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에서의 첫째 날 ( 2016년 6월 17일)
밤 11시 35분 야간 기차에 올랐다. 한 칸에 6명씩 들어가는 침대칸이었다. 기차의 침대칸에 여유가 있어서 한 칸을 나 혼자 독차지할 수 있었다. 덜컹거리는 기차는 요람처럼 몸을 흔들어주어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떠보니 내가 자고 있는 사이 어느 역에서 승객이 탔었나 보다. 내 옆 침대에서 어떤 여자 승객이 자고 있었다.
아침 8시 기차는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려 역 앞에서 바포레토라는 수상버스를 탔다. 이 수상버스는 무라노섬과 브루노 섬을 들렸다 베네치아 본섬으로 돌아오는 배편이었다. 배가 무라노섬에 도착했다. 무라노섬은 유리공예로 유명한 섬이다. 베네치아 본섬이 워낙 조밀하고 좁은 골목이어서 화재에 취약해 본섬과 좀 떨어진 이곳 무라노섬에 유리 공예 업자들을 이주시켰다고 한다. 무라노섬 안에는 유리 공예점이 몇 군데 문을 열어 놓았다. 무라노 섬은 너무도 조용해서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무라노섬에서 다시 부라노섬으로 가는 수상버스를 탔다.
부라노섬은 집들이 형형색색이었다. 해변에서 불어오는 지중해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마음의 긴장을 풀어놓아 시간 가는 걸 잊게 했다. 길을 걷다 보니 이탈리아 사람들이 로맨틱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벨라’를 남발하는 이탈리아 남자의 호색한 억양이 지중해를 건너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연인들의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길에 좁은 수로마다 곤돌라와 수상버스가 눈에 띄었다. 도시 안은 좁은 골목들이 미로 같아 자전거도 지나기 어려워 보였다. 수로를 따라 걸으니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산 마르코 대성당과 두칼레 궁전 그리고, 부드러운 곡선미의 회랑이 이 산 마르코 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 대성당의 외관과 내부는 각지의 최고급 대리석이 지닌 본연의 색의 조합으로 그 화려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인간의 손끝에서 이런 아름다운 건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다.
산 마르코 대성당에는 황금 사자가 있다. 베니스영화제의 최우수상의 명칭이 ‘황금 사자상’인 연유이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라는 작품으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미켈란젤로의 대작인 조각상 ‘피에타’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다.
길을 알고 간다기보다 방향만 정하고 거미줄처럼 얽힌 골목을 굽이굽이 지났다. 점심 식사 시간이 되니 이탈리아 호객꾼이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호객도 차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 상냥한 미소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하얀 옷을 차려입고 손에 주전자를 들고 물을 따라 주는 모습을 보고 직감했다. 메뉴판을 보니 물만 마셔도 가격은 사악했다. 나는 방금 그 인상 좋은 웨이터가 따라준 물을 벌컥 마셔 버렸다. 관광지의 바가지는 어디에나 있었다. 뭐 먹지도 않았는데 족히 십만 원은 털렸다. 식당을 나오는데 호쾌한 이탈리아식 인사와 함께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런 이탈리아 사람이 왜 그런지 밉지 않았다. 골목길을 돌고 돌아 산타루치아 역으로 돌아왔다.
오후 4시 40분 로마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하루도 채 있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이 도시의 혼잡함에 대한 여운이 아니었다. 적당히 데워져 불어오는 지중해의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으면 무언가에 홀린 듯 나른하고 기운이 빠졌다. 기차를 타고 저녁 8시 35분 로마 떼르미니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로마 입성의 설레임에 들떠 발 밑이 간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