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 뭄바이 #1

by 정원철

뭄바이에서의 한나절 (2018년 1월 26일)


다시 인도로 가겠다는 마음이 마른 봄날의 들불처럼 타오른 게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발밑을 살펴보다 마주친 작은 들꽃처럼 소리 소문 없이 피어나 있었다. 작년 인도를 다녀온 이후 평범한 일상을 지내다가 가끔씩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인도 ‘바자르’의 한가운데로 데려가곤 했다. 인도가 지나치다 만난 인연처럼 가끔 생각은 났어도 한밤중에 잠 못 이루는 그리움에 빠진 것은 아니었다. 인연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인도를 다시 혼자서 가겠다는 마음을 정하고 나서도 도대체 이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뭄바이에서 아라비아 해를 끼고 아래로 내려가기로 하고 여행 준비를 했다.

뭄바이로 들어가 한나절 머무르고 인도 중서부 아라비아 해변의 휴양도시인 고아(Goa)로 곧바로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인도 고아는 1960년대 비틀즈가 머물렀던 곳이고 히피들의 낙원으로 알려져 서양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뭄바이에서 고아州 마르가오의 ‘마드가온 정션’ 역으로 가는 기차를 출발 전에 예약해 가기로 했다. 인도의 철도청에 해당하는 IRTCT에 우여곡절 끝에 가입했다. 그리고, 클리어트립이나 ixigo 같은 기차 예약사이트를 통해 뭄바이에 도착하는 당일 오후에 ‘마드가온 정션’ 역으로 출발하는 기차를 예매했다. 메일을 통해 예매표를 출력하고 나니 뭄바이로 떠나는 일이 조금은 안심이었다. 인도의 철도청에 신분 인증을 하고 가입해서 기차표까지 예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출력한 용지에 기차의 객차를 뜻하는 ’coach’ 아래에 WL로 표기되어 있었다.

나는 오십 살이었고 그때 뭄바이로 향하는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에 나오는 첫대목을 표절해 보았다. 비행기가 짙은 구름을 뚫고 뭄바이 공항에 도착할 때 와타나베처럼 또 인도인가, 하고 생각했다. 공항의 출입구 근처 의자 위에 방금 메었던 배낭을 벗어 올려놓았다. 새벽의 차분함이 지나쳐 바깥은 거무퇴퇴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다. 고아의 ‘마드가온 정션’ 역으로 가는 기차는 오후 늦게 있었다. 뭄바이 도시는 한나절 여행으로 충분하다 생각했기에 하루 이상 머무르지 않고 곧바로 고아로 가기로 했다.

새벽 여명이 시작하기 직전 도시의 릭샤들이 시동을 걸었다. 배낭을 메고 공항을 나와 뭄바이의 기차역 ‘차트라바띠 시와지 터미너스’로 향했다.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고자 예전 ‘빅토리아 터미너스’를 바꾸어 불렀으나 릭샤왈라에게 여전히 뭄바이의 기차역은 ‘빅토리아’로 통했다. 서울에서 출력해온 기차 예약표를 기차표로 바꾸어 놓고 남는 시간에 뭄바이를 돌아볼 생각이었다. 뭄바이 중앙역에 도착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건물 가운데 직무용 건물로는 유일하다. 인도의 궁정 건축과 빅토리아 시대의 고딕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웅장하고 거대한 위용에 압도되었다. ‘1887년도에 이런 건물이 기차역으로 세워졌다면 식민지로 살아가는 인도인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이 기차역을 드나드는 인도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 지배와 복종‘을 생각지 않고서 이렇게 목디스크 걸릴 건물을 만들었을 리 없다. 광화문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은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솟아있다. 예전에는 제국주의가 지금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임을 보여준다.


뭄바이에서 만난 마리아

뭄바이 중앙역의 좌측에 있는 철도청 같은 철도 사무실 건물이 있다. 나를 이곳으로 안내해 준 여인이 있었다. 이름은 마리아였다. 파란 원피스에 머리를 단정하게 하고 목에 안내원 같은 신분증을 걸고 있었다. 중앙역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살피는 나에게 마리아는 마치 선생님처럼 차분한 영어로 무엇을 도와줄지 물었다. 예약한 기차표 A4용지를 보더니 다시 주머니에 넣어 놓으라 하고 내가 절실히 필요한 유심칩을 개통하는 일을 돕기 위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마리아는 거침없이 나를 끌고 길을 건너고 골목을 지났다. 골목을 얼마쯤 지나면서 마리아가 약간 의심스러웠으나 그냥 적당히 속아 넘어가기로 했다. 마리아는 작고 아담한 누나 같았다. 그렇게 마리아를 따라 뭄바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직 열지도 않은 통신 가게 주인에게 몇 번을 전화로 악을 써대니 얼마 후 오토바이를 탄 총각이 나타났다. 종로 도깨비시장 같은 골목에서 마리아는 상인들의 대부처럼 행동했다. 작고 아담한 그녀의 호통에 인도 남자들은 맥을 못 추었다. 일사불란하게 유심칩이 개통되었다. 마리아에 대한 신뢰와 뒷배는 탄탄하고 든든했다.

마리아는 거침없이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나를 태우고 택시기사에게 어디론가 행선지를 지시했다. ’ 마리아~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건지 말은 해줘야 되는 거 아닌가? 나는 택시기사와 흥정도 하지 않았단 말이야. 마리아~‘ 이미 마리아와 나는 택시를 타고 아라비아 해를 끼고 있는 마린 드라이브 길을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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