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로 유람을 가는 날이다. 어제 내가 묵고 있는 ‘오래된 여인숙’에서 곱상한 주인집 딸에게 이 수로 유람을 예약했었다. 아침에 나를 픽업하러 오기로 한 택시가 제시간을 한 참 지나도 오지 않았다. 알프레도 아저씨에게 걱정 반 투정반으로 여인숙 계단을 오르내리며 택시가 왔는지 물었다.
택시는 약속한 시간을 한 시간을 넘겨 도착했다. 이미 택시 안에는 나 외에 다른 수로 유람객이 타고 있었다. 이들도 혹시 수로 유람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했을 것이다. 택시를 타고 한참을 가서 내린 곳은 물길을 따라 키 큰 야자수 나무가 보이는 다리 밑이었다. 다리 밑에 야자수 나무로 햇빛 가림막을 엮어 만든 배인 ‘껫뚜발람’과 긴 장대를 손에 쥔 노인이 있었다. 코친이 속한 케랄라 주의 이 수로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세계 10대 낙원 중 하나이다. ‘꼴람’에서 ‘알레피’에 이르는 수로를 쌀 수송선으로 쓰이던 배를 개조해 밤을 새워 수로를 따라가는 여행이 유명하다. 오늘은 알레피 수로를 반나절 정도 조그만 배로 둘러보고 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장대를 밀어내는 노인의 시커먼 팔뚝에 핏줄이 서자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는 조용히 물 위를 미끄러졌다.
야자수 나무 사이로 자그만 물길이 뻗어 있었다. 배가 좁다란 수로로 들어갔다. 야자수로 뒤덮인 밀림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곳에는 코코넛 농장이 있었다. 농장에서 일하는 일꾼들과 그들의 삶의 흔적들이 새들만 살고 있을 줄 알았던 야자수 숲 속에 터를 잡고 있었다. 코코넛은 껍질까지 버리는 게 없었다. 껍질을 모아 말려 실을 만들고 이 실을 살뜰한 아주머니는 비비 꼬아 코코넛 끈을 만들었다. 요즘 등산로에 깔린 매트는 이 코코넛 끈을 엮어서 만들었다.
외국인 가이드가 잎을 따서 손에 비벼보고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다. 라임 향기가 진하게 났다. 이곳에 있는 나뭇잎 어느 것이나 따서 손에 비비면 독특한 향기를 내었다. 후추 열매는 온 숲에 자생하고 있었다. 인도의 향신료는 우리의 고추처럼 인도인들이 농사짓는 작물로 생각했다. 이 숲에 들어와 보니 향신료는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채취하는 식물이었다. 물론 지금은 향신료는 농장에서 수확하는 작물이다. 그 당시 유럽인들이 이 땅에 눈이 뒤집힌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배의 장대질을 하던 노인이 야자 잎을 접시 삼아 밥과 커리를 담아내어 놓았다. 모두 빙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향신료의 맛이 깊게 입에서 퍼졌다. 신선한 향신료가 주는 맛에 점점 빠져들어 어느새 야자수 잎의 밥을 다 먹어 버렸다. 입안에 향신료의 맛을 느끼며 손에 든 물병에 병마개를 천천히 닫았다. 고기를 주로 먹던 유럽인들의 느끼한 맛을 잡아준 후추가 오스만 튀르크의 팽창에 가로막혀 더 이상 밥상에 오르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고춧가루 없이 김치를 담가 먹는다고 상상해보면 바스코 다가마가 인도에 가기 위해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양을 건넌 이유는 이 맛 때문이었다.
인도인들은 이 수많은 향신료를 섞어 혼합 향신료인 마살라(Masala)를 만들어 냈다. 인도에는 2억 명이 살고 2억 개의 마살라가 존재한다고 할 만큼 수많은 마살라가 있다.
수로 유람을 마치고 '오래된 여인숙'으로 돌아왔다. 마을 입구에 내려 걸어오는 길에 릭샤의 호객으로 열 걸음을 걷지 못할 정도였다. 이곳 포트 코친에서 마을 길을 걷는다는 것은 릭샤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처럼 보였다. 한 릭샤의 호객을 물리치고 나면 또 다른 릭샤가 왜 릭샤를 타지 않고 걷는지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호객을 해댔다. 오래된 여인숙에 들어와 알프레도에게 푸념을 했다. “이곳에는 릭샤들이 왜 이렇게 극성이죠? 걸어 다닐 수가 없어요” 알프레도가 말했다. “지팡이를 들어요” 알프레도는 지팡이를 들고 시범을 보여 주었다. 마치 새를 쫓듯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알프레도 내일 봐요” 여인숙 안내데스크 옆으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내방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