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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Jul 24. 2023

먼지 한 톨과 먼지 한 톨을 합쳐도 어차피 먼지 한 톨

소설 재롱이 - 만남


1.

조막만 한 크기. 하이에나를 닮은 얼룩덜룩한 무늬. 가랑이 사이에 말려 들어간 꼬리. 꼬리를 타고 흐르는 노란 오줌. 불안한 눈빛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몸뚱이. 이 가련한 존재는 갑자기 엄마가 집에 데려온 강아지다.


“안녕.”


나는 마당에 풀어놓자마자 뒤뜰로 도망친 이 작은 존재를 쫓아왔다. 그리고 불쑥 손을 내밀었다.


“낑낑”


고작 8살밖에 되지 않은 내 작은 체구가 위협적인 걸까? 낯선 환경이 무서운 걸까? 난생처음으로 어미의 품에서 벗어난 상황이 두려운 걸까? 가랑이 사이에서 시작된 노란 오줌의 영역이 더욱 확장된다. 흙바닥이 흥건해진다. 작은 몸뚱이의 떨림이 심해진다. 낑낑거리는 소리가 더욱 처량해진다.


“미안”


너는 이제 갓 젖을 땐 아기. 낯선 환경에 무자비하게 던져진 신세. 네 세상의 전부였던 어미의 품을 상실한 상태. 미숙한 몸뚱이로 미지의 세계에 던져진 존재.


그 나약함으로 마주한 격변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8살 아이의 작은 몸짓에도 오줌을 지릴 정도로 말이다. 사과를 하며 손을 거두었다. 조심히 움직여 옆에 앉아 한동안 침묵을 유지했다. 네가 두려움을 이겨낼 때까지.


할짝


이제야 내 뜻을 알게 된 걸까? 서서히 다가와 내 손등을 핥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난 너를 먹기 위함이 아니었다. 너를 소유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같은 생명의 존엄을 지닌 존재로서, 그저 같은 하늘 아래 잉태한 자연의 일부로서, 그저 같은 부피를 지닌 우주의 먼지로서, 네 눈과 내 눈에 들어찬 동등한 영혼의 질량만큼 서로를 마주할 뿐이었다.


"네 이름은 재롱이야. 이제 떨 일은 없을 테니 그렇게 재롱만 부려."


먼지 한 톨과 먼지 한 톨을 합쳐도 어차피 먼지 한 톨인 것처럼, 우린 하나가 되어갔다.




2.

“선생님! 오늘 학교 빨리 마치면 안 돼요?”


촌동네에 위치한 전교생 60명 가량의 초등학교. 나는 등교하자마자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치기 어린 소리를 내뱉었다.


“재롱이 보러 가야 돼요!”


주름진 손으로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담임선생님. 고목 같은 손이었지만 머리카락에 스치는 촉감은 부드럽다.


“그래.”


손자뻘의 8살 제자가 귀엽게 느껴졌을까? 아양 떠는 미숙한 존재에게 너그러움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담임선생님은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제자를 교실로 돌려보냈다.


------


댕댕댕


학교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종례가 끝나고 교실을 뛰어나갔다. 수업은 정시에 끝났고 하교 시간은 평소와 같았다. 선생님이 내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너그러움이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시간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내 머리를 가득 채운 존재는 재롱이 하나뿐이었으니까. 왜소한 몸집으로 학교를 벗어난 나는 쉬지 않고 달렸다.


하굣길 옆에 흐르는 섬진강이 긁어모은 햇살로 보석을 빚어내고 있었다. 강 곳곳에서는 재첩을 잡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섬진강에는 이름 모를 새들이 강물을 타며 흘러가고 있었다. 집에 가기 위해서는 이 길을 20분 동안 걸어야 했다.


“개 삽니다. 염소 삽니다.”


갑자기 강물 위에 떠다니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앞을 쳐다보니 화물칸에 철창을 가득 실은 하얀 포터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붕에 달린 스피커가 크게 울리고 있다.


저 차는 일주일마다 한 번씩 우리 동네에 들르는 개장수의 차다. 간혹 철창 안에 동물이 들어있던 적도 있었으나, 오늘은 텅 비어있다. 하얀 포터는 검은 매연을 내뿜으며 지나쳐 갔다. 어느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나아간다. 나는 발을 재촉했다.


“멍멍”


곧 전신에 땀을 적신 채로 집에 도착했다. 목줄에 묶여있는 재롱이가 미친 듯이 뛰며 반겨준다. 다가가니 내 얼굴을 한껏 핥아댄다.


“으, 드러.”


얼굴이 흥건해졌다. 얼른 집에 들어가 책가방을 벗어 던진다. 냉동고를 열어 아이스크림 하나를 꺼냈다. 재롱이가 있는 곳으로 나왔다. 목줄을 풀고 마당을 벗어났다.


“자 먹어.”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어 손바닥에 뱉었다. 그리고 재롱이를 향해 내민다. 재롱이가 다가와 내 손을 열심히 핥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이 서서히 녹으며 작은 손바닥을 도포했다. 어느새 손이 흥건해졌다.


나도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었다. 한 모금의 시원함이 열기를 달래주는 게 느껴진다. 재롱이는 손바닥에 도포된 아이스크림까지 핥고 있었다. 한 입 더 베어 물어 손바닥에 다시 뱉었다. 그리고 나도 다시 한 입.


“가자”


순식간에 아이스크림을 해치운 우리는 뛰었다. 작은 두 존재가 엉키고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또 뛴다. 내가 쫓아가면 재롱이는 도망간다. 내가 도망가면 재롱이는 나를 쫓아온다. 그렇게 반복하며 다시 왔던 섬진강 변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또다시 전신에서 땀이 흐른다. 그렇게 우리는 섬진강처럼 밝은 보석을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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