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여유 있게 하자

중독자 가족이 회복에 이르는 길

중독자 가족이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중독자의 중독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중독자 가족이 회복의 과정을 밟기 시작한다면, 중독으로 인해 벌어지는 상황에 대처하면서 살아낼 수 있다. 회복을 알기 전에는 다가오는 위기를 해결하기에 급급했고 늘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이었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마음의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다. 어떤 사건사고가 일어나도 자신의 삶이 무너지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믿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이 회복의 길을 먼저 걸어간 무수한 선배들이 그러한 삶이 가능함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중독자 가족의 회복에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이 있다. 먼저 ‘여유 있게 하자’는 것이다. 앞서 알코올중독자 가족의 특징 중 분주함이 있다고 설명했다. 알코올중독자 가족은 초조하고 조급하다. 발을 동동 구르고 애를 쓰기 일쑤이다. 항상 생각이 앞서 나가고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벌써 저 앞에 가 있다. 닥쳐올 일들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어떻게 해결할지를 생각하고 대안을 찾느라 머릿속은 한치의 여유가 없다. 미래에 초점이 가 있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는지 현실감각이 없다. 오지도 않을 미래에 넋이 나가있는 사람과 같다.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가는 사람이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다고 버스 안에서 뛰어본들 도착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까? 버스에 탄 이상 달리는 것은 버스이지 내가 아니다. 하지만 중독자 가족은 마치 달리는 버스 안에서 더 빨리 가겠다고 뛰고 있는 꼴과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어이없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중독자 가족의 모습이다.      


그래서 중독자 가족은 ‘멈추어야 한다’. ‘내가 조급하구나, 초조하는구나’를 알아차리는 순간, 즉시 멈추어야 한다. 그 어떤 말과 행동도 일단 스톱한다. 무조건적으로 반응했던 나의 말과 행동이 습관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즉각적인 반응을 모두 중지하고 ‘생각해야 한다’. 나의 반응이 왜 나타나는 것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왜 중독자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굳센 약속을 하고도 다시 마신 중독자에게 배신감이 들어 치를 떨고 있다면 중독자의 잘못이 아니라 중독자의 말을 믿었던 내 믿음이 착오였음을 깨달아야 한다. 중독자를 믿는 일은 어리석은 선택임을 알아야 맹목적인 믿음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내가 믿었던 그 믿음의 피해를 내가 입고 있는 것이다. 빨리 알아차리고 헛된 믿음을 버리는 것이 분노로부터 내 마음을 보호하는 길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마다 멈추고 감정의 원인을 살펴보자. 많은 경우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꽤 많은 감정을 알아차리고 내려놓을 수 있다. 중독자가 달라지지 않아도 나는 상당히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한 가지 노력할 것은 ‘여유 있게 하자’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 멈추고 돌아보면 ‘반응’이 아니라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급함 또한 나의 불안을 행동으로 잠재우려는 방어기제였음을 안다면 이제는 천천히 그 불안을 마주하면서 생각을 해보려고 하자. 불안한 현재를 인정하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자. 현재의 상황을 빨리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현재에 조금 더 머물다 보면 나도 모르는 길이 열리게 될지도 모른다. 


여유가 없는 이유는 첫째, 내 힘으로 하려 하기 때문이고 둘째, 빨리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회복은 절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함을 인정하는데서 출발한다. 삶의 위기와 문제를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애를 쓰고 용을 쓰게 된다. 나는 힘이 없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나보다 더 크신 힘을 통해서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인정하면 내 힘으로 애쓰는 것을 멈출 수 있다. 두 번째 빨리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고통 속에 머무르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얼른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힘든 고통을 마주하는 것이 어려워서 최대한 회피하고 싶기 때문에 얼른 위기를 해결해서 이를 벗어나려 한다. 


주사를 맞아야 하는 어린아이는 다가올 고통을 예감하고 울어댄다. 아플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소매를 걷고 알코올 솜으로 닦는 동안에도 큰 소리로 울어댄다. 물론 주사를 맞는 것이 아프고 괴로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참을만하기도 하다. 아프긴 하지만 죽을 정도의 고통은 아니다. 감당할 만한 고통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가 만나는 삶의 위기가 힘들고 괴롭기는 하지만 닥치고 겪으면 또 지나간다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 두려워하고 미리 울어젖힌다고 주삿바늘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 그렇게 초조하지만은 않아도 될 일이다.  

    

힘든 순간에 "에라 모르겠다. 어찌 되겠지."라는 마음이 필요하다. 내 힘으로는 안되니 차라리 손을 놓고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있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중독자 가족은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더 상황이 꼬인다. 중독자 가족은 가만히 있는 것이 힘이 든다. 늘 분주하게 무언가를 한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지, 상황이 더 나아질지 계속 생각하고 노력한다. 이 노력이 상황을 더 어렵게 하고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한다는 것을 정작 중독자 가족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중독의 문제에도 도움이 된다. 중독자가 단주를 하든 마시든 어떤 개입도 하지 않고 두는 편이 그의 단주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이것저것 다 해보는 삶보다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가족이 노력을 해서 나아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고 오히려 그냥 내버려 두었을 때 중독자 스스로 바닥을 치고 회복의 필요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중독자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여유’이다. 시간의 흐름에 상황을 맡겨야 한다. 내 뜻대로 내 시간표대로 인생은 흘러가지 않는다. 이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이 세상을 주관하는 절대자인 신이 있고 그 신의 타이밍에는 실수가 없을 것이라고 믿어보자. 그리고 내 삶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자. 신이 내 삶을 적절한 때에 따라 이루어갈 것이라는 점을 철저하게 믿을수록 더 확실히 내려놓을 수 있다. 믿지 못하고 내가 통제하려고 하면 초조해진다. 신께 내 삶을 맡길 때 나의 생각과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나 혼자 애쓰던 삶에서 든든한 신을 의지하고 함께 따라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훨씬 힘이 덜 들고 편안한 삶이다.      


중독은 매우 긴 과정이다. 급속히 나빠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긴 세월을 두고 서서히 진행된다. 마찬가지로 회복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조급하게 재촉해서 도움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회복은 여유 있게 느긋한 마음으로 해나가야 한다. 중독자의 가족의 삶 또한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여유 있게 할 때 평온한 마음에 다가갈 수 있다. 내 마음이 빈틈없이 분주하게 돌아갈 때 즉시 알아차리고 ‘여유 있게 하자’는 구호를 떠올려 보자. 급히 서두른다고 잘 되지 않는다. 오히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할 때 마음이 편안하고 뜻하지 않게 일이 더 술술 풀려나간다. 그것이 인생의 원칙이다. 


이전 26화 냉정한 사랑과 초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