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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Oct 21. 2023

세상의  끝과 끝에서

다음은 다르게 살아봐요.

다른 세상에서 다르게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금세 서글퍼진다.

미처 내가 알지 못한 세상이 두렵다기보다

알아주지 못해서, 때론 외면해서 비겁하게 사는 것 같아 미안한 기분이 든다.


전산에 이름 석자가 떴다.

익히 알고 있는 이름, 단골환자, 알코올중독.

오늘은 대체 또 얼마나 마셨을까, 얼마나 곤죽이 돼서 들어올까

오물은 다 쏟아내고 왔으면 좋겠는데..

이미 간경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복수도 차서 ET 같은 외형의 50대 후반의 아저씨.

오물만 아니라면 폭력적이지도 않고 순해서 착한 알코올중독환자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알코올중독 환자도 다 같지가 않다.

굉장히 과잉된 행동으로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사람, 그저 조용한 사람, 평소보다 더 순하고 착해지는 사람, 눈꺼풀도 버거워 보일만큼 무기력한 사람 등등.. 굉장히 다양하다.

육체적으로 힘든 유형의 환자는 아니었지만 그래서인지 아저씨의 입원은 매번 마음이 쓰였다.

-이러다 정말 죽어요, OOO님

-.......

-이러다 정말 큰일 나요 000님

-.........

말보다 한숨으로 말하는 환자.

아저씨의 한숨이 들려서 자꾸만 더 말하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같이 한숨으로 오가는 대화는 잠잠하고 깊었다.

그해 나는 연달아 3명의 알코올중독 환자를 떠나보냈다.

한숨으로 내내 죽고 싶다던 아저씨는 드디어 죽어서 행복할까.

우악스럽게 이 세상을 원망하고 저세상을 외치던 할아버지는 저 세상이라 만족스러울까.

내내 아이 손은 절대 놓지 않던 무기력한 아줌마는 죽을 때 그 손은 어떻게 했을까.


세상의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사람들을 자주 보는 일은 간단치가 않았다.

흔들리는 그들도 위로해야 했지만 그로 인해 위태로워지는 스스로도 지켜야 했다.

서로가 뒤엉켜 엉망진창이 되지 않도록 각자의 위치를 잘 지키고 있어야 했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은 진리니깐.

실은 그때 그들의 도를 넘는 방식에 정말이지 신물이 나고 있었다.

오물에 빠지는 날이면 그들이 그들 바람처럼 서둘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지만 말고 죽어서 이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졌으면 좋겠다고.

타인의 죽음을 원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건 소름 끼치는 일이다.

나는 그곳을 떠났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에서였다.

일을 그만두고 쉬는 동안에도 그들을 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냄새나는 기억들이 풀리면 거기서 영영 나올 수 없을것만 같았다.

처음부터 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던 것처럼 어느 순간 그렇게 생각해 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내내 실패자들이라고 비난했다.


한 작가님의 산문집에서 알코올중독 아버지에 대한 단상을 읽게 되었다.

어쩌면 내 기억보다 그들은 더럽지도 무력하고 막 돼먹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내 기억이 그랬던 시간만 기억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황폐해진 내 가슴을 그들 탓으로 돌려서는 안되었다.


아저씨말처럼 끝내주게 살지 못하고 끝내버리고만 인생일 뿐이었다.

그저 가여워하면될 일이었다.

그렇게 끝내 버리고만 인생이더라도 세상의 끝과 끝에서는 어떤 비난도 없이 그저 목도하면 되었었다.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사람들을 밀어버릴 권리가 나에게는 애당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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