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와 제갈량의 수어지교
지난번에는 인간관계의 달인인 유비와 의형제 관우, 장비 간의 우애와 신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다. 관우, 장비의 도움 없이 유비가 어떻게 한조 재흥의 뜻을 펼쳐 나갈 수 있었겠는가. 관우와 장비의 믿음과 충성이 있었기에 유비가 촉한의 초대 황제가 될 수가 있었고, 소설 삼국지연의와 실제 역사 속에서 덕 있는 군주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유비 역시 넓은 아량과 덕으로 관우와 장비를 아끼고 살폈기에 유비 삼형제의 관계가 오래도록 지속되어 훗날의 지금 시대까지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또 다른 형태의 인간관계 속에서 믿음이 어떻게 인간관계의 중요한 덕목이 되는지 알아보자. 여기, 덕 있는 군주와 총명한 신하가 있다. 그들은 바로, 유비와 제갈량이다. 유비와 제갈량은 1,8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훌륭한 임금과 뛰어난 재상의 본보기가 되는 인물들이다. 지금 현대 사회로 보자면, 재벌 기업가와 대기업 임원 정도라고 할까. 그들의 관계는 엄연히 주종관계로 수직적 특성을 띠고 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상생의 관계라고도 볼 수가 있다. 또, 개인의 성격과 환경에 따라서 상당히 경직된, 공적인 관계가 될 수도 있지만, 뒤바꿔서 보면 매우 친밀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두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고, 잘하면 시너지 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잘못했을 경우에는 그 기업은 폐업, 즉 패망의 신세를 걸을 수밖에 없다.
유비와 제갈량도 '촉한'이라는 나라를 운영한 정치가이자, 경영가였다. 그들은 서로 의기투합해 형주와 익주를 차지하고, 유비가 '한중왕'에 이어 촉한의 초대 황제에까지 올랐을 정도로 '촉한'이라는 기업은 날로 성장했다. 지금으로 보면, 주식을 상장하고, 상한가를 계속 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갈량의 전략인 '천하삼분지계'는 적재적소로 맞아떨어졌고, 유비는 조조와 손권 모두가 두려워하는 거대한 기업의 주인이 되었다. 물론, 형주를 차지하는 데 있어 손권과의 분쟁으로 인해 화근을 키워 관우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아픔을 겪고, 형주를 되찾기 위해 70만 대군을 일으켜 형주를 침공했으나, 육손의 화공에 걸려들어 참패를 하지만 않았어도 유비의 기업은 천하를 통일할 기세였다. 그런 유비를 옆에서 보좌한 것은 다름 아닌 제갈량이었다.
유비와 제갈량의 첫 대면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형주의 명사 수경선생 사마휘의 소개로 융중의 와룡강에 산다는 제갈공명을 만나기 위해 유비는 자신의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와 함께 세 번이나 제갈량의 집에 방문한다. 첫 번째, 두 번째 방문에서 제갈량을 만나보지 못한 유비는 제갈량이 집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서둘러 제갈량의 초려를 찾아간다. 유비가 제갈량의 집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제갈량은 잠을 자고 있었고, 유비는 반나절 동안 서서 제갈량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제갈량이 잠에서 깨어나자, 유비는 제갈량에게 깊이 절을 하며 예를 올린다. 제갈량은 유비를 보고 깜짝 놀라지만, 곧 의관을 정제하고, 유비를 맞이한다.
유비는 자신이 제갈량의 집을 찾아온 경위를 설명하고, 망해가는 한나라 조정을 다시 일으키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제갈량에게 묻는다. 제갈량은 유비가 세 번이나 자신의 집을 찾아 준 데 대한 보답으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알려준다. 제갈량은 북쪽의 조조에게 천시를, 동쪽의 손권에게 지리를 양보하고, 유비는 인화로써 형주와 익주를 취해 천하를 삼분하여 다스린다는, 어마무시한 전략을 유비에게 알려주는데, 유비는 그전까지만 해도 이런 전략을 상상해보지도 못했다가 막상 이 계책을 듣고 나니, 그동안 패전을 거듭하면서 암울했던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제야 내 뜻을 펼칠 수 있겠구나 하고.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뛰어난 전략을 짜는 군사가 필요했다. 유비는 그런 군사를 찾기 위해 제갈량을 찾아온 것이었다. 유비에게 제갈량은 너무나도 필요한 존재였다. 유비는 제갈량 앞에 무릎을 꿇는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과 한조를 재흥하기 위해서 선생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부디 이 유비를 도와주십시오."
