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017년을 들춰보는 일이 이제는 무덤덤합니다. 그 해 여름의 일기장에 써놓은 글들을 읽노라면 그 순간의 만감이 날 선 칼처럼 느껴져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스윽 베여나갑니다. 그때는 너무도 두려웠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짊어져야 할 책임이 너무도 막중했기에 회사를 나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려움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인도와 네팔을 다녀오고 나서 책을 읽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운동모임에 용기 내어 등록을 했습니다. 운동모임에 나가면 동네 분들이 ‘뭐하시는 분인지?’가 단골 질문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모임에 남자는 저 혼자였습니다.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다니니 청일점으로 대하다가 나중에는 저를 그냥 주부로 불렀습니다. 아들 학원도 알아 봐주고 간식 준비하는 법도 알려줬습니다.
운동 모임에 나가는 일이 점점 신이 났습니다. ‘눈치 주면 한 두 달 하다가 그만 둘 줄 알았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저를 보고 운동모임은 활기를 띠었습니다. 이 정도로 말하는 것은 허세가 아닙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에 몰입했기에 저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어느 순간 살아가는 일이 그리 버겁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걱정의 대부분은 제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습니다. 남자가 일이 있어야지 놀면 폐인 된다고 걱정해주는 지인들에게 더욱 걱정을 끼쳤습니다. 너무도 멀쩡히 잘 사는 모습에 내가 계속 그렇게 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늘어놓았습니다.
하루의 수레바퀴를 잘 굴린다는 마음으로 일상을 잘 보내려 애썼지만 마음 한구석이 조금 켕겼습니다. 은퇴를 결심한 적도 없고 무작정 세월을 보내도 될 만큼 준비를 잘해 놓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에 다시 일에 복귀할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별로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일과 동떨어진 삶에서 내 몸과 마음에 새살이 돋고 있었습니다. 회사를 나오지 않았더라면 배낭여행을 다녀올 기회는 없었을 겁니다.
2018년 1월부터 회사로 복귀를 3월로 미뤘습니다. 이번에 회사를 다시 들어가면 언제 다시 배낭을 멜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다시 혼자서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남미를 가보겠다고 스페인어를 틈틈이 공부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인도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이번에는 남인도를 지나 스리랑카로 가기로 했습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으나 인도를 다녀온 이후 언젠가 다시 가게 되리라는 암시 속에 살았던 모양입니다.
2018년 2월 인도의 뭄바이에서 남쪽으로 아라비아 해를 끼고 내려가다가 향신료의 도시 코친에서 스리랑카로 넘어갔습니다. 여행을 시작한 다음날 핸드폰을 잃어버려 여정의 기록이나 일기가 없어 카메라에 담긴 사진과 기억에만 의지해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남인도, 스리랑카 여행기를 마무리 지어보겠다는 용기는 브런치 활동을 통해서 생겨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파트 평수를 늘릴 수 있을까 고심하는 대한민국 중년 남자가 어느 날 여행을 통해 삶의 자투리땅에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이 말을 적습니다. 혼자서 떠나면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2021년 지난 여행을 남겨놓기로 마음먹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