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의 나의 소란과 테니스에 관한 수다가 수그러들자 기차 바퀴가 철로를 할퀴는 소리가 객차 바닥에서 올라왔다. 호주 사람들의 배려로 차창 옆에 자리를 잡고 나서 창밖에 시선을 고정하니 호주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 다른 주제를 가지고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좌석에 손님처럼 앉았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마치 이 자리가 내 좌석 같았다. 사람 마음이 다 그런 모양이었다. 문제는 밤을 어떻게 지새 우 고 가느냐 였다. 기차는 침대칸이었고 삼단으로 되어있는 침대가 펴지면 지금은 앉아 있지만 이 자리도 비켜줘야 할 상황이었다. 내가 있던 좌석 칸에 있던 6개의 침대 중 한 개가 비었다. 낮부터 건너편에 앉아있던 말 없는 조용한 청년이 내 윗 칸 침대로 긴 팔과 긴 다리를 나무늘보처럼 움직여 올라가 누웠다. 이 청년은 프랑스인이었다. 이름은 ’ 레옹‘이라고 하련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실제 조금 닮았다. 이 정도면 억세게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저번 인도 여행 때 아그라로 가는 기차에서 내 자리에서 자던 인도인을 깨웠던 기억이 났다. 자는 중에 누군가 나를 깨우지만 않는다면 저번 현충원에 가서 인사드렸던 작은 아버지가 도와주신 것이다.
눈을 떠보니 언제인지 날이 밝았다. 침대를 접고 자리에 앉았다. 내 윗 칸에 있던 ’ 레옹‘이 나에게 처음 말문을 열었다. “친구. 어디가?~” 호주 사람들과의 수다로 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고아 해변. 아직 정하지는 못했어~” 표가 나지 않게 딱딱하게 말했다. 그가 왜인지 차갑게 느껴졌었다. 레옹은 대뜸 자기도 해변에 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리고, 다음 역에서 내리자는 것이다. 잠시 망설였다. 이번 여행이 수상치 않게 느껴졌다. 사실 고아 해변까지 혼자 갈 일도 막막했기에 그러자고 했다. 어느 순간 우리는 해변으로 가는 택시를 잡고 있었다.
레옹 - 너의 마틸다를 만나길.....
레옹은 뭄바이에서 IT회사에 다니는 프로그래머였다. 나이는 30대에 미혼이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고아 해변에 가서 무작정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 외국인과 자유롭게 대화할 정도로 영어를 잘하면 좋겠다 ‘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레옹이 이렇게 말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기차 안에서의 차분함과는 다르게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조금 후회가 되었다. 레옹은 나의 여행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다.
우리는 고아의 해변 중 베나울림 해변에 도착했다. 해변을 두고 작고 아담한 동네가 쉬고 있었다. 숙소도 작고 식당도 몇 군데 보이지 않았다. 해변은 다른 고아의 해변과 달리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며칠 책 읽고 바다 보며 멍 때리기 좋은 해변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고아 해변에 가 본 적은 없었다. 고아 해변에 대한 여행 정보와는 너무도 다른 해변이었다.
레옹은 먼저 숙소로 가자고 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숙소가 있다는 것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알게 되었다. 레옹은 나랑 같이 지내길 원했다. 해변에서 웃통 벗고 맥주 마시며 멋진 일몰을 보는 맛에 고아로 온다. 그런데 레옹 하고 같이 해변에 누워있고 싶지는 않았다. 술도 잘 못 마시고 따끔거리는 햇살도 그렇고 해변의 껄끄러운 모래도 나와 맞지 않았다. “레옹. 좋은 친구 만나~~" 인사를 하고 혼자 배낭을 메고 작은 시골 마을을 걸어서 나왔다.
고아의 州도는 빠나지(옛 이름은 판짐)이다. 버스를 타고 빠나지로 가서 올드 고아나 다녀오고 다음날 함피로 가기로 했다. 뭄바이에서 함피로 가는 길에 잠깐 고아를 들려 가겠다고 마음먹는 인도 여행자도 드물 것이다. 고아는 7-80년대 히피들이 해변에서 탈문명과 자유를 팔뚝 문신에 새기고 노을을 즐기던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먹거리 놀거리가 상상도 못 할 돈으로 가능했다. 음식도 제법 맛집이 많았다. 낮에는 요가 수련원에서 안정하고 밤에는 록 페스티벌 가서 흥을 채웠다. 이런 매력적인 곳을 하루 머무르고 간다. 고아는 히피들의 해변에서 아라비아 해의 노을을 닮은 맥주의 유혹에 빠져들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까뮈의 소설 이방인의 '뫼르소'가 이글거리는 태양에 이마가 지근거렸던 것처럼 따가운 햇살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히피들의 천국
고아를 먼저 다녀온 누나와 조카가 찍은 사진들이다. 고아에 대한 나의 추억을 이야기하니 고아를 그냥 지나친 아쉬움을 말했다. 누나가 보내 준 사진을 보니 고아에 다시 가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