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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Nov 17. 2024

내비게이션의 심리적 거리감

오랜만에 다니는 길은 참 알면서도 모르겠다. 아니 어느 길로 가면 되는 것인지 분명히 알고는 있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확답을 못하겠다. 그렇다고 예전에 자주 다니던 길이라는 자부심에 무턱대고 내비게이션을 켜자니 좀 모양이 빠지는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냐, 최신기술에 대한 신뢰인가를 고민하다 "예전 어른들이 기술 하나라도 익혀두면 배는 곪지 않는다 하셨지.."라고 되뇌이며 내비게이션을 켠다.  


내가 기억하는 길과 내비게이션의 그 안내가 같은 루트이기를 기대하며 검색을 했더니 내비게이션은 내가 생각했던 길과 다른 길로 안내를 한다. 예전 기억에는 다른 길이 더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었는데...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최선 기술이라는 GPS 기반의 AI 내비게이션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무렴 인간보다 똑똑하겠지. 

십 년 만인데 교통량이 많이도 달라졌을지도 있지. 


저기로 왔으면 신호가 덜 걸렸을 거 같은데...

결국 이 시간이야? 그냥 기억대로 올걸..


기술을 믿었던 자신의 판단은 도착 10여분을 남기고 막히는 트래픽 잼에 실망하게 되고, 내 기억 속의 그 길이 여전히도 빠르고, 편안하게 왔을 것이라 후회한다. 실상이야 내 기억 속의 길과 내비게이션의 길안내의 차이는 채 5분 차이도 나지 않았을 것이며, 내비게이션의 그 길안내가 최고 빠른 길인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한다. 아니. 내비게이션의 길은 압도적으로 빨랐어야 한다. 교통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신호가 걸리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경우의 수까지 고려해 압도적으로 빠른 안내를 해 주어야 한다. 이것이 소비자가 내비게이션에게 바라는 기대다. 


내 판단은 조금 늦어도 괜찮다. 나는 인간이며, 기억에 의존해 완전히 감과 경험으로 길을 찾는 것이며, 그 자체만으로 이미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벌써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데 속도가 조금 늦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 정도는 괜찮다. 안전하게 제대로 목적지에 도달했으니 괜찮다. 


이것이 내비게이션의 심리적 기대감이다. 단순한 수치적으로 빠른 길을 안내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기대감. 나의 판단이 아닌 타인의 조언과 기준이라면 좀 더 완벽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존재한다. 그래야 내 판단을 접어두고 기계의 정보를 믿은 나를 칭찬할 수 있다. 기계에 의존하는 것은 압도적인 효율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이 스스로의 판단보다 기계와 기술에 의존하는 까닭이다. 


기술과 기계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기에 어느 정도의 비교가능한 결과물에는 만족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로는 가심비가 약한 셈이다.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로는 만족감은 충족시키기엔 부족해 보인다. 기준이 기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감과 실망을 우리는 살아가는 가운데 종종 느낀다. 매일을 만나고 생활하는 동료들에게 때때로 느끼는 거리감, 하루종일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생활했던 사람의 몰랐던 차가움. 반면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경험한 환대와 따스함들. 때때로 수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대와 충족들은 우리의 삶이 수치와 정형화된 것으로만 흘러가지 않음을 방증하는지 모른다. 


심리적이라는 단어 아래는 많은 것들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아무리 데이터로 나타낼 수 있는 지표라도, 취향이라는 한 마디에 결정이 뒤바뀌어 버리는 경험은 너무도 많다. 아무리 값비싼 명화나 명품이라 불리는 것들도 때로는 아이의 정성 어리고 순수한 마음이 담긴 말과 편지 한 장보다 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인문학을 공부하고,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이곳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될지 모른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들이 발전을 해도, 사람을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정확하고 화려한 기술이 아닐 수 있다. 아무리 마블의 뛰어난 CG로 무장한 영화도, 때로는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받을 수 있는 가슴떨림을 뛰어넘지 못할 수도 있다. 인간의 감성을 잘 살린 영화는 그 어떤 뛰어난 컴퓨터 그래픽으로 무장한 영화보다 더 관객들을 끌어모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빠른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도 출산을 앞둔 산모를 태우고 있는 경우는 느리게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돌고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도 사랑하는 그녀와 첫 드라이브라면 너무 짧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기술의 발전의 수치만으로는 우리의 삶을 평가할 수 없다. 결국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행복과 불행 혹은 그 모든 감정들은 나의 외부의 사건보다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것들로 결정되는 것인지 모른다. 


오늘 동생의 십 주기를 맞아 다녀오는 그 길에는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았다. 빠르게 도착해야 할 이유도, 길을 찾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운전하는 동안 그를 그리워했고, 되돌아봤으며, 혼자서 많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놀랍기도 하면서, 여전히 동생이 안치되어 있는 곳을 찾는 것은 마음이 아프기에 그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에 관한 많은 추억과 기억으로 시간을 짧게만 느껴졌다. 인간의 마음은 참 어렵다. 같은 길을 가면서 멀게 느끼면서도 동시에 금방 도착했다 느끼는 이 감정을 어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모든 일들이 내 안에서 결정된다면, 나도 그도 모두가 평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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