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미셸 광장에서 어제 로맨틱 투어를 안내한 가이더를 다시 만났다. 휴일임에도 ‘노트르담 성당‘을 안내해 주러 일부러 시간을 내주었다. 가이더는 파리에서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는데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에게 파리를 소개해 주는 일을 즐기고 있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노트르담 성당에 도착했다. 노트르담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노천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며 성당에 관한 가이더의 입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노트르담 성당 아래에서 파리지앵이 다 된 기분이었다.
노트르담 성당 ⓒ 정원철
노트르담 성당 외벽의 성상 부조를 올려다보았다. 어릴 적 명화극장에서 본 ’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아니 이곳에 오기 전부터 노트르담 성당은 내 마음속에 있었다. 토요일 밤 10시 명화극장을 특히 좋아했다. 한때는 막연히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 그 시절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은 나의 우상이었다. ’ 노트르담의 꼽추‘영화 속의 종루지기 ’ 앤소니 퀸‘은 집시 여인 ’ 지나롤로 브리지다‘를 연민하며 종위에 올라타 온몸으로 종을 흔들며 짐승같이 울부짖었다. 그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어도 보는 내내 종루지기 ’ 콰지모도‘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나도 모르게 슬픔과 울분이 올라왔었다. 그리고, 지금 그 흑백영화 속 성당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성당의 고딕 첨탑이 하늘로 솟구쳤고 석공의 도상과 부조가 섬세하게 벽면을 채웠다.
노트르담 성당 ⓒ 정원철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11시 30분부터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안식일이었다. 성가대의 성가와 미사를 집전하는 주교의 목소리가 성당 전체에 엄숙히 울려 퍼졌다. 창문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자리에 앉아 미사를 보는 신도들 머리 위에 성스럽게 내려앉았다. 나도 그 신비로운 빛의 아래로 들어가 앉아 죄를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유럽은 종교와 예술이 한 데 어우러져 있다. 성당 안의 파이프 오르간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오페라 극장의 아리아를 듣는 착각에 빠졌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관광객인지 성도인지 구분이 모호해졌다.
노트르담 성당 ⓒ 정원철
루브르 박물관 ⓒ 정원철
오후에 루브르 박물관을 다녀오고 동행한 사람들과 마레지구를 갔다. 여행이 좀 힘들었는지 피로가 몰려와 일행들과 헤어져 혼자 숙소로 향했다. 갑자기 비가 거세게 내렸다. 마침 가방에 우산을 가지고 다녔다. 우산을 펴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길을 걷는데 어느 여자 외국인이 내 우산 속으로 양해도 없이 들어와 당황했다. 리투아니아에서 온 이 여자는 전철역까지 데려다 달라고 사정했다. 자신은 건축을 전공했고 파리를 혼자서 한 달 넘게 여행 중이고 어쩌고 저쩌고 혼자서 열심히 떠들었다. 간혹 내게 무언가를 물었지만 나는 웃기만 했다. 전철역에 도착하기 전 비가 그쳤다. 그녀도 우산 속에서 한 방울 물기를 떨어뜨리고 사라졌다. 대신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