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4일 수요일
소하(小下)
제갈해리
중학교 한문시간에
자신의 자(字)를 짓는 숙제를 받았다
나는 고심 끝에 소하(小下)라고 자를 정했다
이게 무슨 뜻이니?
한문 선생님은 내게 묻는다
작다 아래?
친구들이 깔깔깔 웃는다
걔 중에는 내 사타구니를 가리키며 웃는 녀석도 있었다
아래가 작대
거시기가 작아
한나라의 재상 소하는
지위는 높았지만 행동은 겸허하게
포부는 크지만 마음은 겸손하게
그렇게 살았어요
짝짝짝짝
한문 선생님의 박수소리가 홀로
적막한 교실에 울려 퍼진다
훌륭하구나
소하야,
너는 재상 소하처럼 살아가거라
과거는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이젠 닳아 무뎌진 펜을 든 채
선생님의 말을 떠올려본다
오늘의 소하는
진정 小下로 살고 있는가
오늘은 나의 자(字)가 소하(小下)인 이유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중학교 한문 시간이었다. 한문 선생님께서 자신의 자(字)를 지어 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나는 고심 끝에 소하(小下)라는 이름으로 자를 정했다. 비록 사타구니가 작다는 아이들의 놀림을 받기는 했지만, 나는 재상 소하(蕭何)처럼 겸손하고, 겸허하게 살고 싶다는 포부를 모두에게 드러냈다. 물론, 선생님만이 내 포부를 장하게 여기셨지만 말이다.
그 후, 시간이 자나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학창 시절 한문 시간을 돌아보니, 과연 내가 '소하'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글을 쓰겠다는 다짐은 무뎌진 펜처럼 희미해져만 가고, 내 인생을 겸손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초심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되새겨보게 된다.
나는 재상 소하 같은 훌륭한 인물이 되고 싶었다. 소하는 한고조 유방의 개국공신이자, 한나라의 가장 높은 재상이었다. 그는 한고조 유방이 황제가 되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다. 비록, 장량이나 한신처럼 전선에서 활약한 것은 아니지만, 후방에서 군수물자를 조달하고, 물심양면 유방이 승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한신이나 경포처럼 한나라의 창업공신들이 숙청되는 가운데에도 그만은 살아남아 유방 사후에도 재상으로서 죽음을 맞이한다.
후한의 역사가 사마천은 그를 이렇게 평했다.
백성들이 진나라의 가혹한 법에 원한을 품고 있다는 정황을 파악하고, 역사의 흐름에 순응하여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제공했다. 한신(韓信), 경포(黥布) 등 한나라 창업공신의 대부분은 주살되었으나, 소하가 이룩한 공적만은 찬란히 빛나 그의 지위는 공신 중에서 제일 높았으며, 그 명성은 후세에까지 전해져 주문왕을 도와 주나라를 일으킨 굉요(宏夭)와 산의생(散宜生) 등이 이룩한 공적과 비견될 만하다고 하겠다.그 당시, 나는 그런 훌륭하고 대단한 인물인 소하처럼 살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훌륭한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괜찮은 인생이라도 살아가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다. 몇 천만 원의 빚은 쌓여 있고, 매일같이 일하는 것도 버겁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재상 소하가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한나라를 창업했듯이 나 역시도 해 뜰 날이 오리라 믿는다. 초심을 잊지 않고, 의지를 계속 품고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오지 않겠는가.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 보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