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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온트 Jan 21. 2021

우리를 기억하나요(3)

그로부터 어느새 한 계절이 흘러 겨울이 되었다. 올해는 유독 눈이 오지 않았다. 승연이 사는 해사시는 원래 눈이 많이 오는 동네였다. 한 번은 눈이 밤사이 너무 많이 내린 나머지 버스로만 꼬박 20분이 넘게 걸리는 등굣길을 1시간이 넘게 걸려 걸어가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날은 아무도 지각했다며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그냥 와준 것만으로도 수고했다는 듯이 눈인사를 건넸고, 여전히 교실에는 군데군데 빈자리가 있었다. 친구들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그 자리를 다 채웠다.


승연은 잠시 5층의 문에 대해 잊고 살았다. 개인사가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엄마가 출근길에 어딘가에서 흘러넘쳐 밤새 얼어버리고 만 물웅덩이를 밟고 미끄러졌다. 엄마는 나이 먹고 엉덩방아를 아주 제대로 찍었다며 부끄러워하면서도 즐거워했다. 승연은 엄마의 그런 긍정하는 마음이 좋았다. 엄마는 그 길로 회사에 병가를 내고 병원에 입원했고, 엉덩이에 엉덩이만 한 밴드 같은 걸 붙이고 누워있다. 승연은 겨울이 되고 매일 그 병원으로 하교했다. 승연은 말없이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하다가도 엄마가 화장실을 가야 하거나 산책을 하고 싶다 하면 군말 없이 한쪽 팔을 내어줬다. 그리곤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늘 그랬듯이 저녁을 먹으며 가십거리를 반찬으로 삼았다. 회사 동료들이 들려준다는 새로운 뉴스들은 어쩜 그렇게 마르지 않고 늘 흐르는지. 승연은 궁금했다. 


“승연아, 너 내일 올 때는 집에 있는 베개 좀 가져와.”

“베개? 베개는 왜.”

“병원 베개 너무 불편해. 각도가 안 맞아서 목이 뻐근해 죽겠어. 엉덩이 아픈데 거기다가 목까지 아플 순 없잖아. 엄마 쓰는 베개 뭔 줄 알지?”

“응, 알아. 근데 그럼 좀 늦게 올걸? 베개를 학교에 들고 갔다가 바로 올 순 없잖아.”

“오케이.”


승연은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해가 져 어둑해진 길은 무척 추웠다. 승연은 겨울에도 해가 긴 나라에 살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졌다. 빛이 있으니까 추위가 덜하고 그러니까 쓸쓸함도 덜할지 승연은 언젠가 직접 가서 백야 현상이라는 걸 경험해보리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도착한 집은 바깥처럼 추웠다. 까먹지 않게 엄마 베개부터 현관 앞에 챙겨두고 승연은 보일러를 돌렸다. 엄마가 함께 있을 때는 못 느꼈던 조용함이 매일 밤 승연을 찾아왔다. 오래된 아파트에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들이 살지 않았고, 밤늦게까지 에너지를 분출하는 이는 더더욱이 없었다. 가끔 조용함이 가져오는 무게는 그 어떤 것보다 무겁다고. 승연은 생각했다.


똑.

똑.

똑.


침대 머리맡 조명을 하나 켜두고 책을 읽던 승연은 어디선가 물 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고개를 들었다. 책이나 읽다가 눈꺼풀이 무거워지면 자려던 참이었는데. 귀찮은 일이 생겼다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 싱크대와 화장실을 확인해 봤지만 범인은 집 밖에 있는 것 같았다. 매사에 둥그런 승연이지만 한 가지 예민한 게 있다면 바로 잠자리였다. 승연은 유독 빛없는 어둠과 무음 상태에서 잠드는 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병원 보호자 침대에서 자지 않고 굳이 집으로 자러 오는 것이었다. 승연의 이런 버릇을 보고 엄마는 ‘내가 너 뱃속에 데리고 있을 때 태교를 많이 안 해서 그런가 봐. 난 태교 음악들이 영 별로였거든.’이라 말하기도 했다.


