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기록, 다르게 보이다
영화 데이터베이스가 어느정도 정리되고 먼저 우측 상단에 있던 필터(Filter) 버튼을 눌러봤다. 조건을 고르는 창이 떴다. 만들어 놓았던 속성 중에 본 것과 안 본 것을 구분하는 상태 값의 옵션을 선택하고 '본 영화'를 체크해봤다. 옵션에 따라 보여지는 화면이 달라졌다.
이번에는 평점 속성을 선택하고 ‘별이 다섯 개’를 선택해 봤다. 조건 하나로 화면이 달라졌다. 보고 싶은 영화 목록만 보이게 하거나 평점이 높은 영화 목록만 보이게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건 기록을 다시 정리한 게 아니었다. 보는 방식만 바꾼 것이다.
정렬(Sort)도 걸어봤다. 날짜를 최신순으로 정렬하니 언제 어떤 영화를 봤는지 흐름이 잡혔다. 이번에는 별점 높은 순으로 바꿔봤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위로 올라왔다. 필터와 정렬을 조합하면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여러 가지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최근에 뭐 봤지?", "진짜 재밌었던 건 뭐였지?", "아직 안 본 건 뭐가 남았지?" 질문마다 필터 조건만 바꾸면 됐다.
그렇다고 매번 필터를 걸었다 풀었다 하는 건 번거로운 일이다. 아마도 Notion 개발자도 그래서 뷰(View)라는 기능을 만들어 놨겠지? 당시에는 데이터베이스와 뷰의 차이도 몰랐다. 데이터베이스(표)가 복사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조금 쓰다가 보니 ‘링크된 데이터 소스보기’가 데이터베이스의 뷰(View)라는 것을 알았고, 이것이 바로 같은 데이터베이스를 다른 눈으로 보는 방법이란 것도 알았다.
하나의 데이터베이스에 뷰를 여러 개 만들 수 있었고, 각 뷰에 필터와 정렬 조건을 따로 저장할 수 있었다. "본 영화"라는 뷰를 하나 만들고, 상태가 '본 영화'인 것만 필터를 걸어 저장했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라는 뷰에는 ‘별 5점’ 필터를 걸었다. 탭을 누르기만 하면 원하는 화면이 바로 나왔다.
뷰에는 표(Table) 말고도 다른 형태가 있었다. 궁금해서 하나씩 눌러봤다. 갤러리 보기(Gallery view)를 선택했는데 화면은 바뀌었지만 이미지는 나오지 않았다. 당연했다. 사진을 넣은 적이 없으니까. 페이지 안에 이미지를 하나 넣어봤더니 그제야 갤러리에 표시됐다. 영화 포스터를 넣으니 목록이 아니라 컬렉션처럼 보였다. 통일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지금은 모든 페이지에 커버 이미지를 넣고 있다. 별점 별로 그룹을 지어두니 별 다섯 개짜리 영화만 모인 칸이 따로 생겼다.
운동 데이터베이스에서는 캘린더 보기(Calendar view)를 만들었다. 날짜 속성을 기준으로 달력 위에 운동 기록이 배치됐다. 한 달 동안 며칠이나 운동했는지 한눈에 보였다. 비어 있는 날이 눈에 띄면 자극이 됐다.
타임라인 보기(Timeline view)도 써봤다. 시작일과 종료일을 지정하면 간트 차트처럼 기간이 표시됐다. 보드 보기(Board view)에서는 상태값을 기준으로 카드가 묶였다.
책 데이터베이스도 다듬었다. 읽은 책·읽고 있는 책·읽을 책으로 상태를 나누고, 별점 4점 이상인 읽은 책만 필터를 건 뷰를 만들었다. 이름을 "다시 읽고 싶은 책"이라고 붙였다. 갤러리 보기로 표지를 깔아두니 내 서재 같은 느낌이었다. 읽을 책 뷰에서는 캘린더 보기로 읽기 시작할 날짜를 잡아뒀다. 이것도 대시보드 페이지에 올렸다.
여행 데이터베이스에서는 출발일~복귀일을 타임라인으로 보니 올해 여행 계획이 한 줄로 정리됐다. 보드 보기에서 계획 중, 준비 중, 다녀옴 세 칸에 여행들이 나뉘어 놓이자, 지금 뭘 준비해야 하는지가 바로 보였다. '계획 중'인 여행만 필터를 걸어 뷰를 하나 만들고, 거기에 준비물 체크박스를 추가했다. 항공권, 숙소, 환전, 여행자보험. 체크가 안 된 항목만 필터로 걸면 지금 당장 해야 할 것만 남았다. 그런데 여행이라는 게 준비물 체크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상세 일정을 짜는 데이터베이스가 따로 필요했고, 준비 과정을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도 따로 만들게 됐다.
돌이켜보면 처음에 만들었던 대시보드는 서랍 입구를 모아놓은 것이었다. 지금은 달랐다. 각 서랍 안에서 뷰와 필터로 걸러낸 화면이 대시보드에 올라가 있었다. 영화 대시보드, 여행 대시보드, 독서 대시보드, 운동 대시보드. 하나였던 대시보드가 카테고리마다 생겨났다. 기록이 늘어난 게 아니라, 기록을 보는 눈이 늘어난 것이다.
그런데 각 데이터베이스가 잘 정리될수록, 하나가 마음에 걸렸다. 여행 상세일정 데이터베이스와 준비 계획 데이터베이스가 따로 놀고 있었다. 책 데이터베이스에서는 매번 에세이, 역사서, 소설, 자기계발서를 직접 골라 입력하는 게 번거로웠다. 장르를 데이터베이스로 따로 만들어 연결하면 어떨까. 서랍끼리 이어줄 수 있다면 기록은 한 단계 더 진화할 것 같았다.
그때 'Relation'이라는 속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