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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에 살자

중독자 가족이 회복에 이르는 길

중독자 가족이 살아가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 말이 ‘하루하루에 살자’는 것이다. 이 말은 단순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다. 이 구호를 명심할 때 중독자 가족은 고통에서 벗어나 피할 길을 찾게 된다. 하루하루에 살자는 것은 알코올중독 가족인 알아넌 멤버들을 회복으로 이끄는 가장 대표적인 슬로건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원칙을 실천함으로써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 아름다운 원칙은 정말 강력한 힘이 있다.


‘하루하루에 살자’는 것은 하루 단위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의 걱정을 당겨오지도 않고 오늘 하루에 충실하게 살자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과 원한에 발목을 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나간 일을 잊지 못해 마음에 뿌리 깊은 원한으로 담아두고 있다. 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화가 나고 해결하지 못한 분노가 마음을 가득 채운다. 어린 시절 차별과 무시를 당한 기억이 있으면 어른이 된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되면 몹시 화가 난다.


가게 점원이 나의 요청에 조금이라도 퉁명스럽게 말하면 나를 무시하나 싶어서 자존심이 짓밟힌 것처럼 격렬한 감정에 휩싸인다. 10만큼의 불친절에 10만큼의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30 혹은 50만큼 화를 내며 반응한다. 이렇게 되면 이것은 더 이상 상대방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속의 경험과 기억이 분노의 원인인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적인 태도 때문에 반항심이 많았던 사람은 회사의 상급자를 볼 때마다 비슷한 저항감을 느낀다. 상사가 조금만 권위적으로 지시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과거에 아버지에게 느꼈던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전이’라고 한다. 어떠한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감정이 다른 대상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전이를 통해 과거의 고통이 얼마나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고통스러웠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중독자 가족은 예전에 가졌던 원한이 다시 떠올라 부들부들 떤다. 과거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로 오늘을 망쳐버리는 것이 중독자 가족의 행동패턴일 수 있다.


과거의 고통을 잊어버리라는 것은 아니다. 고통스러운 일은 분명히 있었고 그때 내가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간 일이다. 이미 지나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불행이 이미 지나갔음에도 나는 여전히 비슷한 불행이 닥치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불행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의 고통은 이미 지나간 일임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 이제는 안전하고 이제는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라고 계속 되뇌어야 한다.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괜찮은 날이다. 지금은 평온한 날임을 인식해야 한다. 어제 힘들었다고 오늘까지 계속 심장이 두근거릴 필요는 없다. 오늘 아무 일도 없다면 그 오늘에 감사해야 한다.


이렇게 과거에 발목을 잡히지 않게 되면 그다음은 미래의 걱정을 당겨오지 말아야 한다. 중독자 가족의 삶은 평탄하지 못하고 각종 사건사고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돌발상황에 놀라고 당황하며 겨우겨우 처리해 내느라 급급했다. 항상 태풍 같은 위기가 휘몰아치기 일쑤였다. 힘들게 일은 수습했을지 몰라도 놀라고 서글펐던 감정은 그대로 남아있다. 외롭고 절망스럽고 울고 싶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지 중독자 가족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남몰래 숨죽여 눈물 흘린 순간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중독자 가족의 마음에는 뿌리 깊은 불안과 초조함이 있다. 두려운 사건은 트라우마가 되어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중독자 가족은 작은 일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또다시 안 좋은 상황이 펼쳐질까 두려워한다. 이것은 오랜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반복학습이 된 결과이다. 살아온 경험이 고난의 연속이었기에 그런 패턴으로 살아가게 되지만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이 습관적인 패턴을 벗어나야 한다.


살아온 방식과 다르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하루하루에 살자’는 것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하루 안에 다 일어나지는 않는다. 부도가 나서 파산을 하고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중독자가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중독자를 버렸다고 친척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돌보지 못한 자녀가 가출을 하는 일이 하루동안 다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 아무리 걱정스러운 일이라도 그것이 오늘 모두 닥쳐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오늘 하루는 별다른 일이 없을 것이다. 힘든 일이 있다 하더라도 하루치의 고통이다. 오늘 하루는 하루치의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다가올 걱정은 그때 하면 된다. 오늘부터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나간 일도 이미 지나갔으니 과거로 떠내려 보내면 된다. 오늘은 새로운 하루이다. 오늘의 해가 뜨고 오늘 잠이 들기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이 오늘 하루인 것이다. 오늘 하루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을 하는 것이 회복의 삶이다. 중독자나 불행에 대해 미리 염려하고 생각하지 않고 오늘 하루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 그렇게 살아갈 때 중독자 가족도 그나마 평온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생각보다 오늘 하루는 고통스럽지 않고 꽤 살만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원칙을 잘 표현한 성경구절이 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장 34절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는 말은 삶의 진리이다. 오늘의 고통을 내일까지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 오늘 괴로움은 오늘 괴로워하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라고 믿으면 된다. 아무리 고통스러웠던 하루일지라도 그날이 지나면 해가 지고 밤이 깊으며 우리는 잠에 들게 된다. 잠이 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잠이 든다는 것은 무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고 나의 모든 노력과 통제를 멈추는 것이다. 그저 모든 것을 신께 맡기고 잠이 드는 것이다. 잠이 들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이렇게 잠을 자고 일어남으로써 우리는 하루 단위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또 다음날 하루를 맞이하게 된다. 이렇게 하루 단위로 살 수 있게 설계한 것은 위대하신 힘의 놀라운 설계이다. 우리는 거창하게 많은 날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만 살면 되는 것이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내일은 다가올 내일에 살면 되는 것이니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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