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 벵갈루루

길에서 맞이하는 일상 (2018년 1월 30일)

by 정원철

함피를 떠나 벵갈루루로 간다.


함피를 떠나 벵갈루루로 가는 밤기차를 타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벵갈루루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라 불릴 정도로 IT산업 도시로 유명한 도시이다. 인도의 IT산업의 현주소에 대한 관심으로 벵갈루루를 가고자 행선지를 고르지 않았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인도 남부의 향신료의 도시 코친이었다. 코친으로 가기 위해서는 벵갈루루를 거쳐야만 했다. 코친으로 가기 전에 마이소르를 들리기도 하는데 이유는 밤에 불밝힌 마이소르의 궁전이 아름답다는 소문때문이다. 남인도의 여행을 염두에 두면서 코친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유럽인들이 돈과 목숨을 던지고서라도 인도에 다다르려 했던 이유는 향신료에 대한 열망때문이었다. 나 또한 향신료를 찾아 떠나는 마음을 간직하고 이번 남인도 여행길에 올랐다. 코친에 하루 빨리 다다르고 싶은 마음에 마이소르는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밤늦은 시간 함피의 마유라 호텔에서 나와 릭샤를 타고 호스펫 역으로 갔다. 야간기차 여행이 이제는 지겨울 만도 한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어젯밤 불쑥 찾아온 옛일들이 도무지 방 안에서 나가지 않고 잠을 재우지 않았다. 혼자서 지내는 밤에 지난 일들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낯선 길을 짚어 가다 보면 지나온 길을 되돌아갈 생각도 되돌아볼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은 나를 붙잡고 있던 생각들을 어딘가에 버려두고 길을 찾아 떠나는 일에 몰두하는 맛이 있다. 마유라 호텔에 지난 밤의 생각의 찌꺼기들을 남겨두고 기차 시간보다 넉넉히 일찍 기차역으로 갔다.

호스펫 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9시간 이상을 달려 다음날 아침 6시가 훌쩍 넘어서 벵갈루루 시티역에 도착했다. 벵갈루루에서 자지 않고 곧바로 야간기차를 타고 코친으로 갈 생각이니 벵갈루루는 한나절 정도 돌아볼 생각이었다.

벵갈루루는 해발 950M에 위치한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벵갈루루 시티역에서 맞이한 아침 공기는 약간 서늘하다 못해 몸이 약간 움츠러들 정도였다. 고아와 함피에서 더위에 지쳤었는데 벵갈루루의 아침은 지금까지 다녔던 인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다른 점은 날씨뿐 만이 아니었다. 벵갈루루는 1831년부터 50년간 영국 인도통치부의 본부 역할을 했고 1947년 인도 공화국에 통합될 때까지 영국의 통치부와 군대가 주둔했었다. 그 영향으로 시가지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유럽인과 미국인들이 특히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었다. 인도의 다른 도시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지하철을 타고 벵갈루루의 중심 시가지인 M.G.Road(마하트마 간디 로드) 갔다. 지하철역에서 나오니 스타벅스가 눈에 들어왔다.


보타닉 가든

지하철을 타면 벵갈루루 시내 곳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이제껏 인도에서 이처럼 교통과 환경이 잘 정비되어 있는 곳을 다녀본 적이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보타닉 가든을 찾아갔다. 인도에서 아침에 공원 산책이 낯설게 느껴졌다. 잠시 인도에 와있다는 생각을 잊어버렸다.


점심은 벵갈루루 시내에 있는 ‘해금강’이라는 한식당으로 갔다. 간판을 보니 북한 주재원이 다니는 한식당 같아 보였다. 혹시 북한 종업원 동무의 응대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식당 문을 밀었다. 내부는 중국식당에 가까웠다. 메뉴판 속의 음식 사진을 보고 맛에 대한 기대는 안 하기로 했다.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오후에 남는 시간을 이용해 인도의 영화관을 찾았다. 인도의 영화 산업을 ‘발리우드’라고 부른다.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로 일 년에 영화 제작 편수는 세계 최대이다. 지구 상의 영화 4편 중 1편은 인도 영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니 인도인들의 영화 사랑은 각별하다. 인도의 영화관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작년 바라나시에서 처음으로 영화관에 갔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보다가 거의 반은 꿈속에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인데 인도 영화는 보기만 해도 스토리를 대강 이해할 수 있다. 가끔 음악과 군무가 나와 뮤지컬 같기도 했다. 할리우드 영화가 유일하게 힘을 쓰지 못하는 곳이 인도이다. 영화 러닝타임이 3시간이고 중간에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영화를 보러 간 건지 자러 간 건지 애매해졌으나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빠져 들었다.


벵갈루루에서 코친으로 가는 야간기차를 타기 위해 예스반퍼트 역으로 갔다. 지하철 역을 찾고 노선을 알아보고 출구를 찾는다. 기차표의 시간을 다시 본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린다. 여행의 일상이다. 내가 지나온 길에 나를 두고 갈 수 없다는 일이 다행스러웠다. 남겨진 것들과의 작별과 애도를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함에도 이렇게 글로 옮겨 놓고 있는 일은 인도의 기차역에 앉아 기다리는 나와 이제는 작별을 고하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적어두면 내 기억으로 부터 사라지는 아픔을 염려하지 않고 편히 잠들수 있었다. 글을 쓴다는 일은 어쩌면 지나간 나와 작별하고 애도하는 일이었다. 벵갈루루에서 하루를 보낸 나의 시간과의 작별을 충분히 애도하며 코친으로 가는 야간기차의 침대를 펴고 누웠다.

keyword
이전 07화남인도 - 함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