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파다(sri pada)는 스리랑카 사람들이 성지로 받드는 산이다. 산 정상에 거대한 발자국처럼 움푹 파인 자국이 있다. 이를 보고 스리랑카 사람들은 각자의 종교 가지고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는 이곳에서 아담이 지상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다고 하여 아담스 피크(Adam’s peak)라고 부른다. 엘라에는 아담스 피크와 닮은 리틀아담스피크라는 산 정상이 있었다. 리틀아담스피크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팥고물 같은 하늘빛이 뒤덮은 시각에 숙소에서 나왔다. 혼자서 인적이 드문 산길을 가려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일출은 보고 싶은데 어둠이 덮인 이 길은 걸어가고 싶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산길에 접어들었다. 멈추어 섰다. 이 어둡고 낯선 길을 계속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뒤돌아서 가면 집에 돌아가서 두고두고 마음에 걸릴 게 분명했다. 그 순간 접근 회피 갈등의 결말이 나기도 전에 상황이 종료되었다. 산길을 오르는 다른 사람들의 인기척이 났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리틀아담스피크로 발길을 옮겼다. ‘다시 그날로 되돌아간다면 여전히 머뭇거렸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처음부터 숙소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일찍 산에 오르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무도 모르겠지만 조금 모양 빠지는 마음을 숨겨두고 산길을 오르는 다른 사람들보다 열 걸음 정도는 거리를 두고 먼저 산길을 올랐다. 그들의 출현과는 전혀 관계없이 나는 내 갈 길을 가고 있었다고 생각 없이 내딛는 두 다리에게 이야기했다. 거창한 일출은 없었다. 일출에 대한 집착은 없었기에 실망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산 공기가 좋았다. 특히 이른 아침에 산 정상에서 들이마시는 숨은 얇은 살 얼음 슬러쉬 맛이 느껴졌다.
나인아치브릿지
엘라에서는 따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의자 위에 앉아 먼 산 보고 있으면 신경 쓰지 않아도 시간은 알아서 잘 갔다. 숙소 옆에 밥을 아예 대놓고 먹는 곳이 있었다. 매일 매끼 볶음밥에 에이드 주스 마시며 집으로 돌아가면 열흘 정도 김치찌개만 먹겠노라며 비릿한 속을 상상으로 달랬다. 내일이면 다시 콜롬보로 기차를 타고 이동해서 저녁 비행기로 집에 돌아간다. 스리랑카에 더 머물다 태국으로 들어가려는 계획을 접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곧 있으면 설날이 다가오기도 했지만 핸드폰 없는 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가족들에게 연락하지 못한 날이 꽤 되었기 때문이었다. 점심을 먹고 툭툭이를 불렀다. 나인아치브릿지로 가자고 했다. 툭툭이 기사가 사진 찍기 아주 좋은 곳을 알고 있다며 자신만 믿으라고 설레발을 쳤다. 비포장 길을 툭툭 거리며 지나 산속의 펜션 같은 숙소에 툭툭이를 세웠다. 숙소 주인이 자기 친구라며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따라오라고 했다. 그가 숙소 앞마당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나인아치브릿지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명당이었다. 이 다리는 1921년에 착공해 시멘트와 석조 블록만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아홉 개의 아치가 센트럴 하이랜드산을 가로질러 있었다. 기차가 오는 순간을 기다렸다 사진에 담았다. 컴퓨터 화면에서 보아왔던 사진이 내 카메라에도 담겼다. 나인아치브릿지 위로 올라가 보았다. 기찻길을 따라 걸어갈 수가 있는데 이대로 걸어가면 엘라 역에 도착한다. 이 철길을 따라 나와 같이 걸어가는 여행 가족들이 있었다. 아빠는 아이를 캐리어에 메고 앞서 걸었다. 그의 앞을 지나가며 ‘굳 파~더’라고 인사했다. 그가 따가운 햇살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대답했다. “It’s so hard” 그런데 캐리어에 탄 아이가 더욱 지쳐 보였다. 아이에게 좋은 아빠는 맞을지 몰라도 고마운 아빠인지는 아리송했다. 따가운 햇살 아래 철길 위를 걷는 일은 이번 생에 두 번 다시는 없을 것이다. 드디어 엘라 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길 (2018년 2월 7일)
아침 6시 39분 엘라 역에서 콜롬보로 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이 기차를 타고 10시간을 가면 콜롬보 역에 도착한다. 엘라로 올 때 와는 다르게 기차는 좌석이 여유 있게 남아 있었다. 엘라로 오는 사람들은 많은데 이른 아침에 엘라를 떠나는 사람은 드문 모양이었다. 기차가 캔디를 지나갈 때 멀리 ‘시기리야 락’이 보였다. 스리랑카에서 가보지 못한 많은 곳 들은 다음을 위해서 남겨두기로 했다. 기차가 콜롬보 역에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도착했다. 콜롬보 역 앞에서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흥정했다. 그런데, 택시요금이 공항에서 콜롬보 역으로 올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비쌌다. 바가지를 씌워도 너무 심하다 싶어 잠시 망설였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택시가 너무 낡았다. 요금도 비싼데 차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낡아 다른 차를 알아보았다. 사정이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차 상태라도 좋은 차를 알아보았다. 처음에 흥정하다 거절했던 말 많은 친구가 회사에서 곧 좋은 차를 보낸다고 끈덕지게 늘어 붙었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만은 아니었다. 차가 왔다며 나를 이끌고 간 곳에 택시 마크도 없이 상태가 딱히 좋다고 할 수도 없는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갈 시간도 다가오고 해서 그냥 빨리 출발하기로 했다. 선금을 요구하는 택시기사에게 돈을 지불했다. 택시는 공항으로 가는 톨게이트를 지나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차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택시는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멈추어 버렸다. 택시기사는 차를 고친다며 보닛을 열었다. 비행기 시간을 생각해 여유 있게 출발했는데 고속도로 한가운데 고장 난 택시 안에서 시간을 허비해가고 있었다. 택시기사에게서 내가 준 돈을 다시 받아 들고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히치하이킹을 했다. 삼십 분을 구조의 손길을 보내듯 손을 흔들어 댔다. 승합차 한 대가 내 앞을 수백 미터 지나 멈추었다. 택시기사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노려보다 한마디를 날렸다. ‘그러게 내가 좋은 차로 가자고 했잖아~ 으이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