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슬리퍼를 끌고 아라비아 해의 해변으로 갔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인도양을 오고 가는 상선과 갈매기들을 번갈아 보았다. 인도양의 계절풍을 타고 바다 냄새가 실려 왔다.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이곳에서 정착하고 살 수도 있을 만큼 평온한 시간이 흘렀다.
아라비아 해변을 순찰하던 인도 경찰이 내 옆에 앉았다. 콧수염을 기르고 베이지색 경찰 복장 차림을 한 그가 나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알게 된 한 가지는 나의 국적은 정확히 말해 ‘south korea’이다. 그냥 ‘korea’라고 말하면 질문을 한 번 더 받게 된다. ‘south? north?’ 아무도 없는 해변가의 벤치에 둘이 앉아 말없이 바다를 같이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다. “아름다운 곳이에요. 미스터 음~~” 그가 말을 받았다. “혼자서 여행을 다니다니~~~(엄지 손가락을 세웠다)” 우리는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각자 하고 싶은 말을 건넸다. 아라비아 해를 바라보는 아침의 평온함에 지장이 전혀 없을 만큼의 거리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옆에 앉아 있는 그가 오래된 친구 같았다.
마탄체리 궁전과 유대인 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대인 거리를 가기 위해 릭샤를 기다렸다. 어제는 그토록 극성이던 릭샤가 정작 릭샤를 이용하려 하니 거리에 릭샤가 눈에 띄지 않았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오늘 만난 릭샤에게 횡재를 안겨주려 했는데 안타깝다.’ 혼잣말로 구시렁거렸다. 어디선가 나타난 릭샤에게 마탄체리를 가자고 했다. 이 릭샤왈라는 코친의 유명 관광지를 다 돌아보게 해 주겠다고 설레발을 쳤다. 그에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러자고 맞장구를 쳤다. 그가 성 프란시스 성당에 멈추어 서려했다. 며칠 전 다녀온 곳이라 그냥 가자고 말했다.
유대인이 사용하던 향신료 창고를 둘러보고 마탄체리 궁전으로 갔다. 1555년 포르투갈 상인이 무역 허가를 얻기 위해 당시 케랄라 바르마에게 지어 바친 궁전이 마탄체리 궁전이다. 1663년 네덜란드 장인을 불러 이 궁전을 보수했는데 이를 계기로 네덜란드 궁전 (더치 팰리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릭샤가 다음 갈 장소는 알고 있었다. 유대인 마을이었다. 이스라엘 왕국의 바벨론 포로기 때 이곳으로 이주해서 약 2,500명 정도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 본국으로 대부분 되돌아갔다. 유대인의 삶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유대인 마을의 거리는 관광 선물용품점이 가득 메웠다. 그 가운데 호텔이 하나 있었다. ‘GINGER HOUSE MUSEUM HOTEL’ 이란 이름으로 입구에서부터 엔틱 장식물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호텔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회랑 같은 호텔의 건물 안쪽으로 자그만 장식 정원이 아라비아 해를 곁에 두고 있었다. 호텔 카페에 앉아 차를 주문했다.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이 호텔에서 머물다 가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다.
코친에서 아유르베다 오일 마사지는 민간 치료요법이다. 알프레도가 꼭 한 번 받아 보라고 권해 마사지 샵을 추천받아 가 보았다. 두 번 하라고 하면 다시 생각해 보겠다. 뜨거운 기름을 온몸에 바르고 나무 침대 위에 발가벗고 누워있으니 오히려 마음이 이완되지 않았다. 머리 위에 데워진 기름을 조금씩 떨어뜨려 몸의 기운을 다스린단다. 해부 실습실 같은 방 안의 나무침대 위에서 내려와 떡 진 머리를 수건으로 닦았다. 일 년 정도는 바디로션 없이 지내도 될 듯싶었다.
내일 인도를 떠나 인도양의 눈물이라는 스리랑카로 간다. 인간은 어디에도 영원히 머물 수 없는 운명임을 여행은 깊이 있게 알게 해 준다. 직업을 가지고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며 정착했다 하더라도 시간 속에서 어느 누구도 영원히 머무를 수 없다. 해가 지는 아라비아 해가 빛을 잃어 갔다. 인도에서의 여행을 코친에서 멈추기로 했다. 남인도 아라비아 해변가 도시 여행의 정점을 코친으로 기억해 두기로 했다. 코친에는 국제공항이 있기에 스리랑카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알프레도에게 부탁해서 스리랑카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알프레도가 어두워져서 들어온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는 나를 혹시 보지 못할 수도 있어 기다렸다고 했다. 그와 악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