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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현 Feb 14. 2024

Steilneset Memorial

바르되 여행기 2

거긴 왜 가냐고 하면 설명할 수 있는 핑계였다. 유명한 건축가의 건물을 보러 간다고. 그 먼 곳에 이상한 매력에 끌려서 가게 되었다는 말보다 이해될 만한 말이었다.


바르되라는 섬을 알게 된 것은 정말로 이 건물 때문이었다. 페터 춤토어(Peter Zumthor)의 건축물들은 그 지역의 분위기가 굉장히 인상적인 장소들이 많았고, 는 그 장소들에 끌렸다. 행하면서 다녔던 곳들 모두 주변의 지역 분위기가 압도적이고, 그 특성을 잘 살리는 건축물들이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춤토어의 건축물 리스트는 그 자체로 여행가이드가 되었다. 미쉐린가이드를 따라다니는 미식가들처럼, 나는 그냥 그를 믿고 그의 가이드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바르되(Vardø)이고 이곳 스테일네셋(Steilneset) 메모리얼이었다.




섬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이 메모리얼은 누에고치 같은 기다란 전시관과 유리로 된 박스형태의 파빌리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기대했던 누에고치 같은 구조물의 기괴함이 이곳의 독특한 풍경과 날씨 속에서 더욱 강렬하게 느껴다. 주로 맑은 날 찍은 사진들을 올렸지만, 이곳은 매일같이 거의 진눈깨비가 내리고 강풍이 불었다.


이곳은 마녀사냥(Witchcraft)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메모리얼이다. 1600년대에 이 지역에서 마녀사냥이 성행했었고 이로 인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1600년대에 일어난 일인 만큼 모리얼은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기 위한 목적에 가까웠다.




메모리얼 앞에는 작은 예배당과 공동묘지가 있었다. 마을은 대부분 언덕에서 섬의 중앙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 메모리얼과 묘지는 섬의 서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메모리얼의 건물배치 그림

이런 지형상의 특징이 메모리얼의 배치에서 요한 포인트였다. 아주 낮은 언덕이지만 마을과 반대편의 경사면에 위치해 있어 섬의 다른 곳들과 어딘가 분위기가 다른 공간으로 느껴진다. 최대한 해안 쪽으로 배치한 것은 마을에서 바닷 쪽을 향한 풍경을 가리지 않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100미터에 달하는 아주 긴 구조물이기에 풍경을 가리는 흉물이 아니냐 하면 논리로 반박하기는 힘들다.



메모리얼의 주변 풍경


하지만 나는 이런 비상식적으로 기다란 건물의 형태가 이 주변 풍경과 꽤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곳 섬과 해협, 그 너머의 황량한 들판의 수평적인 이미지들 속에서 이 건물은 그리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오래전 바닷사람들이 만든 유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른쪽 그림처럼 고기를 걸어 말린다.


이 지역은 돌아다니다 보면 목재로 된 커다란 구조물들이 들판에 서 있는데, 생선을 말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대략 한 3~4미터 정도 높이로 꽤나 큰 구조물 자체도 참 범상치 않다. 아무튼 메모리얼의 재료와 형태에 있어서 저 생선을 말리는 건조대가 영감이 된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얼의 입구


목재 프레임에 매달려 있는 듯 전시관은 두꺼운 직물로 되어있었다. 천으로 만들어져 있었기에 문이나 각종 프레임들과 이 천 같은 소재가 만나는 방식이 재미있다.



메모리얼의 내부


메모리얼의 내부는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느껴지는 분위기의 반전이 인상적이다. 넓고 끝없는 풍경 속에서 갑자기 좁고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간다. 직물에 페인트 같은 것을 칠했는지, 안쪽면은 완전히 검은색이었다. 잘 보면 직물에 구멍들이 있어서 미세한 빛들이 보인다. 이 천은 아주 두껍고 뻣뻣해서 바람에 흔들리지도 않는다.


내부에는 희생자들의 마녀사냥 재판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씩 걸려 있고, 그 옆에 작은 창이 하나씩 뚫려 있었다. 사진상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낮에도 내부가 상당히 어둡고, 사람이 없다 보니 조금 무섭기도 하다.



유리 파빌리온의 내부


메모리얼의 두 번째 공간은 유리로 된 박스형태의 파빌리온이다. 어두운 색 유리로 벽을 만들었고, 그 내부에는 불이 나오고 있는 의자가 있었다. 스테일네셋 메모리얼은 춤토어와 예술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가 협업해 만들었는데, 기다란 파빌리온은 춤토어의 아이디어고, 이 네모난 파빌리온은 부르주아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이곳의 불타는 의자는 마녀사냥에 대한 상징물로 루이즈 부르주아 특유의 직설적인 표현방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 또한 춤토어의 디테일과 그의 재료 취향들이 많이 느껴진다. 유리판을 지지하는 디테일이나 지붕의 디테일은 그가 다른 건물에도 사용하던 방식 같아 보인다. 벽을 바닥으로부터 띄우고, 지붕과 벽도 띄우는 것도 굉장히 춤토어스러운 부분으로 느껴진다.


                                                                                                                                                                                        

눈으로 볼 때는 왼쪽 사진처럼 보인다.


한밤중 이 메모리얼을 바라보면 작은 창을 통해 나오는 불빛들이 도깨비불 마냥 굉장히 기묘하게 느껴진다. 세찬 바람소리, 파도소리가 들리고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해안인지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저 멀리에 불빛만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효과를 위해 마을의 반대편 언덕 끝에 배치를 한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형태는 조금 특이한 구조물이지만, 순한 재 솔직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목재 프레임과 철재와이어가 주로 쓰였고, 외피는 직물, 지붕은 일종의 슬레이트가 쓰였다. 본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유지하는 춤토어의 스타일이 보인다. 나무는 나무로, 금속은 금속으로, 패브릭은 패브릭으로 그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이곳은 부재들의 고정방식들이 전부 드러나 있어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대충 눈으로 보면 상상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내부공간의 바닥은 목재 데크로 되어 있었는데, 데크를 고정하기 위해 직물에 구멍을 뚫고 지지대를 올린 것도 재미있는 디테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직물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디테일들도 이 메모리얼의 소소한 볼거리이다.




이 메모리얼에 대해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내가 이곳이 좋았던 것은 이 장소만이 가진 분위기 때문이었다. 메모리얼 자체도 굉장히 특별하지만, 반대로 주변의 외부환경이 주는 분위기에 비하면 건축물 하나가 가진 힘은 미약하다. 어쩌면 그런 매력적인 장소들을 찾는 것이 춤토어의 건축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춤토어의 팔스 온천(Therme Vals)이나, 브레겐츠 미술관(Kunsthaus Bregenz), Bruder Klaus Field Chapelle, Caplutta Sogn Benedetg 도 모두 주변의 자연이나 마을의 풍경이 압도적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찾아가다 보면 이미 그 지역이 주는 분위기에 젖어있었다. 몰입이 되어 저절로 빠져들게 되는 영화처럼 이미 지역에 들어서면서부터 완 시퀀스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스테일네셋 메모리얼도 역시 그중 하나였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외딴곳들에 건축을 하는지 알 것만 같다. 파리나 뉴욕에 그의 건물이 있었다면 그곳에 가서 건축물에 감탄을 했을지언정 그 지역에 대해 관심이 가진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이 사람의 건축물을 평가하는 데에 있어서 더 이상 건물과 그 외부환경을 구분 지어 생각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잘 만든 지역주의 건축은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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