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가 멈추어 선 곳은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였다. 영국 왕 조지 5세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바다 위의 거대한 문이다. 그 옆에 2008년 파키스탄 테러집단의 테러로 유명한 타지호텔이 있다.
“마리아~ 배고프다.” 뭄바이에서 볼거리들은 이미 오기 전에 여행 블로그에서 거의 보았다. 바다 위에 그냥 덩그러니 생뚱맞아 보이는 인공물로만 보이는 나에게 마리아는 너무도 전형적인 안내원을 자청하고 있었다. 마리아에게 같이 밥이나 먹자고 말했다. 마리아가 데려간 식당은 인도식 백반인 ’탈리‘가 주메뉴였다. 마리아는 속이 좋지 않다고 먹지 않았다. 나 혼자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모습을 앞에서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리아. 고향이 어디야?”하고 물었다. 마리아는 오늘 기차를 타고 갈 고아에서 태어났고 종교는 가톨릭이었다. 고아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뭄바이를 포함해 남인도는 오랜 식민지로 있던 탓에 힌두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들이 많았다. 주민의 40% 이상이 가톨릭교도이다. 언제부터인지 마리아는 마치 나의 여행 안내원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내가 요구하는 것을 챙기고 들어 주었다.
마리아가 택한 두 번째 장소는 간디 기념관이었다. 간디가 1917년부터 1934년까지 인도의 독립운동 본부로 사용했던 집을 기념관으로 꾸며 놓았다. 간디의 물레는 2층에 전시되어 있었다. 생전에 간디는 모든 인도인이 날마다 한두 시간은 물레질을 할 것을 권유하고 실천했다. 물레질을 통해 외국제의 옷감에 대한 의존 대신 자급자족을 통해 민족의식의 자립을 일깨우려 했다. 물레는 인도어로 ’ 차르카‘이다. 차르카는 인도 국기에 그려져 있다. 마리아는 1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리아에게 내가 그녀의 몇 번째 한국 여행자 일지 궁금해졌다.
다음 장소는 내가 정했다. 뭄바이 마하락시미 역 근처에 있는 빨래터인 도비 가트였다. 영국 식민지 시절 군대에서 나온 각종 군복을 세탁하는 장소로 시작했다. 빨랫줄에 널린 백색의 침대보가 그들의 삶과 대비되어 더욱 하얗게 보였다. 도비 가트를 보고 있노라니 그저 사진이나 찍어보자고 온 나를 의식했다. 처음 인도를 왔을 때 느꼈던 불가촉천민인 ’ 도비왈라‘의 삶을 생각하는 태도가 무디어가는 것을 느꼈다. 인도에 두 번째 방문으로 인간의 차별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마리아~ 그만 우리 기차역으로 가자” 오자마자 자리를 뜨자는 나의 말에 마리아는 숨 한번 크게 쉬고 ’ 오케이‘를 시원하게 뱉었다.
마리아가 기차역에 가기 전에 택시기사에게 잠시 멈추라고 했다. 도대체 이 택시기사에게 얼마를 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리아가 얼마를 주라고 말했고 나는 주머니에서 돈을 건넸을 것이다. 마리아가 제사 지내는 사당 같은 곳에 들어갔다. 따라 들어가 보니 마리아가 기도를 하고 있었다. “마리아 가톨릭 신자 아니었어?”하고 묻자 그녀는 나에게 돈을 조금 올리고 기도를 하라고 했다. 마리아가 시키는 대로 했다. 마리아는 사람들을 다루는 능력이 있었다. 사당을 나오면서 물었다. “마리아 무어라고 기도했어?” 마리아가 말했다. “쟌 너의 안전한 여행을 위해~” 마리아는 나를 시종 ’쟌‘이라고 불렀다.
마리아와 내가 기차역에 도착하고 나니 오후가 훌쩍 지나있었다. 피곤해하는 나에게 기차역의 쉼터를 안내해 주었다. 이곳에서 좀 쉬면서 고아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제 마리아와 작별할 시간이었다. “고마웠어 마리아~” 짧은 시간이지만 같이 여행을 하게 되어 기쁘다는 말을 이어가려는데 마리아가 말을 잡아챘다. “ 쟌~ 계산하자, 난 회사에 입금을 해야 해”물론 예상했던 일이다. 마리아는 나의 눈치를 보더니 ’ 80불‘이라고 말했다. 하루 안내 비용으로 10만 원이면 적정했으나 여기는 인도였다. 내가 모르는 게 있었다면 여기는 뭄바이였다. 뭄바이의 물가는 비싸기로 유명해서 배낭여행자들이 거의 머무르지 않는 곳이라는 것은 서울로 돌아와서 알았다. 좀 당황스러웠지만 지갑에서 100불을 꺼내 주었다. 마리아가 말했다. “ 쟌~ 잔돈 가져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 하고 그녀가 갔다. 그녀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기차가 올 때까지 기차역 쉼터로 들어오는 파란 원피스의 마리아가 자꾸 머릿속에 그려졌다.
기차는 1시간 정도 연착해서 플랫폼에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탈 기차의 차량번호는 WL이었다. 그런데 차량번호는 1,2,3,4 아라비아 숫자를 달고 역에 들어오고 있었다. 옆에 서있는 역무원에게 물었다. “WL 칸은 어디에 있나요?” 역무원의 대답이 너무도 기가 막혔다. “WL은 waiting list 대기표라는 뜻이야. 진즉에 기차표로 바꿨어야지.....으이그 ㅉㅉㅉ”
나는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인도 철도청에 가입해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구한 기차 예약표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이 기차를 놓치고 다음 기차를 위해 뭄바이에서의 하루를 지내느니 차라리 기차에서 바닥에 자리 깔고 가는 편이 나았다. 무작정 기차에 올랐다. 기차표를 바꾸려는 나에게 이걸로 충분하다고 나를 끌고 간 마리아가 생각났다. ’마리아. 나에게 이러면 안돼~ 마리아.....‘
기차에 일단 올라 배낭을 자리에 깔고 앉았다.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바닥에 앉아있자니 무임승차한 것처럼 보여 민망해졌다. 그래서 “오 마이 갓”만 외치며 아무 소용없는 기차 예약표를 흔들어 댔다. ’ 내가 실수로 이리된 거지 돈 없어서 무임승차하는 건 아니야 ‘라는 상황을 아주 간단하게 알리고 있었다. “오 마이 갓”을 한 다섯 번을 외치니 기분 나쁘게 잘생기고 점잖고 돈도 있어 보이는 인도인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 사람은 호주에서 온 지인들에게 인도 여행을 안내해 주고 있었다. 사실 너무 당황해서 그 사람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왔다는 말을 오스트리아로 알아듣고 있었다. 내가 대한민국에 왔다고 하니 좁혀 앉으며 앉을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호의를 받게 된 테니스 선수 정현에게 감사해야 했다. 인도로 출발하기 며칠 전 정현이 호주오픈 8강에서 조코비치를 꺾고 4강에 올랐다. 이 호주 여행자들은 그때 대한민국의 정현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기차 안에서 호주오픈 이야기로 방금 전까지 기차표가 없어 당황했던 긴장이 풀렸다. 이때 알았어야 했다. 이번 여행이 그리 순탄치 않으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