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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n 25. 2024

chap68. 취향에 대하여

 p 214-216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다품종 대량 생산의 시대가 저물려
'취향'이라는 것은 개인의 큰 무기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번글은 취향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글 중에서 제가 빌려온 문장을 제대로 인용하지 않은채 마치 저의 생각인 듯 표현하였습니다. 


출처를 기억하지 못한 다는 핑계로 더 찾아보려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더 주의하며 글을 쓰겠습니다. 


그리고 문장의 작가인 한서율 작가님께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허락없이 문장을 인용하였습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문장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면서도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앞으로 더 주의하도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 드립니다. 


저는 한서율 작가님이 오랫동안 사용하신 


"글은 수준이 아니라 취향이다" 라는 문장을 인용없이, 마치 저의 말인 것처럼 사용하였습니다. 이에 이 문장은 한서율 작가님이 오랫동안 사용하신 문장이며, 저 역시 그 글을 읽고 빌려온 문장임 밝힙니다. 


https://brunch.co.kr/@hanseoyul/259



-----------------                         이하 원글을 출처를 첨부하여 재개 합니다.                      -----------------


나에게는 글쓰기에 있어 나침반 같은 문구가 하나 있다. 글이 막히거나 잘 풀리지 않을 때, 아무리 봐도 이런 류의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좋아할까? 망설여질 때. 때로는 한없이 나의 글이 못난이로만 보일 때, 스스로에게 되뇌어주면 조금은 진정이 되는 주문 같은 말이다. 때때로 이 말에 위로를 받았고, 위안을 받았다. 내 등을 토닥여 주는 것 같았고, 조금 더 기운 내 보라 등을 밀어주는 것만도 같았다. 


글은 수준이 아니라 취향입니다.
출처)한서율



조금은 변명처럼 들릴 수 있다. 수준 높은 글을 쓰지 못하니 어떻게 써도 누구 하나쯤은 받아들여 줄 것이라 핑곗거리를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아직 무언가 찌잉 울리는 글을 써내지 못하니 고심이 많다. 


어린 시절 잘 타지도 못하는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하루 종일 공원에서 연습을 했던 일이 있다. 아무리 해도 핸들은 좌우로. 말 그대로 갈팡질팡 몇 걸음 못 가 넘어지기 일쑤. 무릎이며 팔꿈치며 왜인지 눈두덩이마저 멍이 들곤 했다. 자전거를 가르쳐 주겠다는 동네 형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두 손 두 발 다 들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해가 질 때까지 몇 걸음 못 가는 자전거에 오르고 또 올랐다. 몇 날을 그랬다. 넘어지고 다시 서고, 또 넘어지고, 그래도 도통 늘지 않는 자전거였다. 


그저 자전가가 타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다른 이가 나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어떻게 보는지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때는 신경조차 쓰이질 않았다. 그저 페달을 밟고, 흔들거리는 핸들로 어떻게든 중심을 잡고 나아가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게 전부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슬랩스틱 하고 있다 생각할지도 몰랐다. 나를 가르치던 형이 "너 일부러 그러냐?" 하면서 화를 내고 가버릴 정도였으니 그 모습이 좀 상상이 될까? 일주일이 걸려도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고작 나아가야 5-6미터 앞을 가는 게 고작이었다. 다른 운동은 곧잘 했는데 자전거는 도통 나와 맞질 않았다. 


결국 어떻게 되었냐고? 중학교 3년을 자전거로 통학을 했다. 학교 운동장에선 흙먼지를 날리며 드리프트턴을 하곤 했다. 때로는 앞바퀴를 번쩍 들어 올려 외발로 타는 윌리를 시전 하기도 했다. 나를 가르치던 형은 내게 독한 놈이라 했다. 자전거는 못 탈 줄 알았다고. 내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고는 엄지 척해주고 쿨하게 떠났다. 


글이 취향이라는 말은 내게 자전거와 같다. 잘하고 말고를 떠나, 해보고 싶은 것. 당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탔던 자전거가 아닌 것처럼, 지금의 나도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음... 가슴에 손을 얹어보니 조금은 보여주고 싶긴 한다. 요점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 나의 취향에 맞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다른 이의 관심과 판단보다 나의 만족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수준 높은 글을 쓰는 것은 중요하다. 나의 목표이기도 하고,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했다. 글도 처음부터 수준 높은 글을 쓸 수 없다. 당연하게도. 그래서 나는 내 취향대로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다가 막힐 때면 넘어졌던 자전거의 횟수가 떠오른다. 물론 셀 수 없었다. 얼마나 넘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다시 일어섰다는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글이 막히는 것은 순간이다. 시간을 보내거나, 시점을 바꾸건, 인식을 바꾸면 또 글이 풀린다. 나는 얼마인지도 모를 만큼 넘어진 이후에야 자전거를 탔다. 글은 얼마 쓰지도 않았다. 스스로 얼마나 많은 원고지를 구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쯤 되면 나는 취향을 넘어서 수준을 논할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글을 쓸 때까지 내게는 저 나침반 같은 이야기가 함께 할 것이다. 


글은 수준이 아니라 취향입니다.
출처)한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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