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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 프랑스 파리 #2

파리에서의 둘째 날 (2016년 6월 11일)

by 정원철
20160611_114430.jpg 밀레 <만종>, 1857-9년, 오르세 미술관 ⓒ 정원철

파리의 귀족과 예술가들의 일상을 따라가 보는 ‘로맨틱 파리 투어’라는 일일 단체관광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아침 일찍 생미셸 광장의 어느 카페에서 투어 가이더와 오늘 하루를 같이할 다른 여행자들을 만났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파리의 아침을 보내는 이 순간이 파리지앵의 하루를 체험하는 일부였다. 마음에 긴장을 풀고 혀끝에 쓴 에스프레소를 바르고 입안에서 느껴지는 진한 향을 음미했다. 오래된 카페의 의자에 기대니 여유가 소리 없이 곁에 앉았다. 가이더는 재치 있고 유쾌한 입담으로 여행의 피로와 졸음 섞인 아침을 생기 가득한 숲의 정원으로 안내했다. 그 날 아침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은 네버랜드로 떠나는 웬디의 일행이었다. 가이더의 입담은 스탠딩 코미디의 단계를 지나 점점 미술사에 대한 강의로 접어들었다. 이 가이더는 파리의 대학원에서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며 틈틈이 가이더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어느새 가이더와 함께하는 모닝커피 시간은 인상파인 마네, 모네 그리고, 고갱과 반 고흐의 서양미술사 인문학 강의 시간이 되었다. 막힘없이 술술 풀어놓는 그의 미술사를 들으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제 그를 따라 인문학 산책을 하러 갈 차례였다.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은 과거 버려진 기차역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오니 유리 지붕을 통해 자연광이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기차 역사를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파리의 창의성으로 미술관 자체가 예술작품이었다. 이 미술관에는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통적인 화풍을 벗어나 독창적인 화법을 내놓은 이들에게 ‘참 인상적이네요’라고 말한 계기로 이들을 인상파라고 불렀다고 한다. ‘인상적이기는 하네요’라는 말로 알지 못할 낯섦을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오디션에 나왔을 때 심사위원들이 그렇게 평했다. 새로운 것들을 대한 낯섦이 예술적 가치를 지닐 때 장르가 된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냈다.


20160611_121658.jpg 고흐 <자화상>,1889, 오르세 미술관 ⓒ 정원철

미술관을 둘러보다 보면 너무도 많은 그림들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감각적 자극이 반복될수록 감동은 피로물질로 신체 내에서 화학반응을 겪는다. 그럼에도 이 미술관의 그림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수백 년의 시간을 넘어서 현재와 연결되어 있었다. 중세 신화나 종교에 관한 그림을 그리던 그림 기능인의 시대에서 인간 내면을 주제로 하는 인간 중심의 예술인의 시대로의 변천사를 한 곳에서 볼 수 있었다. 마네와 모네의 그림을 지나 고흐와 고갱의 그림이 전시된 방으로 들어섰다. 고흐가 말년에 그린 수많은 자화상 중 하나가 유독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전시되어 있었다. 이 자화상은 앞에 모인 사람들 속으로 당장이라도 걸아 나와 무슨 말을 할 것처럼 눈빛이 강렬했다. 그림 위에 거칠고 두껍게 발라진 유화물감 속에서 고흐의 붓을 쥔 손이 그대로 느껴져 몸이 굳어 버렸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림을 통해 영적으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없다면 고흐의 영혼을 만날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오르셰 미술관을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식당의 메뉴는 모두 불어로 되어 있었다. 허기진 배는 두툼한 스테이크에 와인 한 잔을 어떻게든 주문해보라고 내 죄 없는 혀를 다그쳤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젊은 한국 여자가 능숙한 불어로 웨이트리스에게 무어라 말을 건넸다. 내 딱한 처지를 대신해 주문해 준 것이다. 그리고, 은혜롭게도 자신이 먹다 남은 와인도 한 잔 건네주었다. ‘너에게 복이 있으라’ 아니 ‘이미 너는 충분히 복을 받았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축복과 부러움이 교차했다. 그녀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사라지는 뒷모습이 황홀하게 매력적이었다. 파리에서 불어 잘하는 여자는 무조건 반할 정도로 불어는 내 귀에 천상의 노래 같았다.



