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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살자

중독자 가족이 회복에 이르는 길

중독자가족이 회복에 이르려면 ‘나부터 살자’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알코올중독자가 질병이듯이 중독자 가족 역시 질병이 있음을 떠올려보자. 중독자 가족의 질병은 ‘동반의존’이 주요 증상이다. 중독자와 감정이 함께 연결되어 있고 그의 희로애락에 따라서 반응한다. 그가 휘두르는 삶에 정신없이 함께 딸려 들어간다. 사고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의 폭주하는 삶의 조수석에 손잡이를 붙잡고 새파랗게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며 함께 앉아있는 것이 동반의존자의 삶이다.

중독자와 나를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 동반의존 회복의 첫걸음이다. 그의 불행은 그의 것이고 그의 삶 역시 그의 것이다. 중독자가 초래한 불행이 경계를 넘어 내 삶에 쓰나미처럼 밀려들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 중독자가 저지른 일은 스스로 해결하도록 두자. 당신이 대신 수습하거나 뒤처리를 해 줄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당신의 삶을 힘들고 지치게 만든다. 중독자에게도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 중독자를 위해서 돕는답시고 한 일들이 오히려 중독자를 더 의존하게 하고 회복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헛된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 우리는 사실을 정확히 보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중독자 가족은 중독자와 나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짓고 나를 보살펴야 한다. 내가 돌봐야 할 대상은 중독자가 아니라 ‘나’인 것이다. 지금껏 중독자 가족은 중독자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을 것이다. 중독자를 낫게 하고자 애를 썼을 것이고 중독을 고쳐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의 단주를 위해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보았을 것이다. 또한 물심양면으로 그를 돕고 뒷바라지를 했을 것이다. 건강이 나빠져 가는 중독자의 치료를 위해 애를 쓰기도 했고 음주로 인한 사건사고의 뒤처리를 돕기도 했을 것이다. 집집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중독자 가족이 중독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은 공통적인 사실이다. 이렇게 중독자 가족은 중독자를 돕고 있다. 그런데 정작 중독자 가족은 누구에게 도움을 얻고 있는가? 중독자의 배우자는, 부모는, 자녀는 누가 돌보고 있는가? 중독자 가족은 도움은 받지 못한 채 남에게 도움만 제공하고 있다. 이런 불균형은 중독자 가족을 지치고 소진되게 만든다. 누구든지 에너지를 퍼서 쓰기만 하면 고갈되기 마련이다. 오랜 세월 남을 위해 내 에너지를 퍼서 쓴다면 결국 바닥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중독자 가족은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 나를 돌보는 것이 1순위이다. 내가 있어야 상대방도 있는 것이다. 내가 회복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세상에서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나를 위로해 줄까? 부모나 믿을만한 친구가 있는가? 그런 경우 도움이 되지만 더 기본적으로는 나 스스로 내 마음을 보살펴야 한다. 이기적인 중독자가 나를 돌봐줄 것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당신이 중독자 가족이라면 스스로 나를 챙겨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 스무 살이 넘어 성인이 되었다면 이제는 나는 나를 돌볼 힘이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을 보살피는 것이 나의 중요한 일이다. 그동안 중독자에게 정신이 팔려 힘든지도 모르고 고된지도 몰랐던 내 마음을 돌아보자. 내 몸이 얼마나 아프고 지쳐있는지 혹은 이미 병이 생겨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중독자를 살린답시고 당신의 몸과 마음이 병들고 있을 수 있다. 내 몸이 아픈지, 내 마음이 힘든지 수시로 살펴보고 인정하고 위로를 해 주어야 한다. 그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어야 한다. 그럴 때 나부터 살아날 수 있다.

내가 살아나고 힘이 생겨야 다른 사람에게도 힘이 될 수 있다. 내가 살아야 남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동반의존 상태에서는 중독자와 병적으로 연합되어서 중독자에게 착취를 당하게 되고 결국 내가 먼저 죽고 중독자 역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중독자와의 병적인 연합을 과감히 끊고 내가 스스로 나를 돌보아서 나부터 살려야 한다. 우울증이 심하면 치료를 받고 내 몸을 위한 건강한 음식을 먹고 건강에 좋은 것들을 나를 위해 챙겨야 한다. 나를 위해 돈을 쓰고 여행도 가고 하고 싶은 일도 포기하지 말고 해야 한다. 중독자 때문에 희생할 필요가 없다. 내 삶의 목표는 중독자 가족인 누구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나로 사는 것이다. 중독자가 이러하든 저러하든 그것이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회복의 길을 꾸준히 걸어서 동반의존의 성향을 탈피하고 힘 있게 스스로의 삶을 살아낼 수 있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도 살고 남도 살게 하는 삶이다. 내가 힘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러 들어갔다가 함께 익사하는 꼴이다. 내가 먼저 장비를 갖추고 실력이 있어야 제대로 구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회복이 중요하다. 어떤 가정은 중독자는 병에 대한 인식이 없어 치료를 거부하지만 가족이 먼저 12단계를 밟고 회복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도 상당히 효과적이다. 우선 가족이 가진 여러 가지 역기능적 반응이 줄어들면 중독자와의 연결고리가 힘을 잃는다. 가족이 흔들리지 않는 벽처럼 견고히 서게 되면 이것이 중심추 역할을 한다. 병적인 동반의존은 줄어들고 중독자 역시 착취적인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아진다. 중독자가 어떠한 삶을 살든 그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위해서 회복단계를 밟는 것이 중요하다. 내 삶을 스스로 챙기고 돌보는 것은 누구나 해야 하는 삶의 기본적인 원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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