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기록에 이름표를 붙이다

표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by imago

대시보드를 만들고 나서 처음으로 든 생각은 "잘 됐다"가 아니었다.

영화 페이지를 열었더니 본 것도 있고, 볼 것도 있고, 모두 뒤섞여 있었다. 운동 기록은 날짜를 제목으로 만든 페이지가 운동을 할수록 아래로 끝없이 늘어지고 있었다. 서랍 배치는 끝냈는데, 서랍 안이 정리가 안됐다.


“그래. 정리를 시작해보자!”


난 보통 서랍정리를 할 때 모두 꺼내 놓는다.

그리고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을 앞쪽으로 배치하며 정리를 해 간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표’였다. 표로 정리를 하면 깔끔해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슬래시(/)를 눌러 '표(Table)'를 선택했다. 3행 3열짜리 빈 표가 생겼다. 엑셀이나 워드에서 표를 삽입할 때와 똑같은 모양이었다.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했다.

상단에 ‘제목, 날짜, 속성, 별점, 한줄평’으로 열의 이름을 잡고 영화 제목을 한 행씩 입력하면서 행을 늘려갔다. 다섯 개 열이 자리를 잡고 내용이 채워지니 표가 제법 그럴 듯해졌다. 채울수록 기록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 채우고 나니 앞으로 불편해 보일 것이 눈으로 보였다. 본 영화와 볼 영화가 한 화면에 섞여 있고, 새로운 기록은 표의 가장 하단으로 스크롤을 해서 적어야 하는 것이다. 필터를 걸거나 정렬 방식을 바꿀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인데, 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그렇다. 표는 표일 뿐이었다. 입력은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됐다.


잠깐 고민해 봤다. 그리고 메뉴를 다시 떠올렸다. 표(Table) 바로 아래에 '표 보기(Table view)'라는 항목이 있었다. 만들어 놓은 표 밑에 생성을 해봤다. 제목을 넣을 수 있는 아까 만든 표와는 다른 형태의 표가 생겼다. 그런데 이 표에는 정렬 기능이 있었다. 제목도 넣을 수 있고, 필터, 검색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이콘도 보인다. 앞서 표를 만들 때는 빨리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냥 지나쳤는데, 내가 만든 표보다 훨씬 쓸모가 많아 보인다. 이게 바로 데이터베이스였다. 이때까지만해도 데이터베이스의 개념도 알지 못했다. 문제는, 난 이미 표를 만들어 기록을 모두 해 놨는데, 더 쓸만한게 생겼다는 것이 바로 문제였다.




Notion 개발자들을 믿었다. 만들어 놨던 표에 이것, 저것 눌러보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만들어 놓은 표의 블럭(⠿)을 클릭하니 메뉴가 나타났다. '데이터베이스로 전환'이라는 글자를 봤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클릭을 하니 만들어놓았던 표가 바뀌었다. 다행히도 기록한 내용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내용 위에 속성(Property)을 클릭하여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 기능이 생겼다. 표 상태에서는 그저 텍스트를 채워 넣는 칸이었는데, 데이터베이스로 전환시키자 각 칸이 역할을 가진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모르고 7층 건물을 몇일동안 계단으로만 올라 다니다가 우연히 방화문을 열었는데 엘리베이터를 찾은 느낌이랄까. (사실 이것도 경험이었다는..)


하나씩 속성에 이름표를 붙여줬다. 이름표를 붙이며 이름표와 맞는 속성의 값으로 바꿔줬다. 영화를 본 날짜는 '날짜(Date)' 속성으로 바꾸고, 영화를 본 날짜를 캘린더에서 체크하였다. 알림(Reminder)도 걸 수 있었다. 개봉 예정인 영화 날짜를 적어두고 하루 전 알림을 걸어두면 까먹을 일이 없어졌다.

봤는지 여부를 표시하던 속성 열은 '상태(Status)'로 바꿨다. 보고 싶은 영화, 보고 있는 영화, 본 영화. 세 단계를 직접 만들어 지정할 수 있었다. 텍스트로 '봤음'이라고 적어두는 것과는 달랐다. 상태값은 정해진 선택지 안에서 고르는 것이라 오타가 생길 일이 없었고, 나중에 조건을 걸기에도 정확했다.

image.png Notion 영화 데이터베이스


운동 기록으로 넘어가면서 숫자(Number) 속성의 쓰임을 알게 됐다. 등산이나 자전거 기록에는 킬로미터(km) 단위로 거리를 입력하고, 운동 시간을 분 단위로 기록했다. 숫자 속성에는 단위를 붙일 수 있었다. 여행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때는 경비를 원화(₩)로 입력하기도 했고, 해외여행은 달러($)나 엔화(¥)로 표기했다. 같은 숫자 속성인데 용도에 따라 단위가 바뀌었다.


속성을 하나씩 지정해갈수록 달라진 것이 있었다. 예전에는 기록을 적을 때 빈 화면에 떠오르는 대로 적었다. 데이터베이스에서는 이 기록에 어떤 이름표를 붙일지를 먼저 정했다. 날짜인지, 상태인지, 숫자인지, 선택지인지. 적기 전에 구조를 잡는 습관이 생겼다. 적는 방식이 바뀌자, 꺼내보는 방식도 바뀔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가 끝나가며 상단에 있던 '필터(Filter)', '정렬(Sort)' 버튼을 클릭 해 봤다. 또 '뷰(View)'를 추가할 수 있는 + 버튼도 클릭을 해봤다. 이름표가 붙은 나의 기록은, 내가 원하는 조건으로 골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나씩 눌러보기 시작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