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삼형제의 우애
우리는 가족, 친구, 지인 등과 인간관계를 맺을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까. 사교성, 배려, 경청 등 중요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아마 믿음, 즉 신뢰가 아닐까 생각한다. 믿음 없이는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며, 믿음을 저버리게 되면 그 관계는 끊어져 버린다. 인간관계는 믿음을 통해 굳건해지고,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과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믿고 있는가? 반면, 여러분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신뢰를 얻고 있는가?
여기, 한결같은 믿음으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간관계의 달인이라고 불린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촉한의 초대 황제 유비다. 유비는 중산정왕 유승의 후손으로, 엄연한 황실의 방계 혈통이었다. 그러나 집안은 가난하고,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를 모시고, 병약한 노모를 대신해 짚신을 만들어 파는 짚신장수가 되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가 삼국지연의에 처음 등장한 것은, 황건적의 난이 일어난 뒤, 유주 탁군에서 황건적에 토벌하는 의용군을 모집한다는 방을 보게 되는 장면부터다. 그가 방을 보면서 길게 탄식을 하며, 한숨을 내쉬자, 뒤에 있던 덩치 큰 사내 하나가 "사내가 큰 일을 도모할 생각은 않고, 한숨만 길게 쉬는가."라고 호통을 친다. 그는 바로, 장비였다. 유비와 장비는 대화를 나누다가 금세 친해졌고, 술집에서 함께 의용군에 들어갈 것을 의논했다. 그때, 술집 안으로 붉은 얼굴에, 긴 수염을 한, 풍채가 있는 장정 하나가 들어와 "의용군에 지원해야 하니, 빨리 술을 내오시오."라고 하면서 술을 주문한다. 그는 바로, 관우였다. 유비와 장비는 관우와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되고, 곧 그들은 의용군에 참가해 황건적에 대항해 나라를 구할 뜻이 서로 맞아 의기투합한다. 그들은 장비의 제안으로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핀 도원에서 의형제가 될 것을 결의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도원결의다.
유비 삼형제의 우애가 얼마나 두터웠냐 하면 그들은 잠도 같이 잤으며, 식사도 항상 함께 할 정도였다. 그리고 유비가 서주에서 조조에게 대패해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 모두 흩어졌을 때에도 유비는 원소의 빈객으로, 관우는 조조의 휘하에, 장비는 고성의 성주로 있었지만, 서로를 잊지 못해 찾아 헤매며 그리워했다. 특히, 관우는 유비의 처자식을 지키기 위해 조조에게 잠시 항복하고, 조조 휘하의 장수로서 백마와 연진에서 안량, 문추를 제거하는 데 큰 공을 세우지만, 유비가 원소 진영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조조를 떠나 하북으로 향한다. 하북으로 향하는 동안 다섯 개의 관문에서 여섯 명의 장수를 죽인 것은, 유명한 일화다. 유비 역시 관우를 보기 위해 원소를 떠나 남쪽으로 향한다. 유비 삼형제는 고성에서 재회하게 되고, 다시 만났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그 후, 유비가 형주의 신야에 머물고 있을 때, 제갈량을 만나기 위해 융중으로 향할 때에도 관우와 장비는 의형제로서 항상 유비의 곁을 모시고 있었다. 제갈량이 유비군에 가세한 후, 유비가 제갈량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것을 보고, 시기하고 질투하지만, 곧 박망파에서 하후돈의 10만 대군을 격퇴한 제갈량의 능력을 보고서는 인정하게 된다. 적벽대전 때에도 패퇴하는 조조를 쫓는 역할은 관우와 장비의 몫이었다. 비록 관우가 조조에게 입은 은혜로 인해 그를 놓아 보내주고, 군사인 제갈량에게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유비의 눈물 어린 호소로 처형을 면하고, 자숙하게 된다. 관우는 곧 장사전투에서 황충과 싸워 그를 항복시키게 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공을 세우고, 유비가 손씨와의 혼인동맹을 위해 형주를 비웠을 때에도, 군대를 이끌고 입촉했을 때에도 장비와 함께 전선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 유비가 조조에게 승리해 한중을 점령하고, 한중왕의 자리에 올랐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한 사람들은 다른 아닌, 관우와 장비였다. 관우는 자신도 공을 세우기 위해 위의 조인이 지키던 번성을 침공하고, 함락 직전까지 몰고 간다. 그러나 조조가 오의 손권과 동맹을 맺고, 대도독 여몽이 군을 이끌고 형주를 습격해 함락시키자, 관우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혈혈단신 얼마 안 남은 군사들을 이끌고, 맥성의 포위를 풀고, 서촉으로 향하던 관우는 여몽군에 사로잡힌다. 포로의 신분으로 손권 앞에 끌려간 관우는 손권에게서 항복할 것을 권유받지만, 의형제인 유비와의 우애와 유비에 대한 충성심에 단박에 그 제안을 거절한다. 결국 관우는 형장에서 참수되고 만다.
관우가 죽고, 형주가 점령됐다는 소식을 들은 유비는 크게 분노하고, 곧바로 관우의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제갈량, 조운 등 문무관료들의 반대로 실행하지 못한다. 그 후, 한나라 황제인 헌제가 폐위되고, 위나라가 건국되자, 촉한의 황제가 된 유비는 형주를 수복할 것을 명령한다. 자그마치 70만 대군을 이끌고 가지만, 출발도 하기 전에 장비가 부장인 범강과 장달에게 암살당했다는 비보를 듣고, 그들이 동오로 도망갔다는 소식을 접한다. 유비는 평소 술에 취하면 아랫사람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하는 장비의 성정을 잘 알기에 그에게 항상 경계하라고 일렀지만, 결국 장비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일을 저질러 화를 당하고 만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잃은 슬픔을 뒤로하고, 의형제들의 복수를 위해 대대적으로 형주를 침공한다. 산골짜기에 진영을 세워 대군을 쉬게 하려다가 육손의 화계에 걸려 진영이 모두 불타고, 대패한 유비는 소수의 군사만 이끌고 백제성으로 도망친다. 백제성에서 중병을 얻은 유비는 63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유비의 일생을 통해 본 유비 삼형제의 우애는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보통의 가족 같아도 그렇게 쉽게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할 수 없을 텐데, 그들은 그렇게 자신을 가시덤불 속으로 내던지고, 뜨거운 불 속에라도 뛰어들었다. 요즘 시대, 가까운 이웃보다도 먼 가족이나 친척보다도 더 믿을 수 있는, 끈끈한 우애를 가진 인관관계의 정석이 그들이라고 하겠다. 또, 가족 간의 금전적인 문제로 존속살인마저 벌이는, 각박한 현대 사회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좋은 모범이요,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유비 삼형제의 우애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진정한 인간관계를 맺고자 한다면 그들의 반만이라도 닮아보려고 노력하는 건 어떨까. 굳건한 믿음을 주고받는, 진솔한 인간관계 속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