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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Dec 14. 2021

다시 시작하는 중입니다  #3화

셋째 임신과 함께 마주하게 된 것들


임신을 알기 1달 전 큰아이의 감기가 심상치 않아 소아과에 갔었다. 한창 독감이 유행인 때라 검사를 했고 A형 독감에 걸린 걸 알게 됐다.

무슨검사결과로 보이십니까?


그날 인별 그램에 간단한 글과 독감 검사 키트를 찍어 올렸었는데, 그때 댓글들이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셋째인 줄 ^^;;"

"셋째 가진 줄 알고 깜놀"

"흐미 ㅜㅜ 요즘 독감 유행 ㅜ 근데 나도 저거 너 셋째인 줄 ㅋㅋ"

"셋째 가진 줄 알았어요 (웃음)"


이렇게 생뚱맞은 반응들이라 우스개로 넘어갔는데 

복선이었던 걸까?


키트 위에 아들의 이름이 버젓이 적혀있고, Flu라고도 적혀있는데 두 줄의 선만 보고 임신인 줄 알았다는 말이 실언이 아닌 예언으로 신분세탁(?)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한 달 후 아기집이 찍힌 초음파 사진을 다시 인별 그램에 올려 임신 소식을 알리니

"그럴 줄 알았다, 독감 키트 때 이미 알아봤었다"는 반응에 또 한 번 댓글창이 왁자지껄했다.


내가 고생할까 봐 가장 속상해하실 것 같았던 친정부모님은 셋째는 복덩이라며 오히려 잘 된 일이라며 기뻐하셨고, 직장에서도 박수를 쳐주었다. 그렇게 나는 웃고 있었다.


그러나 기쁨은 짧은 법.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입덧 시작하는 날!


셋째는 입덧 않고 지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평생의 모든 복을 한 번에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주저 않고 입덧을 막는데 쓰겠다 외치고 싶을 정도로 꽤 심하게 하는 편이었다.

신호탄이 '무엇'일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냄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곧 미친 듯이 속이 너울거리기 시작할 것이기에 나는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닌 상태였다. 곧 닥칠 태풍을 기다리는 것도 안기 다리는 것도 아닌 심정이랄까. 


첫째 임신했을 때는 갑자기 구운 김 냄새가 역해서 입덧 인지도 모른 채 체한 줄 알고 내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었고, 둘째 때는  남편이 야근후 밤 11시에 사다준 햄버거를 먹다가 갑자기 헛구역질을 했었다. 그때도 배탈을 의심했었는데 김과 햄버거를 뒤이어 이번엔 뭐로 시작하게 될는지 모를 일이었다.


입덧이 그냥 구토만 한다면 차라리 나을 . 어떤 소리도, 냄새도, 느낌도, 맛도 싫어지는 미칠 것 같은 시기를 겪는다. 보통의 임신부들은 16주 정도면 정상이 되지만 불행히도 나는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에야 입덧에서 자유로워지는 저주받은 몸뚱이였다. (그래서 아기를 낳고 나서 먹는 첫 밥은 언제나 핵 꿀맛이다.)


정확히 임신을 안 지 1주일째 되던 날부터 나는 토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신호탄 같은 것도 없었다. 주말 동안 계속 누워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셋째가 엄마를 덜 괴롭히기를 기도해주었지만 속은 잠잠해질 기미가 없었다. 평일엔 계속 토하면서도 편도 40분 되는 거리에 있는 직장을 오가야 했고 겨우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침대에 눕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입덧이 심해 나 혼자만 배에 올라있는 것처럼 살던 임신 초기 출근길에 듣는 라디오 뉴스가 떠들썩하기 시작했다. 정치, 경제 이슈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발생했는데 그게 잠잠해지기는 커녕 확산속도가 빠르다는 소식이었다. 며칠 지나니 그 바이러스에게 코로나19라는 이름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확진자가 생겼고, 내가 사는 지역에도 그렇다는 재난 메시지를 받게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원더 키디는 진짜였단 말인가? (1탄 참조)

우주에서 전쟁이 터지지는 않았지만 지구에서 악당이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러다가 나도 아기도 위험 해지는 건 아닐까? 워낙 비슷한 시기에 정체를 드러낸 탓에 내 아기는 코로나 베이비라고 불리게 되는 건 아닐까?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코로나와 아기는 비슷한 점이 하나 있었다.

녀석들 덕분에 일상이 단절되었다는 점이다. 


나와 가족들은 입덧으로 인해 가정에서의 모든 것에 제동이 걸렸고, 남편과 시어머니의 역할이 커졌다. 식사는 시어머니가, 다른 집안일과 아이들 돌보는 일은 남편이 도맡아 해야 했다. 아이들은 나와 대화하기 힘들어졌고, 대신 토하는 내게 다가와 말없이 등을 두드려주기에 바빴다. 쫑알쫑알 할 말 많은 8살 둘째는 아빠에게 걱정을 내비쳤다.

"아빠... 엄마가 이러다가 까부는 걸 까먹을까 봐 걱정이야."

항상 발랄하고 농담하기 좋아하던 엄마가 매일 환자의 몰골을 하고 있으니 꽤나 걱정이 되었나 보다.


이미 두 아이 때 다 해보고 효과가 없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입덧 밴드, 탄산수, 생강 캔디, 레몬 캔디, 비스킷 등등 입덧을 완화해준다는 방법을 모조리 다 동원해보았다. 역시나 소용이 없었고  급기야는 죽을 것 같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눈물이 났다. 아기는 잘 자라가는데 정작 나는 극한의 고통을 맛본다는 것이 억울하기까지했다.

 당길 수 있는 동아줄은 모두 당겨보았지만 나를 하늘로 올려주는 것은 없구나 싶어 땅을 치고 울고 싶은 어느 날.... 아는 동생이 구원 같은 한마디를 해주었다.


"언니! 요즘은 입덧 약이 있던데? 병원 가서 물어봐!"


구원은.....  

병원에 있었다!!!


당장 산부인과에 가서 입덧약(디클렉틴)을 처방받았다. 비보험이라 가격이 좀 있었지만 내겐 생존의 문제였기에 아깝지않았다. 완벽한 효과는 아니었지만 구토를 완화시켜준것만으로도 나의 삶의 질이 상승했다.  


오 신이시여. 이런약을 개발하게 제약회사 연구원들에게 지혜주신것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그렇게 감사기도를 드리며 코로나19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입덧약을 먹으며 버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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