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 코친 #1

포트 코친 (2018년 1월 31일)

by 정원철

포트 코친에 도착 (2018년 1월 31일)


1497년 7월 8일 바스코 다가마는 4척의 배를 이끌고 남인도의 향신료를 얻기 위해 리스본을 떠나 다음 해인 1498년 5월 20일 인도 캘리컷에 도착하였다. 바스코 다가마가 이듬해인 1499년 리스본으로 돌아올 때는 순풍을 타고 23일 만에 건넜던 인도양을 3달에 걸쳐 횡단해야만 했다. 오랜 항해 탓에 선원의 1/3만이 살아서 돌아왔다. 이후, 바스코 다가마는 두 번 더 인도양을 건넜고 처음에는 상인으로 다음에는 약탈자로 인도 땅을 밟았다. 대항해의 시대를 연 그가 세 번째 인도양을 건너던 1524년 인도의 이곳 코친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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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친은 남인도 향신료의 도시이다. 숲 속의 나뭇잎을 따서 손으로 비비면 향기가 난다. 이 향신료를 얻기 위해 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이 각축을 벌였다. 지천에 널린 향신료가 아라비아 해에 불어오는 바람에 낮잠을 즐기던 인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코친은 누군가에게는 축복의 땅일지 몰라도 인도인들에게 spice는 저주로 읽혔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바스코 다가마가 다녀간 지 520년 후인 2018년 1월 31일 아침 코치의 에르나쿨람 역에 도착했다. 신시가지인 ‘에르나쿨람’과 구시가지인 ‘포트 코친’과 ‘마탄체리’ 그리고 항만이 있는 윌링던 섬을 묶어서 ‘코치(kochi)’라고 부른다. 포트 코친으로 가서 숙박을 알아보기로 했다. 포트 코친은 배를 타고 가야 했다. 보트 선착장인 메인 보트 제티(Main Boat Jetty)에서 포트 코친으로 가는 배를 탔다.


인도의 서쪽 바다인 아라비아 해의 해변 도시를 따라 뭄바이, 고아, 코친으로 내려오다 보니 우리나라 서해 기행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해지는 바다는 같은데 서해 바다보다 열 배는 더 거칠어 보였다. 포트 코친은 우리나라 서해의 군산 정도이고 인도의 최남단인 ‘깐냐꾸마리’는 해남 땅끝마을과 딱 맞아떨어진다. 아라비아 해를 끼고 만들어진 도시들은 대부분 유럽 열강들의 약탈 기지 항구였다. 그 점에서 일제가 쌀을 수탈하기 위해 군산을 기지 항으로 삼은 것과 비슷했다.


포트 코친에 도착하니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중국식 어망이었다. 1400년대 중국 광둥 성에서 행해지던 낚시 방식이 전해졌다고 한다. 사진으로만 보던 중국식 어망을 직접 카메라로 담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숙소를 알아보러 해변에서 가까운 골목길을 걸었다. ‘Adam’s old inn’이란 간판이 보였다. ‘오래된 여인숙’이라고 읽히자 왠지 들어가 보기라도 하고 싶어 졌다. 들어가서 방이 있냐고 물었다. 주인은 없고 일하시는 아저씨가 웃어 주었다. 어느새 방에 가방을 던져두고 나오면서 아저씨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했다. 이 여인숙에 방을 잡은 이유는 아저씨의 미소였다. 아저씨를 알프레도라고 불렀다. 내가 알프레도라고 불러도 되돌아 본 적이 없지만 매번 알프레도 아저씨라고 불렀다.


유럽인들이 오랫동안 머물면서 코친에는 인도라는 문화적 정체성이 사라졌다. 1세기에 예수의 제자 ‘도마’가 인도에 처음 상륙한 곳이 코친 근처이고 1503년 인도 최초의 성당인 ‘성 프란시스’ 성당이 세워졌다. 이 성당은 1948년 인도 독립 전까지 영국 성공회의 남인도 본부였다.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의 성당을 세우고 코친을 침략하고 약탈한 죄의 용서를 구했을지 모르겠다. 아니다. 죄는 숨기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나도 잘 숨겨 놓아 들어가 무릎 꿇고 기도라도 드리고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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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칼리 공연을 보러 갔다. 이야기를 뜻하는 ‘카타(Katha)’ 놀이를 뜻하는 ‘칼리(Kali)의 합성어로 '이야기 놀이판'이다. 인도 남부의 케랄라에서 500년 전에 시작되어 중국 경극에 영향을 주었다. 카타칼리 공연의 분장에 다섯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배우들이 분장하는 모습부터 보여주었다. 분장을 다 마친 배우가 자그마한 무대에 섰다. 원색의 분장과 의상에 몰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에 들어와 누웠다. 천장에 매달린 실링팬이 돌았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알프레도 아저씨가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잠깐 고민했다. ’안 먹었다고 하면 혹시 밥을 주려나?‘하고 아직 안 먹었다고 손을 저었다. 아저씨가 ’어서 먹으라고 ‘ 손으로 대답했다.

남인도 코친에 오니 동양인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해변 마을 민박집에 머무는 기분이었다. 천정에서 돌아가는 실링팬을 보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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