투어 가이더는 미술관 다음으로 파리의 귀족들이 놀았던 행적을 따라가 볼 것이라고 했다. 모두 귀족들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길 강권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몰랐지만 느지막하게 일어나 브런치 겸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오페라를 보러 나오는 상상을 했다. 국립오페라극장인 ‘오페라 갸르니에’로 향했다. 이 오페라극장의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블로그에 올라온 내부 사진을 보니 그 화려함이 비현실적이었다. 이곳에서 귀족들은 애인들과 오페라를 보고 점심 식사를 즐겼다고 한다. 마네가 그린 ‘풀밭 위의 점심 식사’란 그림은 그 시절 귀족의 일상을 풍자한 것이었다. 귀족들이 또 자주 들린 곳이 지금의 쇼핑 골목 격인 ‘뺘사쥬’였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현재 남아 있는 것 중 제법 큰 쇼핑 골목이 ‘빠사쥬 파노라마’였다. 골목길을 쇼핑하듯이 상점의 물건들을 보며 걸었다. 마카롱이 특히 맛있다는 상점 앞에서 사진만 찍었다. 식욕을 채우기에 마카롱의 가격은 사악했다. 그 옛날 귀족의 애인들이나 호사를 누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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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크레쾨르 성당 ⓒ 정원철

투어의 막바지는 몽마르트르 언덕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블랑쉬 역에서 내려 몽마르트르를 향해 걸었다. 몽마르트르의 ‘몽’은 산, 언덕이며, ‘마르트르’는 순교자란 뜻이다. 그러니 몽마르트르 언덕이 아니라 그냥 ‘몽마르트르’라고 해야 한다. ‘순교자의 언덕’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사크레쾨르 성당이 세워진 이유를 알면 이해가 간다. 프랑스 정부군의 파리 코뮌 군에 대한 대학살을 ‘피의 일주일’이라고 하는데 이때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 사크레쾨르 성당이다. 성당 앞은 계단에 앉아 하이네켄 맥주를 마시며 파리를 한눈에 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몽마르트르는 19세기 파리의 개발에서 밀려난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예술가들의 영지 같은 곳이 되었다. 이곳에서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고 선술집에 모여 예술을 이야기했다. 피카소는 ‘라팽 아질’에서 술을 마시고 술값 대신 그림을 그려 주었다. 그 그림이 경매에서 몇백억에 팔렸다.

20160611_180442.jpg 바토 라브아르 <파카소가 살았던 곳> ⓒ 정원철



파리의 연인 촬영 장소 ⓒ 정원철

2004년 박신양과 김정은이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로 대한민국은 잠시 세상의 시름을 잊었다. 드라마가 끝나갈 즈음 뒤늦게 그 드라마 열풍에 빠진 아내와 거실에서 모기장을 치고 노트북으로 다시 보기를 했었다. 12년 전에 드라마 속에 나온 장소를 지나치며 12년 만에 작은 전셋집의 모기장에 대한 기억을 다시 불러왔다. ‘차~암 그 여름 그 거실의 모기장 안은 낭만적이었다.’



‘UEFA 유로 2016’이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에펠탑 아래에 축구공이 매달리고 커다란 전광판도 설치되었다. 각국에서 온 축구 열혈팬들이 에펠탑에 모여들었다. 극성에 가까운 이들도 있었으나 응원으로 열기가 달아올랐다. 에펠탑이 불을 밝혔다. 세상은 에펠탑과 축구 두 가지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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