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가족의 마음 : 동반의존
중독자 가족의 마음속에는 대부분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언제 술 취한 중독자가 현관문을 벌컥 열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지 혹은 그릇을 던질지 알지 못한다. 수시로 물건이 깨지고 갑자기 고함을 치고 가끔씩 법률적인 사고까지 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 중독자와 살면서 불안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우선 사람과 존재에 대한 불안이 있다. 중독자인 아이가 저러다 죽는 것은 아닐지, 중독자인 배우자가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지, 그와 가정을 계속 꾸려나갈 수 있을지, 중독자인 부모가 언제 나를 학대할지 그 어느 누구도 중독자를 믿고 안심할 수 없다. 존재 자체로서 중독자는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명확한 미래 같은 것은 중독자에게 없다. 약속도 신뢰도 없다. 그런 중독자를 보는 주변사람들은 중독자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 되고 중독자에 대한 불안을 가지게 된다. 이번에는 끊는다는 약속을 했지만 과연 그것을 지킬지, 달라지겠다는 굳은 맹세를 하고 병원에 입원했지만 며칠이나 유지될지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안이 가득하다.
알코올중독자 가족은 이러한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강박적으로 행동한다. 실수를 할까 봐 혹은 어떤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해하고 남들보다 준비를 철저히 한다. 항상 미리 준비하고 예상되는 문제까지 모두 상상하여 대비를 해 놓는다. 불행한 사고를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렇게 해야 그나마 안심이 된다. 그래서 항상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하게 살아간다. 저녁시간에 열심히 달려갔는데 약국문이 닫혀있는 경우는 중독자 가족에게는 참 낙심이 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고 피하려고 노력하며 애쓰게 된다.
돈에 집착하는 것도 불안에 대처하는 방어기제이다. 이러한 사람은 불안정한 것보다 확실한 것을 믿고 의지하고 싶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돈’이다. 돈은 우리를 확실히 좋은 집에 살게 해 주고 먹고 싶은 음식도 먹게 해 줄 수 있다. 돈이 있으면 어려움과 수치를 당할 확률이 줄어들고 어떤 문제가 생겨도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돈이 있으면 불편하거나 억울할 일이 줄어든다. 그래서 나를 보호해 줄 ‘돈’을 모으기 위해 애를 쓴다. 필사적으로 돈을 더 벌려고 하고 번 돈을 움켜쥐려고 한다. 경제적인 손해를 보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 돈은 내 생명과 같기 때문에 절대로 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지, 나를 보호해 줄지, 내가 평생을 함께 해야 할지 확신이 들지 않는 사람보다는 돈이 훨씬 더 믿을만하고 안전하다고 여겨서 돈에 의지하게 된다. 이것 역시 중독자 가족이 나를 지키고 보호하려고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대처방식이다.
알코올중독자 가족은 불안한 마음은 의심과 망상으로 나타난다. 가족은 계속 중독자를 의심하고 감시한다. 실제로 중독자는 거짓말을 잘하고 속이기 일쑤이다. 그러다 보니 가족은 중독자의 말을 믿지 못하고 계속 사실 확인을 한다. 누구와 통화했는지, 몇 시에 퇴근을 했는지, 가게에서는 얼마를 썼는지 추궁한다. 심지어 중독자의 뒷조사를 하고 핸드폰을 몰래 살펴보기도 한다. 지갑을 열어보고 가방을 뒤진다. 통화내역이나 문자내역 등을 보면서 수상한 점은 없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가족은 은밀한 수사관처럼 중독자를 감시하는데 집착한다. 중독자에게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보이면 즉시 상상의 나래를 편다. 누군가와 도모하여 좋지 않은 작당모의를 하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떨쳐지지 않다. 분명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거라는 이러한 망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정사실처럼 여겨진다. 그런 생각들로 본인조차 너무 힘들지만 이러한 의심을 떨쳐낼 수가 없다. 너무나 강력하게 중독자 가족의 머릿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독자 가족의 불안이 심해질 경우 정신과적인 진단이 내려지기도 한다. 범불안장애나 공황장애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고 숨을 쉬기 어렵고 심장 부근에서 통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손발에 땀이 나고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해 온다. 터널이나 사람이 많은 곳과 같은 특정한 장소에 가는 것이 힘이 들기도 한다.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중독자 가족의 불안증상은 치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중독자 가족은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어요." 극도의 심리적 고통을 호소한다. 중독자와 함께 살면서 같이 병들어 가는 중독자 가족의 모습은 알고보면 매우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