물 새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 자신이 없었던 승연은 현관을 열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예민한 잠귀로 판단한 결과 503호가 범인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벌써 11시가 넘은 시각이라서 승연은 초인종을 누르고 어떻게 공손하게 얘기해야 할지 고민했다. ‘504호 은주네였으면 편하게 이야기했을 텐데, 왜 하필 503호람.’


그리고 승연은 한 계절 만에 다시 그 문을 만났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물은 바로 그 문에서 새고 있었다. 유난히 차갑고 파래 보이는 물방울을 승연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끼익- 승연은 온몸에 찌릿하게 흐르는 긴장을 안고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쳤다. 참박-. 발을 내디뎌 보니 물이 복도에 꽤나 고여있었다. 복도의 시멘트 냄새와 물 냄새가 섞여 비 오는 날 거리에서 나는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철컥 승연의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어? 학생. 또 왔네?”

지난번 만났던 510호 아주머니가 마른 대걸레로 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510호와 512호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승연은 이 이상한 장소에 아는 얼굴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아, 안녕하세요. 네. 물소리가 나서..”

“어머, 그게 거기까지 들렸어? 세상에 512호 할아버지가 수도꼭지를 제대로 잠그지도 않으시고 잠이 드신 거 있지. 나도 자려다가 나와봤더니 이렇게 물난리야. 저 양반은 그렇게 물에서만 살더니만 사고도 물로 치네. 그나저나, 학생 이름 물어봐도 될까? 저번에 그렇게 이야기를 길게 했는데 내가 이름을 모르더라고.”

“아 네, 차승연입니다.”

“승연이. 이름 예쁘네. 혹시 괜찮으면 좀 도와줄 수 있어? 지금 다른 방 사람들은 다 잠들었는지 나와보질 않네.”

“네 그럼요. 저 뭐 하면 될까요?”


승연은 그렇게 512호의 방바닥 닦기 임무를 맡았다. 쭈뼛쭈뼛 512호 현관 앞에 서니, 침대에 앉아있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실례하겠습니다.”

“누구…”

“아 할아버지. 이 친구는 승연이. 종종 올 것 같으니 얼굴 익혀두세요. 제가 할아버지 방 닦아달라고 부탁했어요. 괜찮으시죠?”

“예, 미안합니다.”

512호 노인은 대뜸 사과부터 했다.  


승연은 510호 여자가 건네준 마른 걸레로 방을 닦기 시작했다. 512호 노인은 그런 승연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계속 미안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승연이라고 했나요? 저는 김덕만입니다.” 대뜸 할아버지가 말을 건넸다. 승연이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물이라는 게 왜 이렇게 나를 감싸고 안 놓아주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승연 씨 나이 정도 되었을 때부터인 것 같아요. 물에 나가는 게 내 일이었거든. 여기서 차로 1시간 정도 가면 있는 작은 바닷가 동네가 내 고향이에요. 거기서 살다 보니 그냥 당연하게 배를 타게 됐지. 처음엔 멀미가 너무 나고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 했는데, 이게 물고기를 잡은 날의 재미를 알게 되니까 계속하고 싶더라고요. 하다 보니까 친구도 늘고, 같이 잡으러도 나가고, 돌아와서는 같이 한 잔씩 하고. 나는 그렇게 계속 살 줄 알았어요.”


처음 본 자신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할아버지의 낮고 깊은 목소리에 승연은 귀를 기울였다. 어느새 510호 여자도 복도 닦기를 멈추고 현관에 기대어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었다.


“어느 날은 내가 친구 놈이랑 배를 같이 타게 됐어요. 그날이 대목이었거든. 그 앞바다에 차가운 바닷물이랑 따뜻한 바닷물이 만나는 때가 일 년에 몇 번 있는데 그날은 고기가 더 많이 거기를 왔다 갔다 해요. 그래서 같이 나갔지. 분명히 날씨가 좋았어. 날씨가 좋았는데.”

할아버지는 잠시 표정을 찡그린 채 말을 멈췄다.


