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2일 월요일
트리플 대형 사고, 그 마지막은 종로에서 일어났다. 부평 이반(성소수자를 가리키는 말, 게이) 술집들을 자주 들락날락했을 때, 친했던 게이바 직원 동생 망고(가명)가 종로의 술집으로 이직해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친한 동생 경호와 함께 종로에 놀러 가게 되었다.
1차로는, 6주년 행사를 하고 있던, 한 게이바에 놀러 갔는데, 그곳에서 나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아마도 허세를 떨고 싶었나 보다.) 한 병에 15만 원가량 되는 샴페인을 9병이나 먹었다. 물론, 나와 경호만 먹은 게 아니라, 젊은 술집 사장과 어리고, 잘생기고, 끼 많은 종업원들이 우리 옆에 붙어서 함께 마신 것이었다. 내가 비싼 샴페인을 9병이나 까니, 종업원들은 우리 테이블에서 떠나질 않고, 왁자지껄 떠들면서 마치 그 자리가 자기 자리인 것처럼 술을 마셔댔다. 아무리 그래도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도 먹었는지... 나는 잔뜩 술이 취한 채로 종업원들과 사진을 찍고, 웃긴 얘기를 하면서 히죽거리고 있었다. 거기서 끝났으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나는 망고가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횟집으로 이동해 술을 더 마시려 했는데, 같이 있던 동생 경호가 집에 가자며 나를 말렸다. 나는 경호에게 "좀 더 마시자."라고 했지만, 경호는 집에 가야 한다며 택시를 불렀다. 하지만, 나는 경호 혼자 택시를 태워 보내고, 횟집으로 들어갔다. 2차인 횟집에서 나는 (이번에도, 당최 뭔 생각이었는지) 망고와 함께 복분자 12병을 마셨다. 그렇게 마구 퍼 마시다가 망고는 테이블에 엎어져 잠이 들었고, 나는 대작해 주던 사람이 없어지자, 심심해진 나머지 횟집에 있던 다른 직원에게 같이 마시자고 했다. 잠깐 그 직원이 자리에 앉는 듯했는데, 그걸로 내 시야는 검게 변해 버렸다.
블랙아웃(Blackout), 필름이 끊긴 것이다.
그러다가 기억이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술집 주방장과 비가 오는 종로의 대로 한복판에서 싸우고 있었다. 덩치 큰 주방장이 나를 세게 밀치자, 나는 대로에 엎어져 떨어진 낙엽처럼 나뒹굴었다. 바닥에 엎어지자, 나는 성질이 나서 그랬는지 들고 있던 우산을 들고 주방장에게 다가갔다. 그러고서 또다시 필름이 끊겼다. 끊어진 기억이 온전히 돌아온 것은, 종로경찰서에서였다. 그곳에서 나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서를 쓰고 있었다. 조서를 쓰고 경찰서에서 나온 나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고서 단단히 충격을 받은 가족들의 전화를 받았다.
"오빠, 제정신이야? 왜 또 술을 먹어서 사고를 쳐?"
"왜 또 사고를 치고 그러냐? 한심한 놈."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
여동생, 아빠, 엄마 순으로 다들 내게 전화를 해 나를 다그쳤다. 그러게, 술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또 술을 마셔서 이 사단을 만드는구나. 나는 속으로 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조현병이 있는데도 금기인 술을 만취할 때까지 퍼 먹었으니, 정말 잘못해도 한참 잘못한 것이었다.
그 후, 고소장이 집으로 날아왔고, 고소장을 읽어보니, 피해자인 주방장이 나를 특수폭행죄로 고소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특수폭행죄인 이유는, 내가 우산을 들고 피해자의 얼굴을 내리쳤기 때문이었다. 경찰 수사관님에게 전해 들으니, 전치2주, 피해자의 아래턱에 2cm 가량 깊게 상처가 났다고 했다. 아무리 기억이 없었어도 폭력을 행사하고, 그것도 우산이라는 무기를 들고 상대를 가격했다니, 어떻게 해도 용서받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상한 것은 내 기억 속에서 나는 주방장에게 내동댕이 쳐지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고소장을 받은 지 며칠 뒤, 경호와 종로에 가서 술집 사장님에게 부탁해 가게 CCTV를 확인해 보니, 피해자인 주방장이 삿대질을 하고 있는 나를 먼저 밀쳤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우산이라는 무기를 들고, 상대방을 가격한 것은 벗어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나는 즉시, 이 일을 가족들, 그리고 꼬북이와 상의했다. 아버지는 술 먹고 사고 친 나를 크게 혼내시기는 했지만, (피해자인 횟집 주방장이 처음에 제시한 최대 2천만 원까지) 합의금은 마련해 줄 테니, 피해자와 합의를 잘해서 액수를 낮춰 보라고 말씀하셨다. 여동생은 지인을 통해 김 변호사를 소개해 주었고, 엄마는 예전에 전과가 있어 이런 경험이 많은 외삼촌에게 연락해 보라고 하셨다. 꼬북이는 우리가 전부터 알고 있던 국선 변호사 출신의 유명한 신 변호사님께 연락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며칠 뒤, 나는 외삼촌과 함께 동생이 소개한 김 변호사님의 법률사무소(인천에 있는)로 찾아가 변호사님에게 1시간 30분 유료상담을 받았고, 이어서 서울로 이동해 꼬북이와 알고 지내던 신 변호사님을 만나 30분 정도 무료상담을 받았다. 두 변호사님의 의견은 엇갈렸다. 먼저 방문한 김 변호사님은 쌍방 폭행으로 갈 수도 있다고, 법정 재판에서 시시비비를 다퉈 볼 만하다고 말씀하셨고, 나중에 방문한 신 변호사님은 내 과실이 100%이니, 무조건 합의를 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라고 말씀하셨다. 함께 갔던 외삼촌은 후자가 더 일리가 있다고 말씀하셨고, 나에게 피해자인 주방장에게 합의를 요청하는 글을 대신 써주셨다. 그 글을 받은 나는 피해자의 페이스북 메신저로 장문의 글을 보냈다.
