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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사라진다. 그러나 경청하는 태도는 남는다

by 성준

오후의 햇살이 창가를 스며든다. 커피잔을 손끝으로 감싸 쥔 채, 천천히 한 모금을 머금는다. 따뜻한 온기가 입안에서 퍼지고, 잔잔한 음악이 공간을 감싸 안는다. 주변을 둘러보면,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테이블 위에 흩어진다. 때론 소란스럽게, 때론 조용하게. 하지만 우리는 정말 서로를 이해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말을 잘하는 법에 대해 논했다. 어떻게 하면 상대가 듣고 싶어질까, 대화를 더 우아하게 풀어나가는 법은 무엇일까. 그러나 정작 대화를 완성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듣는 사람이다. 듣는 태도 하나가 말의 무게를 결정하고, 관계의 결을 바꾼다.


잘 듣는 태도는 단순히 상대의 말을 참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다. 대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듣는 사람의 태도다. 듣는 사람이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대화는 방향을 잃고 공허한 말들만 떠돌게 된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섬세하게 듣고 있을까?



“저번에 내가 그 얘기 했을 때 기억나? 그때 너도 예상 못 했다고 했던 거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땠어? 그때 느꼈던 그대로야, 아니면 좀 다르게 보이려나?”

그녀는 두 손을 공중에 들어 올리며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말의 끝에는 작은 웃음이 섞여 있고, 눈빛은 반짝인다. 그러나 맞은편의 친구는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응, 맞아. 대박이다.”

단조로운 대답, 무성의한 반응. 그럼에도 그녀는 애써 계속 말을 이어간다. 그러나 말끝이 점점 흐려지고, 이내 입을 다문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지나가는 생각이었어.”

듣는 척하지만 듣고 있지 않은 순간. 우리는 이런 공허한 대화를 몇 번이나 경험했을까.



학생이 선생님 앞에서 연주를 시작한다. 손끝에 긴장감이 스며들고, 심호흡과 함께 첫 음이 울려 퍼진다. 음 하나하나에 조심스레 감정을 담아가며, 지문이 닳도록 반복했던 연습의 흔적을 온 힘을 다해 표현한다. 음색이 미묘하게 떨리지만, 그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나 선생님의 시선은 창밖으로 멀어진다. 창가에 걸린 커튼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그 바깥으로 무심한 거리의 풍경이 지나간다. 학생은 연주를 멈추지는 않지만, 선생님의 무관심이 점점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그의 손끝이 흔들린다. 연주의 마지막 부분에 다다랐을 때, 그는 선생님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그러나 그 눈빛엔 여전히 집중의 흔적이 없다.

연주가 끝나자 선생님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좋아, 다시 해볼까?”

그 말이 끝나는 순간, 학생의 얼굴엔 어딘지 모를 공허함이 내려앉는다. 그가 원한 것은 피드백이 아니었다. 온전히 자신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연주를 듣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무시당하는 느낌이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내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지, 내 감정을 함께 느끼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듣지 않는 태도는 관계의 균열을 만든다.



한 사람이 그림 앞에 선다. 한참을 바라본다. 처음엔 그저 색의 조합, 붓의 결, 배경 속 작은 디테일들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마치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가 서서히 피어오르는 것처럼.


바다 한가운데,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다. 말없이,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수평선 너머로 지는 노을이 하늘을 물들인다. 하지만 그들은 말이 없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침묵이 깊어질수록 더 많은 것이 전해진다.


사람의 말도 그렇다. 우리는 너무 쉽게 상대의 말을 해석하고, 너무 성급하게 의미를 단정 짓는다. 단어의 표면적인 의미만을 좇다 보면 정작 중요한 뉘앙스와 맥락을 놓쳐버리기 쉽다. 하지만 조급하게 반응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들이면 비로소 말의 결이 보이기 시작한다. 침묵 속에서 말의 본질이 드러나기도 하고, 표정과 몸짓에서 숨겨진 감정이 전달되기도 한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청취가 아니다. 감정과 맥락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며, 상대의 말이 흘러가는 리듬과 속도를 맞추는 과정이다. 대화는 교환이 아닌 흐름이다. 상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답변을 준비하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단순한 반응일 뿐이다. 정말로 듣는다는 것은 상대의 말이 충분히 울려 퍼지도록 기다리는 태도이며, 그 말의 여운까지도 존중하는 행위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경청이다. 경청은 단순히 상대의 말을 듣는 행위가 아니라, 대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행위다. 말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반응을 넘어, 상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흐름을 이어가는 능력이다. 이를 잘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대화를 주도할 줄 아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은 자연스럽게 품격 있는 인상을 남긴다. 대화 속에서 경청이 중요한 이유는, 듣는 태도가 곧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이다.


듣는다는 것은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상대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다.

대화는 단순히 단어를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말과 말 사이의 여백에서 만들어지고, 듣는 사람의 태도에서 깊어진다. 우리는 종종 말을 잘하는 사람이 대화를 주도한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대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듣는 사람이다. 듣는 태도가 대화의 무게를 결정하며, 듣는 방식에 따라 같은 말도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진정으로 경청하는 사람은 단순히 상대방의 말을 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리듬을 따라가며, 숨겨진 감정을 읽어내고, 흐름을 잇는다. 상대방의 말끝이 무거울 때, 가볍게 이어줄 줄 알고, 망설이는 순간에는 여유를 줄 줄 안다. 그것이야말로 품격 있는 대화의 방식이다.


우리는 정말 듣고 있는가? 아니면 듣는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인가? 이제는 말을 잘하는 법을 고민하는 대신, 진정으로 말을 듣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는 때때로 화려한 언변과 논리적인 말솜씨가 대화를 지배한다고 착각하지만, 진정한 대화는 듣는 사람의 태도에서 완성된다. 상대의 말에 온전히 집중하고, 숨겨진 뉘앙스를 읽어내며, 적절한 침묵으로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화의 품격을 결정하는 요소다.


진정으로 듣는다는 것은 단순한 청취를 넘어, 상대의 세계를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가벼운 호기심이 아니라, 깊은 이해로 다가가야 한다. 듣는 순간에도 마음이 닫혀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열린 귀와 열린 마음으로 듣는다면, 그 짧은 침묵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말은 흩어진다. 하지만 경청하는 태도는 남는다. 우리의 말이 바람에 날아가도, 상대방이 나를 진정으로 들어주었다는 기억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러므로 대화의 품격은 결국 듣는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이제는 잘 말하는 것보다, 더 잘 듣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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