유비는 간절했다. 자신의 기업이 다시 회생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였던 것이다. 유비의 간절한 마음이 닿았을까. 제갈량 역시도 자신이 모실 주인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자신의 전략을 써 줄 뛰어난 주군 말이다. 제갈량은 못 이기는 척 유비의 군사가 되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유비와 제갈량의 군신관계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처음 제갈량이 유비의 휘하에 갓 들어왔을 때만 해도 관우와 장비 등 유비의 휘하 장수들은 제갈량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역전의 무장들인 자신들에 비해 나이도 한참 어린 20대 후반에 불과하고, 전쟁의, 전 자도 모르고 자라온 서생 나부랭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유비는 제갈량과 함께 밥을 먹고 잠을 같이 자면서 그와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의논했다.
하루는 장비가 유비에게 "갓 들어온 서생 나부랭이에게 어찌 그리 정성을 다하시오?"라고 하자, 유비는 "나와 공명은 물고기와 물의 관계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지."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고사성어인 수어지교(水魚之交)가 등장하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조의 장수인 하후돈이 십만 대군을 이끌고 박망파로 쳐들어오는데, 자신을 따르지 않는 유비의 휘하 장수들을 통솔하기 위해 제갈량은 유비에게 주군의 보검을 달라고 요청한다. 유비 역시도 제갈량이 조조의 십만 대군을 과연 상대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우려를 내비치기보다는 제갈량을 믿고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게 더 낫다고 여겼을 것이다. 유비는 선뜻 제갈량에게 자신의 보검을 전해주고, 제갈량은 장수들을 박망파 전투에 배치한다. 그 결과, 박망파 전투는 대승으로 끝나고, 그전까지 제갈량을 믿지 못했던 관우와 장비 등의 장수들은 군사인 제갈량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적벽대전에서도 유비는 제갈량을 동오 손권에게 사신으로 보내 동맹을 체결하고, 손권군과 힘을 합쳐 조조의 백만 대군을 물리치는 데 성공한다. 이 역시 유비가 제갈량의 식견과 지략을 믿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 뒤로, 유비는 항상 제갈량의 계책을 따라 일을 해나갔고, 결국 형주를 얻고, 익주마저 얻는 기염을 토한다. 유비는 한중에서 조조를 직접 상대해 한중을 빼앗는 데 성공하고, 한중을 점령한 후, 한중왕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유비의 역사상 최대의 승리이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관우가 번성을 치기 위해 형주를 비워뒀다가 동오 대도독 여몽의 습격을 받아 형주를 잃고 자신도 참수당하고 만다. 유비는 의형제인 관우의 죽음에 넋을 잃을 정도로 슬퍼한다. 그리고, 형주를 수복하겠다고 절치부심한다. 그러나, 제갈량은 주적인 한나라를 찬탈한 조씨들이니, 위나라를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비는 제갈량의 그런 충언에도 불구하고, 형주를 공격하다가 육손에게 패해 백제성으로 후퇴한다. 백제성에서 지병을 얻은 유비는 임종이 다가오자, 제갈량과 문무관료들을 영안궁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는, 제갈량을 침상 앞으로 오게 한 후, 제갈량에게 넌지시 말한다.
"승상, 내 아들 유선이 황제의 자질이 있거든, 그 아이를 잘 보좌해 주고, 그 아이가 황제의 자질이 없다면 그대가 성도의 주인이 되어 조적을 물리치고, 천하를 다스려 주시오."
제갈량은 유비의 유훈을 듣는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자신의 아들에게 황제의 후계를 잇게 하는 게 보통인데, 유비는 보통을 넘어서 뛰어난 인재에게 나라를 맡기겠다고 한 것이다. 요즘 같은 능력 중심의 사회에서도 재벌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회장의 자리를 넘겨주고자 갖은 애를 쓰는데, 유비는 자신의 자리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에게 주겠다고 한다. 이 얼마나 넓고 깊은 아량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제갈량 역시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유비의 너그러운 마음씨에 마음 깊이 감동했지만, 그는 머리를 땅에 찧으며 유비에게 울면서 말한다.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태자 전하를 성심껏 보필하겠나이다."
결국 유비는 세상을 떠나게 되고, 제갈량은 아둔한 군주인 유선이 훌륭한 황제가 되도록 보필하면서 위나라를 침공하는 북벌을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자신마저 오장원에게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유비와 제갈량. 이들의 인생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유비와 제갈량 사이에는 군주와 신하만의 관계가 아니라, 혈연보다도 더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신뢰, 즉 믿음이었다. '누구보다도 내 주군을 믿는다, 누구보다도 내 책사를 믿는다'라는 마음. 그들의 관계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어떤 기업이든간에 대표와 직원이 서로 믿음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어야 그 기업이 성장하고, 일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이 없다면 뿌리 없는 나무에 불과하며, 모래 위의 성밖에 되지 않는다. 믿음이 탄탄한 기초가 되어야 인간관계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유비와 제갈량의 수어지교. 그들은 정말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생의 관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