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는 대신 방안에 널어놓은 잡동사니를 정리해 배낭을 쌌다. 코친을 떠나는 아침이 침대에서 등을 떼기도 전에 미리 와서 귀찮게 했다. 잠을 잘 못 잔 탓에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볐다. 누가 오늘 가라고 떠 민 사람도 없는데 비행기표를 오늘로 예약한 일을 후회했다. 코친에 온 다음날 비행기표를 알아보다 인도를 떠날 날을 정했었다. 막상 인도를 떠나려 하니 인도의 땅끝마을 ‘깐냐꾸마리’를 다녀오지 못하는 마음이 한구석에 매달려 무거웠다. 떠날 채비를 하며 어젯밤 싸 두었던 배낭을 다시 살폈다. 파우치에 넣어둔 여권도 다시 확인해 보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기념품을 사지도 않았는데 짐을 풀었다 다시 싸면 배낭이 오히려 더욱 커져 있었다. 이제 코친 국제공항에서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로 가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좀 아쉬워야 또 오고 싶어 지지~’ 하며 혼잣말로 불룩해진 배낭에 손을 얹고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았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시간이 한 참 남았다. 무엇이 그리 나를 재촉했는지 옷까지 다 갈아입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먼 길 떠나는 길에 도대체 왜 여행을 하는지 나에게 물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떠나왔는데 이제 와서 여행의 의미를 묻고 있었다. 나에게 여행은 백화점에서 새 옷을 사는 쇼핑이 아니라 옷장에 생각 없이 사들인 옷들을 내다 버리는 일이었다. 혼자 어디론가 멀리 떠난다는 의미는 새로운 경험을 쫓는 일이라기보다 낡은 생각을 버리는 쪽에 가까웠다. 내 곁에 당연하게 자리 잡고 있던 모든 것들과 잠시 떨어져 지내다 보면 나와 나를 둘러싼 존재의 본질이 껍데기를 벗어내었다. 그런데 인도에 법을 구하러 간 혜초의 발걸음처럼 여행을 써놓고 보니 차라리 지리산이나 혼자 다녀오는 편이 나았다. 한편으로는 그냥 맛있는 음식에 취하고 좋은 곳에서 푹 자고 신기한 세상 구경에 감탄하고 신이 났다. 무엇보다 집에서 멀리 떠나 올 수록 마음은 더욱 가볍고 나에게 집중되었다. 오직 나만 책임지고 나에게만 잘해주면 되는 세상을 만났다.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 주는 기쁨이었다. 긴 잡념 끝에 여행을 짧게 정리했다. '여행은 그냥 멀리 가보는 것이다.'
배낭을 메고 오래된 여인숙의 나무계단을 내려왔다. 알프레도가 여인숙의 체크아웃을 받았다. “알프레도, take care~ thank you” 인사를 건넸다. 알프레도가 이를 보이며 웃었다. 무어라고 나에게 길게 말했다. 또 오라는 말 같았다. 다시 코친에 오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다시 알프레도를 보게 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코친을 떠나 스리랑카로 가는 비행기에 어떻게 탑승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필름이 잘린 것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사진 속의 코친 공항도 이제는 낯설다.
서서히 기억들이 물에 잠긴 사진처럼 흐릿하게 번져갔다.
캔디를 찾아가는 길
오후 스리랑카 콜롬보 공항에 도착했다. 미국 드라마 '형사 콜롬보'가 조건반사처럼 떠올랐다. 콜롬보형사의 털털한 옷차림과 어눌한 목소리가 이곳 콜롬보의 느낌과 어울렸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흰색 승합차의 택시 운전사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에 올라타 캔디를 가려고 한다고 하니 내 나이와 비슷해 보이는 이 운전사가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 이 시간에 기차는 탈 수 없으니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이용하라고 했다. 버스터미널의 버스 승강장의 위치까지 대강 알려 주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캔디로 가는 버스표를 구입하고 버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스리랑카는 440여 년에 걸쳐 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이 차례로 식민지배를 하였다. 1815년 캔디 왕국이 영국에 의해 멸망함으로써 스리랑카 전체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다. 캔디는 전통적인 왕국이 마지막까지 존재했기에 다른 지역에 비해 우월감과 선민의식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스를 타고 대략 3시간이 지나 캔디에 도착했다.
인도 코친에서 출발해 스리랑카의 중앙부에 위치한 캔디에 해가 다 져서 도착했다. 200년 전에 건설된 인공호수가 캔디의 중심부에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 가운데 호숫가를 걸어서 숙소를 찾았다. 호수 주위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이 정신을 맑게 했다. 캔디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허브차 같았다. 입안에서 향이 퍼지듯 마음에 박하향이 퍼졌다. 고풍스럽게 생긴 개인 주택 같은 숙소에 들어갔다. 방은 혼자서 자기에 너무도 컸다. 호숫가의 밤공기가 숙소에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호숫가를 맴도는 바람이 느껴지는 듯하다. 2021년 여름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캔디의 호숫가의 바람을 그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