“그 포인트에 나가니까 갑자기 하늘이 어둑어둑 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 놈이랑 그냥 적당히 하다 돌아가자고 그랬지. 나는 뱃머리 쪽에서 그물을 널고, 친구 놈은 꼬리 쪽에서 그물을 널고 있었어요. 근데 내가 그날 하나 잘못한 게 있었어. 우리가 배에서 안 떨어지려고 허리춤에 배랑 연결해 놓은 밧줄을 차고 일을 하는데, 그날따라 그게 너무 귀찮은 거예요. 날씨가 좋았으니까, 그런 날은 그거 필요도 없거든. 그래서 하지 말자고 했지요. 무겁다고. 내가 그걸 하지 말자고 했어. 그래놓고는 날씨가 안 좋아졌는데도 기억을 못 하고 출렁이는 배를 감당하고 있었어요. 바다는 그래. 사람이 절대 예측을 못하는 거거든. 예측을 하려고 해서도 안 돼요.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근데 한순간 파도가 출렁하더니 배가 기우뚱하는 거예요. 뱃머리에 있는 밧줄 묶는 기둥을 잡고 버텼지. 일단 내가 살고 친구를 챙겨야겠다 했어요. 다시 좀 잠잠해졌을 때 내가 소리쳤어. 너 이놈아 괜찮냐? 아무래도 돌아가야겠다 하고. 근데 아무 대답이 없는 거야. 내가 말을 건넸는데,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는 그 기분이. 몸이 땅으로 꺼지는 것 같더라고. 지구에 사람이 붙어있을 수 있는 게 중력이라는 거 때문이라고 뉴스에서 그러던데. 그 중력이라는 게 내 일평생 나눠 써야 되는 건데 그 순간 다 몰아쓰는 것 같았어요. 허겁지겁 뒤로 가보니 친구 놈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물을 다 건져 올리고 배를 몰아서 주변을 돌아봐도 이놈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날 어떻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도 안 나.”


승연은 닦아내던 512호 바닥의 물들이 잠깐 출렁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그런 얘기 뭐 하러 해요. 밤도 늦었구만.” 510호 여자는 괜히 할아버지를 나무랐다.


“그 친구 놈이 참 불쌍한 애였거든. 부모도 누군지 모르고 흘러 흘러 살다가 우리 동네에서 나랑 몇 마디 나눠보고는 일을 같이 시작한 놈이었어요. 나랑 말이 통하는 것 같았대. 나랑 몇 번 배 타고 나갔다 온 돈으로 살고. 근데 그런 놈을 내가 데리고 나가서 내가…”

“아휴, 증말. 할아버지! 승연이가 방바닥은 다 닦았고 제가 복도도 얼추 닦았어요. 이제 자자고. 앞으로 수도꼭지 관리 잘 하시고요. 아셨죠?”

“예, 알겠어요.”


510호 여자는 빠르게 뒷정리를 하고 승연을 데리고 나왔다. 

“오밤중에 수고했네. 저 할아버지가 그렇게 아직도 옛날 얘기만 생각하면서 사셔. 할아버지도 나처럼 미련이 남아서 여기 계시는 거거든. 전에 얘기했던 그 편지가 할아버지한테는 검은 세계로 가면 친구의 죽음 같은 건 다 잊고 다시 평온하게 살 수 있다고 했대. 근데 할아버지가 자기마저 그 친구를 잊어버리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거라서 싫다고 하셨다나. 그렇게 512호에 입주하라는 편지를 또 받으셨겠지. 참, 너는 여기 올 때마다 이렇게 사연들을 알아가서 어쩌니. 들어봤자 좋은 것도 아닌데. 늦었다. 가서 자야지.”

“아 괜찮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벌써 시간이…”

“그러니까. 새벽이야 벌써. 내일 피곤해서 어떡해. 나가는 방법 알지? 조심히 가고 다음에 또 와.”

510호 여자는 어느새 승연이 한결 편해진 듯 다음을 기약하고 있었다.

“네.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집으로 돌아온 승연은 어딘가 축축해진 감정을 이불 속으로 집어넣으며 애써 잠을 청했다. 똑똑똑 하는 물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대신에 말끝을 흐리던 할아버지의 음성이 자꾸만 귀에서 되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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