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니 Nov 06. 2019

도둑이 우리 집에서 훔쳐간 것

내가 어릴 적 살던 집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길가에 있었다.

작은 집이었고, 120센티쯤 되는 높이로 쌓인 벽돌과 사철나무로 된 담장이 빙 두르고 있었다.

나무틀에 넓적한 함석판을 붙여 만든 대문은 모양새만 그럴싸해 언제든지 힘없이 열렸기 때문에 그 자리만 채울 따름이었다.

그런 구조 덕분에 우리 집은 가족들이 보호받을 안전한 공간이 없었다.


길가에 있어서 간밤에 누군가 싸우면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소리들이 이불 속까지 들려오고, 대문을 받쳐 놓은 커다란 돌멩이가 언제든지 밀려날지 모른다는 걱정에 바짝 긴장해야 했다.

아빠가 숙직이거나 1달씩 연수를 가실 때에는 엄마가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실 때가 많은 건 당연지사였다. 안 그래도 겁이 많았던 엄마는 아빠가 없는 그 숱한 밤 오죽이나 불안했을까싶다.


그렇다고 엄마의 걱정처럼 오밤중에 술에 취하거나 싸움다 우리 집에 불쑥 들어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마 아빠가 경찰이셨기 때문이겠지.

예전에는 마을에 경찰이 있으면 시골사람들은 이런저런 덕을 많이 보기도 했고, 또 혼쭐이 나기도 했으니 함부로 행동할 사람은 없었을 거다. 사람들은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아빠를 찾으러와 담벼락에 기대 아빠의 이름을 외쳐대는 경우를 종종 보았고, 그럴 때마다 아빠는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출동을 하시곤 했었다.     


그렇게 태풍의 눈처럼 위태하게 고요했던 우리 집에도 시련은 찾아왔다.

고 1 때 겨울이었다.

아무도 없는 우리 집에 누군가 다녀가셨다. 도둑놈이시다.


낮은 담을 훌쩍 넘어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을 피해 자물쇠를 망가뜨리고 방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사라진 것들은 현금 얼마와 엄마의 예물반지였다. 당시 엄마는 반지를 방바닥 장판 밑에 두었는데 도둑이 거기를 어떻게 알고 쏙 빼갔는지 알 길이 없다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방이 세평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 찾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겠다 싶다. 뒤질 데가 많아야지 어려움을 느끼지.    

 

경찰의 집에 도둑이 들었으니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다더니 이게 웬일이냐며 우리 집을 구경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아빠는 최선을 다해서 범인을 잡고자 하셨다.

아빠의 동료들이 와서 지문도 채취하고 발자국도 찍어갔다.

세상에! ‘경찰청 사람들’을 우리 집에서 찍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광경이 생경하고 재밌었다.     

[경찰청 사람들]의 한 장면


그 후로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서 쉬고 있으면 조사한답시고 불쑥불쑥 경찰들이 찾아왔고 집에 있는 가족들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물론 내가 혼자 있는 시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아빠의 후배이자 동료였기에 나에게 이런저런 농담도 던지고 했었는데 나는 그게 은근히 불편했다.

왠지 발가벗고 있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자기들의 시간표대로 지나다니니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겠어서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둑이나 경찰이나 매한가지로 내게는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어서 그 도둑을 빨리 잡기만을 고대했다.    


우리 가족은 조만간 범인이 잡힐 거라 철석같이 믿었지만 며칠 뒤 아빠에게서 실망의 말을 들었다.

잡지 못할 거란다.

“왜요?” 하며 거의 물음표가 백 개는 달린 오빠와 나의 질문에 아빠는 더 이상의 대답이 없으셨다.

평소에 엄하셨던 아빠였기에 더 이상 추궁을 할 수는 없었고 우리는 패잔병이 된 기분이 들었다.

도둑이 든 것도 억울한데, 잡지도 못한다니….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싶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때 아빠의 표정이 알쏭달쏭하다. 할 말이 있지만 속으로 삼키실 때 나오는 그 특유의 표정.

정말 못 잡는 거였을까?

잡기를 포기한 건 아니었을까?

그도 아니면 잡을 수 있지만 안 잡은 건 아니었을까?

생각이 길어질수록 왠지 3번째 물음이 곧 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커진다.    


추측하기로는 범인은 동네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범인을 잡으려면 몇십 년을 봐오던 형제와도 같던 그 사람을 제 손으로 범인으로 지목해야 하고 그 사람이 연행되는 것을 봐야 한다. 아무리 아빠가 일에 철두철미한 경찰이라고 해도, 사건이 마무리된 이후에 도둑과 그 가족들을 대면해야 하는 삶을 견디기에는 무리가 있으셨을 것이다.

차라리 물질적인 피해를 감수하고 심리적인 평안함을 선택하신 게 아니었을까.

본인의 속은 문드러질지언정 언제나 아빠는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래. 역시 우리 아빠다운거였지.’라는 생각으로 회상을 마치려던 순간 문득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내게 들려왔던 한마디가 선명히떠올랐기 때문이다.    


“에? 여기? 전계장 님이 이런 데 사신다고?”     


우리 집 대문 앞에서 말하던 어떤 경찰의 목소리다.

그들의 목소리와 눈빛에서는 평소에 자존심이 세고 관내 경찰들 사이에서 일 잘하기로 정평이 나있던 아빠에 대한 실망감과 다소 의외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작고 낡고 허술한 우리 집을 더욱더 초라히 보이도록 만들어 버린 건 어쩌면 도둑보다 아빠의 동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중한 우리 집이 그들에게는 고작 ‘이런 데’였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집의 부실한 담과 허술한 잠금장치들로 인해 ‘이 집은 안 털리는 게 이상한 집’이라는 정서가 자리 잡기 시작했고 결국 아빠에게는 도둑을 잡고 안 잡고가 중요한 게 아닌 게 되어갔을 거라 생각한다.


그때… 아빠에겐 선택권이 없었던 가난 때문에 아빠는 또 한 번 마음에 큰 생채기가 났을 거다.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아빠가 직장에서에서 마주했을 수 차례의 질문들과 눈빛들을 가늠해보니 문득 마음이 아린다.     


도둑이 밟고 다닌 우리 집 마루와 방을 경찰들이 밟고 지나갔다. 우리 가족이 눕고 놀고 뒹굴고 쉬는 그곳을 도둑과 경찰이 서로 다른 목적으로 휘젓고 다녔다.

그들은 우리 집을 문제가 많으며,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은 그 사실을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그들은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과 재산을 도무지 안전할 수 없는 공간에 계속 두어야 하는 아빠의 숨은 괴로움을.

잘못한 사람은 도둑인데 시간이 갈수록 아빠가 죄지은 것처럼 사건이 변질되어 갔다는 걸 말이다.    


나 역시 이제와 알았다.

그때 우리 가족이 잃어버린 게 돈과 반지뿐 만이 아니라는 걸….


아빠의 마음.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