아버님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던 건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이 부풀려서 상대를 제압하려는 심리라는 걸 설명드리면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허세라는 걸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제 나이가 30대 중반이어서 제 잘못에 대해 부모에게 의지하거나 할 나이가 아니라는 걸 그동안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이제 저는 집에서조차 내다 버린 신세에 처해 있습니다.
저는 조현병으로 인한 분노조절 장애로 그동안 두 차례에 걸쳐 형사 입건되어 이제 부모님도 제 지병에 지쳐 있습니다. 군대에서도 지병으로 현역부적합 판정을 받아 불명예제대를 하고,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못해서 입사에서조차 불이익을 받아 지금껏 이렇다 할 직장도 없이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전체 현금은 200만 원이 전부고, 적금을 깨야 그나마 500만 원 정도를 채울 수가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제가 가족에게 손 벌릴 처지도 못 되고, 아버지도 저에게 욕까지 하시면서 살다 나오든 뭘 하든 모르겠다고 단칼에 거절하셨는데..
아버지는 예전부터 하신 말씀을 번복한 적이 없으십니다. 사실 아버지의 그런 강압이 지금 제가 앓고 있는 조현병과 분노조절 장애가 생긴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거의 아버지와 충돌하면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게서 500만 원 이상의 합의금을 받으실 거란 기대는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설령 합의를 못해도 저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강도질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합니다. 이 점 고려해 주시기를 재차 부탁드립니다. 정말 제 못난 점을 이렇게 낱낱이 드러내서 말씀드리는 저의 자괴감을 헤아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지병을 아는 지인도 이제는 몇 안 됩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여파입니다. 부디 헤아려 주시기를 간곡히 청합니다. 그리고 저의 못난 행동으로 사장님께 피해를 드린 점 진심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부디 헤아려 주십시오.
제가 지병(블랙아웃)으로 당일 사건을 상당 부분을 기억을 못 해 그 기억을 더듬느라 CCTV를 보았을 뿐입니다. 저는 작가 지망생이었습니다. 대학도 그런 학교를 다녔습니다. 제 글이 긴 것은 제 진심을 다 담느라 마음의 글을 모두 드렸기 때문입니다.
사장님께서 정히 그렇게 판단하셨다니, 마음이 무겁고 한편으로는 향후 제가 할 수 있는 절차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변호사 선임 문제도 무료 상담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못 줘도 최소 300만 원에 부가세 30만 원이라니,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국선 변호인을 선임해서 무료 변론을 받아야 할 처지입니다. 상담했던 변호사님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다른 방법도 있다 하니 국선 변호인님의 조력을 받을 예정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500만 원 이상은 제 처지로 만들어 낼 재간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 진짜 죽고 싶을 만큼 괴롭습니다. 밤에 잠도 못 잘 만큼 걱정도 큽니다. 제가 이렇게 형편없는 놈입니다. 부디 심사숙고하시고 헤아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피해자는 이 글을 읽고서도 합의금을 700만 원 이하로 낮춰주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방이 먼저 합의를 요청할 때까지 버티라는 외삼촌의 조언대로 나는 최대한 버티는 전략을 취했다. 그리고, 국선 변호사 분과 얘기를 나눠 국선 변호사님이 대신 합의를 봐주시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당초 2,000만 원을 부르던 피해자는 350만 원에 합의하기로 정하고, 나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350만 원을 피해자의 계좌로 입금했다. 이로써 탈 많았던 마지막 사건은 일단락되었는데, 그래도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법정에 출두해 죗값을 치르는 것이었다.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점, 죄를 뉘우치고 있다는 점, 피해자와 합의를 보았다는 점이 인정되어 집행유예 1년, 사회봉사 80시간을 받게 되었다.
지금은 집행유예기간이 지나고, 사회봉사를 모두 완료해 더 이상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지금도 나는 술을 만취될 때까지 마시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유흥에는 다시는 돈을 허투루 쓰고 다니지 않겠노라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다. 요즘에 술과 남자를 멀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 사건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잘못했다간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힘들 때 도와준 가족들과 꼬북이를 봐서라도 다시는 그 같은 누를 범하지 않겠노라 맹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