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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y 31. 2024

chap65. 사투리와 구어체의 맛

 p 205-207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화자의 특징이 있다면, 지면상에 그것을 살리는 것도 작가가 할 일입니다.


오랜 지인 K는 말을 참 잘한다. 무슨 말을 해도 조리 있게 말하거나, 번뜩이는 단어를 쓰거나 하지 않는다. 때로는 혼자 말하다가 혼자 즐거워 깔깔거리다 뒤로 넘어가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저런 이야기로 방향을 틀어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끔은 이야기의 주제를 짚어주어야 다시 그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K와의 수다는 때때로 진이 빠지기도 한다. 단순히 대화만 나누었을 뿐인데 꽤 많은 에너지와 칼로리가 소모된 느낌이라 적절한 휴식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서 대화를 나눌 때 작은 케이크와 다과는 필수다. K와 수다를 나누기 전에는 커피만 마셨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함께 나눌 케이크를 먼저 고르게 되었다. K는 말을 참 잘한다. 


말했듯 K의 대화법은 괴상하기까지는 않지만, 쉽지도 않다. 흥분하면 빨라지고 높아지는 말소리와 톤, 자꾸만 삼천포롤 빠지는 주제들. 혼자의 이야기에 혼자 웃고 우는 리액션들. 그런데 나는 K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의 이야기에 빠져버린다. 지금 돌이켜 보니 대화라기보다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던 느낌이다. 주로 말을 하는 K와 주로 듣는 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일방적으로 혼자 떠드는 사람과 듣기만 하는 사람이라 여길 수 있겠지만, 우리는 분명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내가 K와의 대화를 좋아하는 것은, 그녀의 이야기에는 감정이 있고, 묘사가 있고, 부끄러움이 있다. 아! 그리고 그런 감정들을 표현하는 방식이 참 디테일하다. 타인과 서운한 일을 토로할 때도, 막연히 자신의 억울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부분이 왜 억울한지를 자세히도 이야기한다. 논리적인 이야기를 논리적이지 않은 말들로 말한다. 전후사정만을 이야기했다면, 신문 기사를 읽듯, 티브이 뉴스를 보듯 했을 텐데 그 중간중간에 자신의 감정이 상한 해설과 묘사를 곁들이다 보니, 그 장면이 드라마가 되는 것 같았다. 


"그 회사 부장은 참 사람은 좋은 데 또 그 좋은 사람이 때로는 너무 고지식하고, 감정적이거든. 저번에 잘 넘어갔던 일도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 오늘은 아니라는 거야. 내가 얼마나 빡이 치겠냐고? 내가 달래다 달래다 지쳐서 한 번 들이받아야겠다 마음먹으면, 또 그런 포인트는 기가 막히게 캐치하는 거야. 슬그머니 한 발 빼면서 양보하는 척하더라고. 그럼 또 나는 그 부장 페이스에 말려서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 넘어가. 그리고 미팅 끝나고 돌아서 나오면 아! 내가 또 당했구나 하는 거야. 야. 그 인간 사람이 좋은 건지 여우인지 모르겠다니까. 왜 미팅 때만 되면 회사 다른 사람 제쳐두고 그 인간만 보내는지 이제야 알겠더라고. 그런 걸 아들한테도 가르쳐야 하나? 세상 살아가는 노하우 뭐 이런 걸로? 에이.. 뭐 대화를 해야 가르치든 말든 하지 요즘은 애들이랑 말도 안 해. 얼굴 보기도 힘들지. 주말에 가끔 얼굴 본다 싶으면, 핸드폰에 코가 박혀 있지. 무슨 말을 해도 네~ 네~ 대답만 하지. 나는 안 그랬는데.. 왜 우리 대학교 때 그 교수님한테 네~네~ 거리다가 한 번 호되게 꾸중들은 적 있잖아. 난 대학 와서도 고등학교 때처럼 혼날 줄 몰랐는데... 그래도 그때부터 정신은 좀 차렸지. 그 시절이 낭만은 좀 있었어. 그치? 지금 애들도 그런 낭만을 알까? 왜 우리 강의 째고 광장에서 막걸리 마시고, 운동한답시고, 대모도 한 번 따라가 보고 무슨 엠티를 그렇게 많았는지. 가면 마시고 죽자였는데. 그게 또 왜 이리 재미있었는지. 그때 애들은 다 잘 살고 있으려나? 참 소식 들었어 A 선배 얼마 전에 암수술받은 거. 예전부터 그리 술 마시더니 세월에는 장사 없나 보다. 너는 운동은 좀 하냐? 이제는 살기 위해서 하는 거야 인마. 언제까지 청춘이 아니라니까? "


"부장 이야기가 갑자기 청춘 이야기로 끝이 나네? "


"아 그래 그 부장. 그 부장이 이번에 독립을 한데? 회사에서 제대로 대접을 안 해주나 봐 일감이랑 노하우랑 싹 긁어다가 회사를 차린다는데 글쎄 나 보고도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거야. 그것도 지금 연봉보다 30% 올려주겠다고. 투자자도 있다고 함께 해보자는데? 괜찮을까? 우리 회사 선배들도 보니 대부분 퇴직하고 창업 아니면 자영업인데.. 나도 미리 살길을 찾아놔야 하는 건가 싶은데. 아무래도 새로운 회사는 맨땅에 헤딩이라 모 아니면 도잖아. 그 부분이 제일 걱정인게지. 연봉이 오르는 것도 중요한데.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무시 못하거든. 1-2년 만에 도산이면, 말짱 도루묵이잖어. 아이 도루묵 말하니 소주 한잔 생각나네.. 아니다 선배랑 같이 마신 술이 얼만데 나도 몸 조심해야지. 술은 무슨 술이야. "


"나는 술 마신다는 소리 안 했다? " 

"암튼. 너 건강하라고 하는 소리야."


나는 K가 글을 쓰면 좋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글을 쓰면 참 잘 쓸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고, 중간중간 끼어넣을 에피소드도 무궁무진할 것만 같다. 말하는 만큼만 글을 쓴다면, 그래도 먹고살만한 책을 쓸 것도 같다. 


그런데 아마도 K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K는 엉덩이가 가벼워 한 곳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한다. 그래서 K가 작가가 되려면 조금 더 큰 엉덩이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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