군에 임명되기에 이른다. 황충은 연의에서는 이릉대전에서 복병에 걸려 전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이릉대전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죽는다. 사후, 그에게 내려진 시호는 강후(剛侯)이며, 이는 일생을 용맹함으로 살아온 무장에게만 내려졌던, 삼국시대에서 상당히 드문 시호다.
역사서인,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서는 황충을 이렇게 평하고 있는데, "황충, 조운은 굳세고 사납고 씩씩하고 용맹하여 아울러 조아(爪牙:발톱과 어금니. 임금 호위무사, 용맹한 심복 등을 뜻한다)가 되었으니 관(灌), 등(滕)의 무리로다."라고 해서 황충과 조운을 유비의 발톱과 어금니라 평하며, 황충을 한고조 유방의 최측근이었던 관영과 하후영에 비유하면서 높이 평가하기까지 했다. 또, 촉의 신하인 양희는 《계한보신찬》에서 "장군(將軍, 황충)은 돈후하고 웅장하여, 적군의 선봉을 부수고 난국을 극복하였으며, 공업을 세운 당대의 재간꾼이었다."라고 극찬했다.
老將說黃忠(로장설황충) 노장이라면 황충을 말하니
收川立大功(수천립대공) 서천을 얻을 때 큰 공 세우네
重披金鎖甲(중피금쇄갑) 쇄갑을 엄중히 걸치고
雙挽鐵胎弓(쌍만철태궁) 양팔로 철태궁을 잡아당기니
膽氣驚河北(담기경하북) 담력은 하북을 뒤흔들고
威名鎮蜀中(위명진촉중) 위명은 촉에 가득하네
臨亡頭似雪(림망두사설) 죽을 때 머리는 눈처럼 희건만
猶自顯英雄(유자현영웅) 영웅의 모습이 더욱 드러나네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동오의 대도독 여몽과 촉한의 오호대장군 황충. 두 사람은 뛰어난 전술과 책략으로 적군을 섬멸하고, 자국의 영토를 크게 넓힌, 동오와 촉한의 대들보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청년시절에는 비록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중장년에 이르러 그 결실을 맺어 찬란한 빛을 발하기에 이른다. 두 사람의 인생에서 보았듯, 성공은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꾸준한 노력(여몽은 끊임없이 학문을 연마해 대도독 노숙을 놀라게 했고, 황충은 열심히 무예를 익혀 노익장 염파에 못지않았다)이 없었다면 나이가 들어서 그 큰 성공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괄목상대와 대기만성은, 차근히 자신의 실력을 키워나간 두 사람의 근성을 증명하는 고사성어인 것이다. 여러분도 끈기와 노력을 다해 언젠가, 설사 늦은 나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목표를 끝내 성취해 보는 것은 어떨까. 여러분의 꾸준한 노력을, 끈기를 응원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