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았다. 테라스의 문을 여니 새소리가 바람과 함께 쏟아져 들어왔다. 하루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멈추지 않고 시작한다. 여행이 마치 시간의 흐름 위에 올라타 떠가는 기분일 때가 있다. 그냥 시간 따라 흘러가다 낯선 곳으로 가는 날에는 불안으로 몸을 사리게 하지만 때로는 경이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로 설레기도 한다. ‘립톤씻’으로 가기로 한 오늘 그 어느 때 보다 설레였다. 동물의 왕국에서 세렝게티 초원이 보이면 초원 한가운데에서 지는 해를 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그러고 보니 내 모든 여행의 발단은 충동이었다. 오늘 ‘립톤씻’을 찾아가는 길도 충동적이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스리랑카에 왔다.
‘립톤씻’을 다녀온다는 말은 ‘립톤’이 앉아 쉬었다는 기념비적인 자리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립톤씻’으로 가는 길이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엘라에서 기차를 타고 하퓨탈레까지 가는 길은 파란 완행 기차 여행의 백미이다. 이른 아침 엘라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기차에 올라타 바라본 세상은 막힌 곳이 없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지리산의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가는 길을 ‘일망무제’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엘라의 해발 고도가 지리산 정상과 비슷할 거 같았다. 기차가 산길을 따라 내달렸다. 차밭을 가로질러 가는 파란 완행 기차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사진과 말로는 담아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찍은 사진들이 가끔 나를 그때의 파란 완행 기차 속으로 돌아가는 공중전화 박스가 되어 주었다. 영화에서 공중전화 박스는 타임머신으로 자주 등장했었다. ‘어딘가를 다녀왔다’는 말은 가끔씩 기억을 소환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공중전화 박스가 하나 생겼다는 뜻이다. 파란 완행 기차가 ‘하퓨탈레’에 도착했다.
하퓨탈레에서 내려 담바틴 티팩토리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일반 교통수단을 통해 갈 수 있는 곳은 담바틴 티 팩토리까지 였다. 담바틴은 스리랑카의 우바 지역에 있는 차 공장이다. 토마스 립톤은 이곳 우바 지역에 10만 파운드를 투자해서 다원을 직접 경영하여 담바틴 다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립톤의 노력으로 스리랑카의 우바 홍차가 세계 3대 홍차가 되었다. 담바틴 티 팩토리는 립톤의 홍차 역사를 말해 주는 곳이었다.
담바틴 티 팩토리에서 차밭을 올라 정상에 이르면 ‘립톤씻’이 있다. 입구에서 툭툭이를 탔다. 툭툭이가 정상까지 오르지는 않았다. 내린 곳에서 천천히 정상으로 걸었다. 아무도 없는 해발 1,900M의 차밭을 혼자 걷는 길은 당연히 한가롭고 평온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어슬렁거리며 나와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큰 개들이 차밭 트레킹의 평온함을 방해했다. 어쩌면 내가 이 개들의 평화를 위협했을 수도 있다. 지나고 보니 그렇게 생각되었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립톤씻’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우바의 홍차는 홍차 3g을 물 300ml에 1분 30분 우려냈을 때 맛이 가장 좋다고 한다. 산 정상 휴게소 같은 곳에서 홍차를 팔았다. 이곳에서 홍차를 마시지 않고 내려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아주머니의 홍차를 우려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천으로 된 거름망을 사용해 높은 곳에서 뜨거운 물을 떨어뜨리듯이 붓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뜨거운 물을 식히면서 순간적으로 홍차를 우려내는 듯이 보였다. 진하게 우려낸 홍차로 달달한 밀크티를 만들어 내 앞에 가져왔다. 홍차의 향이 산 정상의 바람을 타고 퍼졌다. 아마 립톤은 이 밀크티를 마시면서 구름이 펴져 덮어가는 차밭의 풍경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차밭 입구까지 걸어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차밭 사이로 난 길을 천천히 내려오며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곳을 사진에 담아 가보려 애썼다. 내가 걷는 차밭은 누군가에게는 고된 노동의 일터이다. 내려오다 보니 마을이 보였다. 찻잎을 모아두는 창고에 찻잎을 담은 자루가 수북했다. 학교를 다녀오는 아이들도 만났다. 돌아가는 길의 버스 안에서는 담바틴 티 팩토리에서 일을 한다는 스리랑카 아가씨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수줍게 웃었다. 사진에 아침이면 지겹게 돋아나는 찻잎보다 사람의 미소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사람이 찻잎보다 백배는 더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