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 함피 #2

함피의 유적지 (2018년 1월 29일)

by 정원철

아쉬는 그날 오지 않았다.


아쉬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어젯밤 내가 준 돈으로 술을 진탕 마시고 어디에선가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호텔 앞마당에 릭샤 두어 대가 호텔에서 나오는 여행자를 태우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나무 밑에 앉아 있으니 릭샤꾼의 호객이 점점 짙어갔다. 아쉬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저 멀리서 릭샤를 몰고 올 것만 같았다. 아쉬가 나타나서 이대로 가버린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우리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서 1시간이 지나도록 아쉬의 릭샤는 오지 않았다. 호텔 앞에서 끈질기게 나를 호객한 릭샤왈라에게 가자고 손짓을 했다. 더 이상 아쉬를 기다리지 않고 호텔 앞 릭샤에 올라탔다. 함피의 릭샤 투어를 시작했다. 릭샤를 타고 가면서 마주오는 릭샤에 눈이 갔다. 아직 아쉬에게 미련이 남아 있었다.


퉁가바드라 강의 바구니 보트

릭샤를 타고 함피를 가로지르는 퉁가바드라 강으로 갔다. 수만 년 동안 물에 돌이 깎여 나가 군데군데 구멍이나 있었다. 돌의 모양이 순창의 섬진강변 장군목 유원지의 바위와 비슷했다. 퉁가바드라 강물은 맑았다. 돌이 물에 녹아내린 듯 옥빛의 물색은 차갑게 느껴졌다. 물 가장자리로 가보았다. 손님을 태우려고 소년이 바구니 보트 위에 앉아 있었다. 강물에 목욕하는 여자들에게로 시선이 갔다. 상의가 실종되고 가슴을 드러내었다. 인도에서는 상반신의 노출보다 다리를 드러내는 것을 여성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라 여긴다. 저번 인도 여행 때 할머니들이 발목을 드러낸 동행들에게 부끄럽다며 가리라고 말한 기억이 났다. 발목을 가리는 문화는 영국 식민지 시대 영국인들에 의해 생겨났다. 인도의 전통의상인 사리는 모두 발목을 덮고 있다. 퉁가바드라 강가에서 목욕하는 아낙네에게서 눈길을 애써 돌리고 바구니 보트에 올라탔다.

바구니 보트를 타고 강 한가운데로 나가 보기로 했다. 소년이 노를 좌우로 저었다. 바구니 보트는 강물을 미끄러지듯이 곧바로 나아갔다. 소년의 노 젓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바위들은 강물의 침식작용에 의해 포트홀이 만들어졌다. 순창에 가면 요강바위가 있다. 바위가 강물에 이렇게 깎여 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물이 바위를 마치 옷감처럼 구겨놓은 자연현상에 놀라지 않았다. ’ 정말 놀라야만 하는가?‘ 물이 바위에 홀을 만들어낸 자연현상에 감탄해야만 하는지 나에게 물었다. 나에게 좀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석회암 동굴에서 수만 년에 걸쳐 만들어진 종유석을 처음 보았을 때도 비슷했었다. 자연의 오묘한 일들에 경외심은 생겼지만 마음이 떨리지는 않았다. 대신 수만 번의 망치질로 돌을 깎아 다듬은 석공의 손길이 느껴지는 지점에서 발길이 멈추었다.

소년이 바위 틈새로 바구니 보트를 끌고 들어갔다. 바위 안쪽에는 바구니 보트 하나가 옴짝달싹 못할 공간이 있었다. 소년이 바구니 보트에 나를 남겨두고 바위 위로 올라갔다. 소년은 바구니 보트로 관광객을 태우는 일을 하는데 보트 주인의 눈을 피해 가끔 여기서 쉰다고 했다. 소년이 내 카메라를 들고 위로 올라가 나를 찍어 주었다. 나도 소년을 카메라에 담았다. 소년은 나를 바구니 보트에 그대로 두고 내려다보았다. 둘이 잠시 정적이 흘렀다. 소년은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 보였다. 이 바위틈새는 이 소년의 동굴처럼 보였다. 동굴에서 바라보는 바깥쪽 강물은 수없이 노를 저어야 하는 고된 노동의 물이었다. 소년이 비집고 들어온 이곳은 소년의 작은 왕국이었다.



빗딸라 사원

릭샤가 빗딸라 사원으로 향했다. 이 사원이 함피의 유적지 중 가장 보존상태가 좋았다. 힌두교 신 중 하나인 비슈누(Vishnu)를 모시는 사원으로 돌의 조각이 환상적이었다. 빗딸라 사원은 비슈누 신이 타고 다니던 독수리(가루다)를 모신 전차 모양의 라따(Ratha) 사원과 기둥마다 다른 음색을 가진 음악 기둥으로 유명하다. 돌을 깎아 전차의 실물 크기로 만든 라따 사원은 실제 굴러갈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이 전차를 그리는 인도의 학생들을 만났다. 돌을 다듬는 유전자가 수대에 걸쳐 내려와 수채화 물감 위에 번지고 있었다.

로터스 마할

로터스 마할은 왕비들의 휴식공간이었다. 열세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십자형을 이루고 있다. 아치나 돔, 둥근 천장은 이슬람 양식이고 기단과 외벽 등은 힌두사원 건축양식인 드라비다 양식이다. 천정에 공간을 두고 쌓아 올려 뜨거운 열기를 식힐 수 있도록 만들었다.

로터스 마할 옆에 여름궁전의 흔적


왕비의 휴식을 지키는 경비 탑


코끼리 사육장


왕비의 목욕탕

로열 구역 남동쪽에 있는 왕비의 목욕탕은 관개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와 40도가 넘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벽에 물을 흘려보내 공기를 식히는 장치도 있었다. 사방 15m에 1.8m 깊이의 이 목욕탕은 수영장에 가까웠다.


나라심하 상

1528년 건축된 사원으로 함피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 상의 하나로 손꼽힌다. 6.7m 높이의 나라심하(비쉬누의 화신) 조각 상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은 사람의 형태를, 얼굴은 사자의 형체를 갖고 있으며 머리에는 7마리의 뱀이 조각되어 있다.


바다비린가 사원의 링가

바다비린가 사원의 링가이다. 링가는 힌두교의 신 시바를 상징하는 남근으로 생식의 신으로 여긴 시바 신과 결합하게 된 것으로 본다.


관개수로와 공동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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