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 엘라 #1

엘라로 가는 기차 (2018년 2월 4일)

by 정원철

엘라로 가는 길 (2018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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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실론티’ 캔 음료가 TV 광고에 등장했다. 바다 한가운데 범선이 ‘홍차의 꿈’을 찾아 떠나며 ‘실~론~티~~’하며 길게 여운을 남겼다. 그해 한여름 슈퍼마켓에서 실론티를 꽤 나 사 마셨던 기억이 있다. 그 실론은 스리랑카의 옛 이름이다. 1972년 스리랑카로 국명을 바꾸었다. 스리랑카는 세계 2위의 홍차 수출국이다. 스리랑카가 홍차를 심고 생산한 계기는 1870년 그동안 재배해온 커피나무가 모두 전멸했기 때문이다. 커피나무가 죽은 자리에 차나무를 심었다. 1890년 영국의 ‘토마스 립톤’이 실론에서 홍차 사업을 시작하며 영국에 홍차를 수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때부터 실론은 홍차의 나라가 되었다. 홍차 중에 해발 1,200m 이상의 고산에서 자라는 ‘하이 그라운’을 알아주는데 1,900M 고도의 ‘누와라 엘리아, 우바, 딤불라’에서 생산되는 찻잎이 명품 홍차로 만들어진다. 영국은 이 질 좋은 찻잎을 실어 나르기 위해 콜롬보에서 바둘라까지 기찻길을 만들었다. 이 기찻길의 거의 끝에 엘라가 있었다. 엘라로 가는 파란 기차를 타기 위해 캔디 시티역의 플랫폼에 섰다. 기차가 거의 도착할 시간인데 플랫폼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기차 시간을 잘못 알았는지 다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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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를 출발한 파란 완행 기차가 멀리서 서서히 캔디 시티역으로 들어왔다. 특실을 제외하고는 좌석이 따로 정해지지 않은 자유석이었기에 기차를 타자마자 앉을자리를 살폈다. 예상한 대로 객실 통로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7시간을 서서 갈 일이 막막했다. 일단 객실 통로에 서서 다음 역에서 내리는 사람의 자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었다. 일단 외국인들은 거의 엘라까지 간다고 생각하고 현지인들이 앉아 있는 좌석의 손잡이를 붙잡고 객실 통로에 서 있었다. 스리랑카 청춘들은 흥이 많다. 잼베에 맞추어 손뼉과 기차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춘천 가는 기차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들의 흥에 취해 객실의 좁은 틈에 갇혀 있어도 답답하지 않았다. 어느새 나의 손도 내 허벅지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 운이 나쁘지는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서 아주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도 창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운이 억세게 좋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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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차창 밖으로 차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세상은 세 가지 색으로 채워졌다. 파란 하늘 흰 구름 녹색의 찻잎 세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몇 시간째 계속되었다. 광활한 차밭의 차나무들은 적게는 수십 년 많게는 백 년 이상이 된 나무들이다. 저 넓은 차밭에서 인도에서 강제 이주해온 타밀인들은 차밭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찻잎을 따다가 죽는다. 산등성이의 주름진 차밭을 기차가 지나는 광경은 자본의 잔혹함이 숨어 있다 하더라도 한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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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앉은자리 앞에 유럽에서 온 듯한 젊은 남녀가 앉았다. 척 보아도 남자가 여자 친구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콧수염이 완고해 보이는 이 청년은 ‘다코다 패닝’과 ‘엘 패닝’을 뒤섞은 묘한 매력의 아가씨에게 홀딱 반해 있었다.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두 청춘 남녀의 여행이 즐거워 보였다. 이 청년이 옆에 서 있던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신사처럼 친절을 베풀었다. 그러나 그 후 ‘패닝’이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 청년은 딱 보아도 후회하는 모습이었다. 엘라에 다 도착할 때까지 친절을 베풀었던 이 청년은 자리에 앉지 못하고 여자 친구 ‘패닝’의 즐거운 한 때를 서서 보고 있었다. 이 광경을 앞에서 보고 있자니 이 청년이 좀 안쓰러워 보였다. 여자 친구 앞에서 신사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패닝’과 행복한 시간은 놓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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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이달가시나 역을 지나고 있었다. 몇 정거장을 더 지나서 기차는 엘라에 도착했다. 거의 모든 여행객들이 이곳 엘라에서 내리는 듯했다. 순식간에 작은 기차역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유럽에서 온 트레커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엘라에 도착했다. 어제 인도 코친을 출발해 다음날 오후 스리랑카 엘라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어놓으니 먼 길을 오는 여정의 고단함이 몰려왔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는 밖이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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