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 함피 #1

해지는 마탕가 힐 (2018년 1월 28일)

by 정원철

함피로 가는 길

아침이 밝았다. 기차역으로 갈 길이 아득하기만 했다. 이럴 때 내가 쓰는 방법은 마음속에 숫자를 세고 엉덩이를 떼는 일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일어서서 기차역을 향해 밖으로 나갔다.

기차역에 도착해 마드가온 정션 역의 플랫폼에서 배낭을 잠시 내려놓았다. 핸드폰이 없는 지난밤은 의외로 편안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잠자리를 고르고 가봐야 할 곳을 지나치지 않으려 핸드폰에 코 박고 지내고 있었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는 혹시 서울에서 무슨 소식이 왔는지 확인하고 답을 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잠시도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핸드폰이 사라졌다. 기차역 플랫폼에 앉아서 기차가 얼마나 연착되는지 알아볼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왜 기차가 얼마나 연착되는지 알려고 애썼을까?’ 이런 생각이 바람이 불어 머리칼을 스치듯 지나갔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에는 변함이 없음에도 왜 기차가 얼마나 연착되는지가 중요할까?’ TMI인 세상에 익숙한 나는 쓸데없는 많은 정보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올 기차는 온다. 지금은 기차가 들어오는 방향에서 고개를 돌려 내 앞에 있는 아이와 눈을 마주쳐도 좋을 시간이었다.

기차가 거의 정시에 플랫폼에 들어왔다. 기차를 타고 대략 8시간 정도를 가면 호스펫역이 나온다. 이곳에서 내려 릭샤를 타고 미리 알아봐 둔 숙소로 가서 짐을 푸는 데에서 생각을 멈추었다. 길고 복잡한 여행은 이렇게 실행할 수 있는 가까운 앞날까지만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게 내가 터득한 여행의 요령이었다. 얼마 전 어느 여행클럽에서 자유여행에 대한 경험을 공유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조금 비워두고 조금 덜 준비하고 떠나는 여행에 더 많은 경험이 담겨서 왔습니다.’ 하고 정중히 사양했다. 혹시 나의 이런 생각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호스펫 역에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함피를 가는 여행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역 앞 광장은 짧은 시간에 많은 여행자와 이들을 태우고 가려는 릭샤왈라로 가득 찼다. 여기저기 호객하는 릭샤왈라들은 필사적이었다. 한 여행자에 적어도 두세 명의 릭샤왈라가 동시에 붙어 흥정을 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럴 때는 빨리 어느 한 릭샤왈라를 선택하는 편이 나았다. 나이는 스무 살이 갓 넘은 듯한 이 릭샤꾼에게 ‘MAYURA’ 호텔을 아느냐고 물었다. 답이 걸작이었다. ‘알지~’ 영어로 묻고 한국어로 답을 듣는다. 한국말로 이름을 물었다. 그의 이름이 또렷이 들렸다. ‘아쉬’


해지는 마탕가 힐

호텔은 함피의 바자르와 비루팍샤 사원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외진 곳에 있었다. 아쉬에게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해지는 함피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마탕가 힐‘ 로 가기 위해서였다. 호텔이 외진 곳에 있으니 릭샤를 따로 불러야 했고 아쉬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것처럼 친근했다. 호텔은 넓은 정원에 단층의 방이 독채로 되어 있어 리조트를 흉내 내고 있었다. 체크인을 서둘러 마치고 아쉬와 ’마탕가 힐‘로 갔다.

함피는 남인도에서 번성한 마지막 힌두 왕조 비자야나가르왕국의 수도였다. 1565년, 북쪽 무슬림 연합국의 침략을 받아 6개월 동안 약탈을 당했고 그러고 나서 버려졌다. 이 폐허의 흔적과 주변의 화강암 지형이 어루어져 세상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탕가 힐은 30분 정도 화강암 돌산을 올라야 했다. 아쉬는 기다리고 있을 테니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그렇다고 혼자 오르지는 않았다. 어디에서 왔는지 내 뒤에 또 내 앞으로 사람들이 올라오고 지나갔다. 함피는 도시가 폐허가 되고 돌로 굳어진 것처럼 돌을 다듬어서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주위에 온통 돌뿐이었다. 이 황량한 곳에 돌이 꽃을 피운 듯했다. 마탕가 힐에 올랐다. 해가 조금 여유를 두고 있었다. 주변이 너무도 조용했다. 함피를 가로지르는 퉁가바드라 강 주위로 어제 이 아름다운 왕국이 폐허가 된 듯 돌들의 아귀가 어긋나 있었다. 그냥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그대로 돌로 변할 듯했다. 시간이 돌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마팅가 힐을 내려왔다. 아쉬는 릭샤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K-POP에 흠뻑 빠진 아쉬가 듣고 있던 지드래곤의 음악을 틀었다. 제목은 ’ 무제‘였다. 아쉬가 나를 저녁식사 장소로 데려가는 길에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렸다. ”아쉬~ 지드래곤 좋아해? “ 하고 물으니 아쉬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쉬가 나를 데려간 곳은 비루팍샤 사원 근처에 있는 망고트리 레스토랑이었다. 아쉬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아쉬는 이곳에서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쉬가 나를 다시 호텔에 데려다 주었다. 아쉬에게 다음날 아침에 나와 함피를 돌아볼 수 있냐고 물었다. 아쉬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아쉬에게 내일 아침에 오는 조건으로 내가 지불할 돈의 반절을 먼저 주었다. 만약 내일 아침에 온다면 나머지 돈을 주겠다고 했다. 아쉬는 돈을 받고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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