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 고아 #2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2018년 1월 27일)

by 정원철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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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리 지저귀는 시골 마을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베나울림 해변을 나와 빠나지로 향했다. 정오가 되어가면서 배낭을 멘 등과 어깨에 땀이 가득했다. 빠나지의 거리는 오랜 세월 포르투갈의 식민지의 영향으로 마치 유럽의 시골 도시처럼 느껴졌다. 배낭을 메고 더운 날씨에 걷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집마다 색칠이 아름답다는 거리를 무거운 배낭 메고 걷은 일은 여유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내일 함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마드가온 정션’ 역 근처에 숙소를 구하기로 하고 빠나지에서 마드가온 정션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정오가 지나 그림자가 길어지면서 몸도 점점 수분을 잃어버린 풀잎처럼 축 늘어져 갔다.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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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가온 정션’ 역으로 가는 버스가 정류장에 설 때마다 버스 안은 점점 상황이 걷잡을 수 없어졌다. 버스가 터져나갈 듯이 사람들이 들어찼다. 에어컨도 나오지 않았고 열어 놓은 창문에서 더운 바람이 몰아쳤다. 졸음인지 무엇인지 정신이 점점 흐려져 갔다. 내 옆에 탄 인도인은 마약을 한 모양이었다. 눈을 희번덕거리며 내 손에 쥔 물병을 양해도 없이 가져갔다. 숨이 막혔다. 어느 순간 무엇에라도 놀란 듯 눈이 떠졌다. 그새 잠이 들었다. 버스에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기에 행선지를 말하니 여기에서 내리라고 손짓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때 내 손에 핸드폰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자고 있는 사이에 핸드폰이 없어진 것이다. 정신이 아뜩했다. 더워서인지 긴장해서인지 모를 땀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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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나지의 버스정류장에 배낭을 메고 한참을 서 있었다. 핸드폰은 사라졌다. 마치 이 인도 밖에 있는 세상과 단절되어 버려진 느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몸은 이국만리 인도를 떠돌지만 마음은 연줄에 묶여 있다는 것을.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줄에 묶인 연처럼 핸드폰에 매달려 지내고 있었다. 그 연줄이 끊어진 것이다.


여행 중에 가족에게 톡을 보내는 일은 거의 이삼일에 한 번 정도였다. 안전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보낸 나의 유일한 신호가 카톡이었다. 아내는 혼자서 장기여행은 경험한 적이 없기에 그냥 내가 간혹 미안해서 보내는 문자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실제 서울에서 아내와 카톡은 거의 하지 않았다. 아내는 카톡을 마늘밭에 나가 일하는 것만큼 싫어했고 나는 방학에 논에 나가 새를 쫓는 일만큼 좋아하지 않았다.(어렸을 때 서로 싫어했던 일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우리는 둘 다 기계에서 보내지는 서로의 소식에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 연락도 없이 나머지 여행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핸드폰이 없으니 여행 정보도 얻을 길이 없었고 교통편도 알아볼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두운 밤길에서 손전등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누군가의 손에 들려 어디론가 가고 있을 나의 핸드폰이 눈에 아른거렸다. 한숨이 나왔다.

여행하면서 핸드폰이 정보를 얻는데 중요하지만 핸드폰이 없다고 여행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갑에 있는 현금과 마법 같은 비자카드가 있으니 그냥 흘러 다니면 되었다. 돌아올 비행기표를 끊지도 않았기에 언제 집에 돌아갈 계획도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책임하게 집에 연락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전화를 걸면 되는 일이지만 핸드폰은 나의 여행을 돕는 ‘지니’였다. 램프가 사라져 버렸다. 다행스러운 일은 가지고 갈지 말지 고민했었던 노트북이 배낭 안에 있었다. 일단 와이파이가 잘 되는 좋은 숙소를 구하기로 했다. 외관이 괜찮아 보이는 ‘우드랜드 호텔’에 짐을 풀었다. 하루 종일 배낭에 붙잡힌 등이 시원해졌다. 침대 위에 하루 종일 고생한 등을 올려놓았다.


제일 먼저 여행을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니 핸드폰 없는 여행이 살짝 궁금해졌다. 핸드폰이 없으면 불편 하지만 여행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가족에게 정기적으로 연락을 위해 매번 전화를 사용하는 게 인도에서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일단 노트북으로 연락할 방법을 찾기로 했다. 호텔에서 노트북으로 와이파이을 연결하고 카톡을 깔았다.


카톡은 핸드폰이 없으면 노트북에서 소용이 없었다. 아내에게 이메일을 써볼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이메일 주소도 모르고 이메일 쓴다 해도 그 이메일의 수신은 안드로메다 건너편의 외계인이 확인할 때까지 열어보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페이스북의 계정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퇴사한 회사의 오너가 페이스북을 열심히 했다. 그와 친구 맺기를 하지 않으면 정말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으로 친구를 맺고 열심히 ‘좋아요’를 눌렀다. 실은 별로 좋지 않았다. 퇴사하고 페이스북 앱을 지우고 들춰보지도 않았다. ‘social network service’를 어렸을 때 나를 문 동네 강아지처럼 항상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한마디로 싫어했다. 노트북에 페이스북 앱을 깔고 잃어버린 아이디와 비번을 확인하고 접속에 성공했다. 페이스북을 요리조리 만지작 거리다 우연찮게 페이스북 메신저에 접속했다. ‘이런 기능이 있었나?‘ 하고 메신저에 있는 절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노트북에 답이 왔다. 조난당한 무인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불빛을 본 듯했다. 그렇게 친구와 연결이 되었고 집에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노트북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이 그리워지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쳐다본 세상이 사라지니 침대에 누운 나의 발가락이 느껴졌다. 발톱에 멍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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