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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사랑과 초연

중독자 가족의 마음 : 동반의존


알코올중독자 가족은 냉정한 사랑을 해야 한다. 냉정한 사랑이란 단어에 그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이 냉정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회복의 초기에 냉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지금까지 중독자 가족으로서 했던 많은 행동들이 과연 냉정한 사랑에 부합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한다.      


"그가 아무리 술을 마셔도 내버려 두라는 말인가요? 그가 술 마시러 가도 잔소리를 하면 안 되나요?"

"중독자를 병원에 데리고 가지 말라는 건가요? 아파서 병이 심해지는데도 그냥 못 본 체 해야 하나요?"

"중독자가 차를 몰고 가다가 접촉사고를 냈어요. 제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나요? 어떻게 하는 것이 냉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죠?"     


이런 질문들마다 어떠한 정답이나 지침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중독자 가족이 가질 수 있는 큰 원리들은 몇 가지 있다. 우선은 중독자와 당신과의 사이에 경계가 명확해야 한다. 중독자의 감정에 영향을 받거나 그의 단주와 음주 여부로 인해 내가 기쁘거나 절망스럽거나 감정이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도록 한다. ‘그는 그이고 나는 나’이다. 그가 마시든 마시지 않든 나는 행복할 수 있다. 그가 마시는 것으로 내 기쁨과 평온함이 깨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가 설령 단주를 하고 취업도 해서 돈을 많이 벌더라도 그것은 그의 행운일 뿐이다. 가족은 가족의 기쁨을 찾아야 한다. 


경계란 세포와 세포 사이의 세포막과 같다. 중독자도 하나의 세포이고 당신도 하나의 세포이다. 둘은 엄연히 다른 세포이다. 가족이라는 인연으로 이어져 있기는 하지만 존재로서는 별개인 것이다.     

 

이렇게 경계를 세울 때 가족의 사랑은 좀 더 냉정해질 수 있다. 그와 사랑을 주고받지만 그는 나와는 독립된 별도의 개체이다. 그가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고 그의 몫이다. 실수할 권리가 중독자에게도 있다. 그가 망가질까 봐 두려워 그를 간섭하고 조종한다면 그건 그와 나와의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다치고 아프더라도 그건 상대방의 고통이다. 애석함을 표할 수는 있겠지만 대신 아파줄 필요는 없다. 그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낄 필요도 없다. 공감하되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럼 이런 냉정한 사랑은 냉담함과는 어떻게 다를까. 중독자에게 일절 도움의 손길을 베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중독자 가족이 가져야 할 것은 냉정함이 아니라 냉정한 사랑이다. 차가운 사랑이라고도 한다. 차갑지만 엄연히 사랑의 감정이다. 가족에게는 중독자를 향한 사랑의 감정이 존재한다. 이것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 중독자를 불쌍히 여기고 중독자를 이해하는 마음은 냉정한 사랑에 해당한다. 중독자 가족은 병적인 연합으로부터는 벗어나 독립된 개체로 살지만 여전히 중독자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의 삶을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기고 회복을 진심으로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마음에 몰입되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중독자인 당신을 사랑하지만, 함께 불타는 구덩이로 들어가지는 않겠다는 것이 냉정한 사랑이다.      


냉정한 사랑과 함께 초연의 마음을 가지라고도 한다. 초연이란 앞서 설명한 한 발 떨어져 객관적으로 보는 마음과 비슷한다. 경계를 가지고 그는 그, 나는 나로 보는 마음이기도 하다. 중독자의 반응이나 행동에 대해 함께 영향을 받지 않고 나의 감정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가 분노한다고 나도 성을 낼 필요가 없다. 그는 화내지만 나는 평온할 수 있다. 초연한 마음을 가질 때 그런 일이 가능하다. 중독자가 아무리 악담을 퍼붓고 날뛰어도 내 마음에는 같이 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마주칠 손뼉이 없으니 내 마음과 집안이 고요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초연은 중독자의 할 일을 대신해주지 않는 것, 중독자의 실수나 비행을 감싸주지 않는 것, 중독자를 조종하거나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 것, 중독자의 회복을 위해 자신이 이용되거나 악용되는 것을 막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결국 초연은 중독자의 삶은 그의 것임을 명확히 경계 짓고 나도 그 경계를 넘어가지 않고 그도 나의 경계를 넘어오지 않도록 하는 삶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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