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2018년 2월 이후 혼자서 여행을 떠난 기억이 없습니다. 사진을 정리해 놓은 저장소에 스리랑카를 마지막으로 새로운 폴더가 생기지 않았으니 맞을 겁니다. 지난 삼 년 중 반은 코로나가 여행이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지워버렸습니다. 마스크를 끼고 들숨 날숨을 느끼며 걷다 보면 숨 쉬는 내가 답답한 것보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생기 없음이 더욱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아마 그들도 나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겁니다. 웃는 얼굴을 스스럼없이 바라보며 같이 웃던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요즈음 더욱 실감합니다. 여행도 그렇습니다. 다닐 때는 몰랐었는데 이렇게 두 발을 절단해 놓으니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이 향수처럼 밀려옵니다. 일상을 여행처럼 사는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즐긴 나로서는 힘이 듭니다. 그래서 생긴 생활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걷기입니다. 답답해서 걸었는데 마스크 쓰고 걸으니 더욱 답답합니다. 숨쉬기는 답답해도 걷다 보면 여행의 욕구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됩니다.
코로나로 갇힌 세상에서 얻은 한 가지는 완벽하게 내가 원하는 삶을 얻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원하지 않는 삶만을 살아가는 일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코로나로 여행하는 일이 막히니 지난 여행의 흔적을 글로 옮겨 놓는 작업할 의욕이 생겨났습니다. 지난 여행을 정리하며 추억여행을 다시 하고 온 듯합니다. 살아가는 일은 이처럼 욕망에 방향을 정하고 나아가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 욕망에 브런치라는 방향을 소개하고 지지해준 오래된 벗과 가족에게 감사합니다. 잘되면 내 탓 잘 안되면 세상 탓하며 살다가도 가끔 되돌아보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그들을 떠올리며 웃음 짓습니다. 이럴 때 행복을 느낍니다. 꼭 만나거나 전화가 없어도 세상과 연결되어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고마운 사람들입니다. 친구가 이제 무슨 주제로 브런치에 올릴 거야 하고 물었습니다.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하도록 길을 열어주더니 게으른 나를 잘 알고 계속 채근해 가는 친구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전합니다.
저에게는 새로운 관심거리가 생겼습니다. 작년 큰 누나가 자꾸 집에 놀러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누나는 피아노를 새로 샀다며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은파’라는 곡을 연주했습니다. 그동안 연습했던 곡을 나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60이 넘은 누나가 마음속에 꼭 치고 싶었던 ‘은파’를 동생에게 들려주고 한 말은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더라 였습니다. 그 말에 조금은 동감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부터 드럼에 관심을 가지다가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았습니다. 한 달 전 본 조비의 ‘Livin on a prayer’를 연주하는 드럼 선생님에게 반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반하게 할 정도로 치지는 못하지만 혼자서 어느 순간 뚝딱거리고 있는 저를 봅니다. 내가 나에게 놀라는 순간이 있습니다. 도쿄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운 우상혁 선수가 자신에게 놀라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내가 나에게 감격하는 일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여행은 이제 세상이 아닌 내 안으로 떠나는 일이 되어 갑니다. 어쩌면 지금의 내 삶으로의 여행을 위해서 먼 길을 돌아왔었나 봅니다.
“오늘도 여행 갑니다.”
2021년 8월 24일 비오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