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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n 28. 2024

chap69. 혼자에 관하여

 p 220-221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좋든 싫든 누구에게나 '혼자'의 시간은 필요합니다.

좋든 싫든 누구에게나 '혼자'의 시간은 필요하다. 


세 시 언저리가 되면 마음이 바빠진다. 이제껏 차분하게 정리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던 마음이 세 시 언저리가 되면 조금씩 심장이 빨리 뛰고, 10분 간격으로 시계를 보고, 해야 할 리스트를 다시 확인하거나, 비어 있는 냉장고를 다시 한번 열어보곤 한다. 설렘인지, 긴장감인지 오후 세시가 되면 그런다. 


정확히 38분에 버스가 도착한다. 때로는 잔뜩 잠에 취한 눈으로 내리기도 하고, 다른 날은 가슴팍에 붙은 칭찬 스티커를 자랑스레 내밀며 차에서 내린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방을 아빠에게 던지고는 냅다 달리기 시작한다. 무엇이 그리 즐거워 매일을 반복하는지도 모를 달리기에 나도 동조해 준다. 아이는 같은 아파트의 친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빠르게 달려 나가 코너를 돌며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아빠와 할머니를 피해 어디론가 숨어 있다 깜짝 튀어나오곤 한다. 마치 새끼 고양이들 같다. 그러고는 성공했다는 듯이 지들끼리 깔깔거리며 한바탕 웃어재끼고는 또 서로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도 않은 채 각자의 아파트로 돌아간다. 매일을 그러는데도 매일을 즐거워한다. 


막내가 돌아온 이후부터는 이제 집은 복작복작 거린다. 곧이어 중학교 큰누나가 들어오며, 한껏 더워진 날씨에 푸념과 짜증을 동시에 부린다. 이상하게도 밖에서는 멀쩡 했을 텐데 집에만 들어오면 불평불만이 가능해진다. 누가 들으라는 건지, 혼잣말인지 모를 날씨 이야기와, 학교에서 있었던 웃긴 이야기를 혼자서 조잘조잘 떠들고는 패드를 집어 들고 소파에 몸을 묻는다. 이미 막내는 닌텐도 스포츠로 모르는 사람들과 열심히 배드민턴도 치고, 골프도 치고, 볼링도 하고 있다. 


둘째가 들어온다. 학원을 한 군데 들린 둘째는 때로 제일 늦게 귀가한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둘째는 오자마자 냉장고를 찾는다. 그래봐야 아침과 같은 냉장고고, 같은 식재료가 전부지만 기어코 무언가를 꺼내어 입에 넣는다. 요즘은 아이스탕후루에 빠지셨단다. 냉동 블루베리를 얼음이 동동 띄워진 물에 말아먹는 건데... 난 모르겠다. 저게 무슨 맛인지. 


둘째가 무언가 간식 만드는 소리가 들리면, 모두가 아빠를 찾기 시작한다. 갑자기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큰아이는 시골에서 올라온 자두에 빠지셨다. 그 꼬맹이때 자두를 먹던 그 귀요미는 어디로 가고, 툴툴거리고 불만 가득한 표정과 말투로 자두를 먹는다. 그래도 아직 어린 시절 그 먹던 모습이 남아 있다. 내 딸이라 이쁘고 귀여운 건 어쩔 수 없다. 막내는 가리지 않는다. 요거트도 좋아하고, 아이스크림도 좋아하고 소시지도 좋아한다. 과일도 잘 먹는다. 그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누나들이 먹는 간식 함께 먹기. 꼭 누나들이 먹는 간식을 보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조금만을 외치며 쫓아다닌다. 새끼 강아지가 뒤뚱뒤뚱 거리며 쫓아다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간식을 사이에 두고 세 아이가 모여 서로 집어먹는 모습은 영락없이 강아지 세 마리가 서로 빼앗길세라 밥을 먹고 있는 모양새다. 보고만 있어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저녁이 되면 아내가 들어온다. 그 사이에 아이들의 과제를 하고, 틈틈이 저녁을 준비한다. 이제는 먹고자 하는 메뉴가 제각각이라 더 이상 물어보지 않는다. 오히려 조율하느라 보내는 시간이 더 걸린다. 요 며칠 겹치지 않은 메뉴 거나 혹은 너무 잘 먹고 반복되는 메뉴로 저녁을 차린다. 


고맙게도 다들 잘 먹어준다. 아이 셋이 찾던 아빠를 또 한 사람이 더 찾는다. 아내 역시 나를 많이 찾는다. 오늘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때로 아이들의 과제나 준비물이 잘 진행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본인의 자질구레한 일들의 처리를 위해 나를 찾는다. 네 사람이 번갈아가며 한 번씩 부르다 보면 나는 이곳저곳 불려 다니기 바쁘다. 그중에는 습관적으로 부르는 일들도 많다. 조금만 찾아보면 찾을 수 있는 것들, 몇 걸음만 걸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까지 습관적으로 불러도 댄다. 네 명의 소소한 부탁을 들어주다 보면 저녁 시간은 금방도 지나간다. 


가족들이 나를 부르는 횟수를 세어봐야겠다. 는 목표까지 생겼지만, 막상 세어보았는데 횟수가 얼마 되지 않으면 내가 너무 속 좁은 사람이 될 것 같아 내버려 두기로 했다. 투덜투덜 들어주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라도 내가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취침은 빠르다. 9시가 되면, 모두 침대에 눕는다. 중학생이 된 큰아이도 투덜투덜 거리지만 10시를 넘기는 일은 거의 없다. 최근 학원을 끊고, 새로 시작한 과외 수업을 제외하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10시를 넘어 침대에 눕는다. 


아내와 아이들이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잠에 들면 비로소 내게 혼자의 시간이 된다. 지금부터 몇 시간은 나를 찾는 사람이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시간이 왜 그리도 아늑하고, 달콤한지 무엇을 해도 즐겁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겁다. 


개그맨 김준현은 라면을 딱 한 개만 끓여 먹는다고 한다. 고 덩치에 라면 하나로 양이 찰까 생각하던 순간에 이유를 듣고는 앗 하고 긍정을 해버렸다. 


"어느 순간 라면이 질려지면, 다음번에 라면을 먹을 때 그 첫 느낌을 잊어버릴까 봐" 한 개 만을 먹는다고, 아쉬울 때 멈춰야 다음번에도 그 즐거움을 또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내가 혼자만의 시간이 이토록 즐겁고, 달콤한 것은 복작복작 시간을 보내고, 가족들이 돌아가며 나를 찾아서 일 것이다. 그렇게 불러대며 시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혼자만의 시간을 바라고, 그 시간이 오면 그렇게도 즐거웠겠다. 매일을 그렇게 혼자 보내야 하며, 아마도 몇 주 가지 못해 외로움에 몸부림칠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균형 잡힌 생활을 하고 있었고, 복작 거리는 시간과 혼자만의 시간을 나름 잘 나눠가며 살아가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이다. 아주 즐겁다. 곧 다가올 아이들과의 시간을 위해 차곡차곡 에너지를 모아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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