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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원 Aug 10. 2022

여자들 만의 스피닝 속에서 살아남기

#4 여자들 만의 스피닝 속에서 살아남기      

   “요즘은 뭐하고 지내세요?”라고 물어오는 사람에게 “그냥 놉니다.”로 답하고 싶은 날이 있다.

몇 해 전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이 생겨 평일 오전에 스피닝 운동교실에 들어갔다. 평일 오전 시간은 온전히 여자들의 시간이다. 그 스피닝 수업도 예외 없이 여자들이 전유하고 있었다. 여자들만 있는 공간에 중년 남자 하나가 들어갈 경우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상상할 수 있는가? 일단 마음에 안 들면 눈으로 염력을 동원해 스스로 그만두게 한다. 좀 두고 보자는 생각이면 잠시 관심을 두지 않고 지켜만 본다. 여자들이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스피닝 룸에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이 둘을 모두 겪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뭐 하시는 분이세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 말은 평일 아침에 남자라는 작자들을 밖으로 몰아내고 겨우 사람처럼 살려고 왔는데 내가 또 남자를 보고 있으니 불편하다 라는 말로 들린다. 불편함으로 따지자면 내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수업에 들어가면 자전거에 이름표 붙여 놓은 것도 아닌데 맨 뒷자리 구석이 내 자전거이다. 앞자리 중앙에 자리를 만들어 주어도 태연히 앞으로 나갈 생각은 추호도 생기지 않는다. 신나게 흔들어 대는 여자들의 몸짓 곁에 아저씨가 반 박자 엇박자로 비틀어대는 몸을 차마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삼 개월이 지났다. 맨 뒷줄 구석에서 여자들의 시선을 회피하며 자전거에 올라 숨이 넘어가도록 자전거를 탔다. 어느 누구와의 대화도 인사도 없이 삼 개월 동안 자전거의 페달을 돌렸다. 어느 날 누군가 공손한 말로 물어왔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뭐 하시는 분이세요?” 나는 대답했다. “그냥 놉니다.” 실제로 하는 일 없이 놀고 있을 때였다. 하는 일이 없는 중년 남자는 위험한 사람이다. 변호사 의사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선생님은 되어야 대화라도 할 정도는 되는 사람이다. 하는 일 없는 백수는 건달에 가깝다.

 여자들만 모여 운동하는 스피닝 교실에 들어가 운동하겠다고 마음먹은 나는 사심 가득하고 위험한 건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이 든 건 운동을 시작하고 한 참 뒤였다. 스피닝 반에 들어간 처음 몇 달은 선생님의 현란한 동작을 따라 하느라 잠시 잠깐 딴생각할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피닝 교실에서 그녀들에게 나는 조심해야 할 남자 동물이었다.      

 

세상의 편견을 깨는 일은 단순하지만 녹녹지 않다. 내가 아는 그 단순한 방법은 이것이다. 일관되게 반복해서 빈번하게 행동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벽은 무너진다. 스피닝 교실에 들어간 지 삼 개월 동안은 뒷줄 구석에서 묵묵히 자전거에만 집중했다. 삼 개월 정도가 지나니 내가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스피닝 교실에 전염되어 퍼지는 걸 느꼈다. 육 개월 정도가 지나니 인사를 나누고 서로 반겨 주는 정도의 거리를 확보했다. 그리고, 일 년 정도가 되었을 때 같이 점심 약속을 잡고 정기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그 여자들은 자신들의 일상 속으로 위험한 동물을 들이는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세상의 편견을 깨고 평일 오전 시간 스피닝 교실에서 여자들과 소통은 단순했다. 스피닝 수업에서 내 열정을 쏟아 내면 여자라는 사람들은 나의 열정에 화답하고 스피닝 수업은 한 시간 동안 뜨거웠다. 급기야 스피닝 선생은 둘이서 사설로 수업을 같이 진행해 보자며 농담처럼 제안했다. 코로나와 이사로 지금은 스피닝을 하지 않는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에서 요가를 시작했다. 시간대는 역시 평일 오전이다. 남자는 또 나 혼자이다. 요가를 들어가는 나에게 어느 남자분이 말을 걸어왔다. “여자들만 있지 않나요?” 내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나는 요가에 몰입한다. 소통은 서로의 관심에 몰입으로 연결되는 일이다. 서로의 마음을 알기 위해 대화하는 대신 서로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열리고 연결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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