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가족의 마음 : 동반의존
알코올중독자 가족은 대체로 조급하다. 천천히 여유 있게 하지를 못한다. 빨리빨리 하고 싶어 하고 얼른 해치워버리고 싶어 한다. 중독자 가족의 일상은 바쁘다. 이것을 다 하면 그다음 저것을 해야 하고 해야 할 일들이 죽 나열되어 있다. 항상 쌓여 있는 할 일 목록에 중독자 가족의 어깨는 무겁고 온몸은 피곤하다. ‘여유’라는 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중독자 가족의 마음속에는 없다.
중독자 가족은 왜 이렇게 쫓기듯 살아가는 것일까? 중독이란 문제가 그만큼 크고 위압감 있게 그의 삶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크고 나는 연약하다. 나는 조그마한데 커다란 바위가 내 앞에 놓여있다고 치자. 나는 이 바위를 없애보려고 안간힘을 다 쓰게 된다. 이렇게 밀어도 보고 저렇게 굴려도 보고 도구를 사용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해 본다. 이것이 안되면 저 방법을 써보고 그것도 안 되면 또 이렇게 해 보고... 계속 궁리를 하고 어떻게 하면 저 바위를 치울까 하는 생각밖에 없다. 이렇게 커다란 문제에 봉착되면 사람은 그 문제를 해결하느라 다른 것을 바라보지 못한다. 하늘이 얼마나 맑고 높은지, 지나온 길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 길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모두 잊어버린다. 오로지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치우는데만 몰두한다.
중독자 가족의 삶도 비슷하다. 언제나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이것은 중독자의 빈자리가 커서이기도 하다. 중독자 가족은 중독자의 몫까지 1.5인분, 2인분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1인분의 삶을 살기도 벅찬데 남의 짐까지 함께 지고 가니 그 삶이 얼마나 분주할까. 중독자의 가족은 많은 일을 떠안고 감당하느라 벅찬 상태이다. 수년간, 수십 년간 그렇게 살다 보면 그런 바쁜 삶이 습관이 되고 삶의 패턴이 되어 굳어진다. 이제는 중독자가 설령 단주를 하더라도 중독자 가족은 계속 발을 동동 구르며 다람쥐처럼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한다. 한번 굳어진 삶의 습관이 좀처럼 바뀌지 않아서 그렇다. 이런 생활방식은 굳어져 습관이 된다. 오랜만에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순간에도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쟁반은 저기에 치우고 계산은 이렇게 하고 주차된 차는 이렇게 빼고 돌아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서 계란을 사고 등등 이다음에 해야 할 일에 계속 생각이 내달리고 있다. 중독자 가족의 생각은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고 계속 앞으로 돌진한다. 그러니 바쁘고 분주하기 짝이 없다. 중독자 가족의 모임에서도 빠르게 도서를 읽고 기도문을 하고 그다음 순서로 급하게 진행되는 경우들이 있다. 중독자 가족이 조급하고 분주함을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알코올중독자 가족이 분주한 것은 ‘일 중심’ 삶을 살기 때문인 까닭도 있다. 알코올중독자 가족은 ‘감정’을 느끼는 것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기쁨, 슬픔, 두려움, 외로움, 놀라움 등등 무수한 감정을 세밀하게 느끼지 않는다. 이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중독자 가족에게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던 경우가 많다. 그 무수한 괴로움의 순간들은 가족들을 지치고 힘들게 만든다. 너무나 힘든 일들이 연속이 되면 그 아픔을 잊고자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 감정을 느끼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감정은 딱 접어두고 이성적으로 일로만 보려고 한다. 중독자가 다쳐서 피를 흘린다고 해도 이성적으로 응급처치를 하고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는 업무처리처럼 해결한다. 놀랍고 무서운 감정이나 중독자가 밉고 힘든 감정은 느낄 새가 없다. 그런 감정이 올라오면 자신도 모르게 억누르고 억압한다. 심지어 중독자가 사망한 경우도 그렇다. 장례를 치르고 손님을 맞고 비용을 계산하고 이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동안 중독자의 삶에 대한 애통한 마음, 내 삶에 대한 위로와 연민 등 수많은 감정들은 마음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억눌려 있다. 알코올중독자 가족은 죽음이라는 큰 사건 앞에서도 한번 실컷 울어보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만큼 감정을 만나는 일이 힘들어서 그렇다.
알코올중독자 가족의 내면은 혼란스럽다. 정리되어 있지 않고 뒤죽박죽이다. 이 일을 하다가 갑자기 저것이 떠오르고 어떤 때는 중요한 약속을 까맣게 잊기도 한다. 이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여러 차례 반복된다. 한마디로 정신이 없다.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사람 같다. 중독자 가족은 중독자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온전하고 평온한 마음과 생각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머릿속이 물건이 가득한 서랍처럼 온통 뒤죽박죽이다. 이것은 중독자와도 유사하다. 중독자 역시 그렇다. 중독의 특징이 질서 정연하지 않은 혼란스러움이다. 중독자와 함께 하면서 이런 중독의 특징이 가족에게도 전염된다. 영향을 받아서 중독자 가족 역시 혼란스러운 상태가 된다. 차분하고 잘 정돈된 삶,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체계는 중독자나 중독자 가족 모두에게 어려운 과제이다. 중독인 상태에서는 이렇게 정리된 생각을 하기란 어렵고 회복을 하면서 점차 생각도, 방도, 차고도 정리되기 시작한다. 중독자와 가족의 삶에서 물리적 공간에 정리정돈이 되기 시작하는 것은 회복의 과정 중에 나타나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