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가족의 마음 : 동반의존
중독자는 정신상태가 정상적이지 않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독자는 본정신을 잃어버리고 미친 정신 상태이다. 그런데 중독자 가족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이제는 나도 제정신이 아닌 거 같아요. 저도 같이 미쳐가요."
"예전의 내 모습이 아니에요.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중독자와 함께 할수록 중독자의 가족도 미친 정신이 되어 간다. 동반의존이 주요 증상이고 여러 가지 의심과 망상까지 더해지면 결국 알코올중독자 가족도 성격이 변한다. 다정하고 희생적이고 순수하던 여러 좋은 성격의 측면들은 고집스럽고 불안, 초조하며 피해의식으로 변해간다. 중독자의 성격이 변하듯이 중독자 가족의 성격 또한 변해간다.
중독자의 가족이 가져야 하는 합리적인 신념은 "내가 중독을 초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원리이다. 중독자의 중독이 나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내가 그때 이걸 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중독이 조금 덜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는 있으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이렇게 했었더라도 그것 때문에 그의 중독이 생겨나지 않는다. 중독은 다른 사람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이 초래할 수도 없다.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생각해 보자. 속상해하는 아내에게 아들 편만 드는 고약한 시어머니가 말한다. "네가 잔소리를 하니 남편이 밖으로 도는 거지. 네가 좀 다정하게 대해 봐. 남편이 겉도는 건 여자 탓이야."라고 한다. 문제의 원인을 며느리에게 돌리는 사고방식이다. 이 생각이 사실일까? 정확하게는 어떠한 아내를 두고서라도 바람을 피울 사람은 피운다. 아무리 예쁘고 다정하고 현모양처인 아내가 있더라도 그 남자가 불륜의 유혹에 취약하다면, 도덕적 조절력이 없다면 그는 해서는 안될 모험을 선택하게 된다. 아무리 악처가 잔소리를 하고 구박을 한다 해도 바람을 피우지 않는 남자들도 있다. 저 시어머니의 논리라면 아내가 다정하지 않으면 모두 바람을 피워야 할 텐데 부부사이에 종종 다투고 소원하더라도 그렇다고 그런 커플이 모두 불륜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중독 또한 마찬가지이다. 중독자의 가족이 중독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부모가 이렇게 키웠든 저렇게 키웠든 그것이 어느 정도는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중독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질병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인위적으로 생기게 할 수도 없고 마찬가지로 없앨 수도 없다. 중독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영적인 세력과 그의 취약한 내면이 결합되어 생기는 질병과 같다고 이해해야 한다.
중독자의 가족이 가져야 하는 또 하나의 신념은 "내가 중독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중독을 초래하지도 않았듯이 중독을 없앨 수도 없다. 이것은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다. 단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것저것 얼마나 많이 해보았는가. 가족들의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못 마시게도 해보고 감시도 하고 저녁마다 멋진 식사와 좋아하는 반찬을 차려놓고 그를 회유하기도 한다. 치료를 위해서도 안 해본 것이 없다. 한의원, 정신건강의학과를 가고 중독관리통합센터 등에 연락해서 서비스를 받아보기도 한다. 비싼 상담료를 지불하고 가족상담이나 부부상담을 받기도 한다. 종교에 매달려 보고자 새벽기도를 하고 안수기도를 받기도 한다. 심지어는 무당이나 점집을 찾아가 굿을 하고 미신에 의지해 보기도 한다. 중독을 고칠 수 있다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고 어떤 대가도 지불한다. 중독이 없어지리라는, 고칠 수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이렇게 중독자 가족은 앞뒤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미친 정신에 해당한다. 가족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중독이 없어지지 않는다. 가족은 중독을 치료할 수 없다. 치료자에게 중독자를 데리고 갈 수는 있으나 그것이 치료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는 회복할 수도 있고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중독자 스스로 회복의 동아줄을 붙잡으면 회복이 시작되는 것이고 자신이 바닥을 치고 회복을 시작하지 않으면 주위의 그 어떤 노력과 수고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은 중독자의 문제이고 주변 사람이 만들어 줄 수 없다. 본인의 의지와 결단이 가장 중요하다. 이 마음은 주위 사람들이 결코 만들어줄 수 없다. 아무리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과외를 붙여주어도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한 글자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것과 같다. 현실적으로 극소수만 회복에 성공하고 대다수의 중독자는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독에 빠져 있다. 이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중독을 조절하려고 애쓰는 노력을 그만두어야 한다. 중독자를 바꾸어보려는, 그의 병을 고쳐보려는 노력은 동반의존이라는 병에 걸려 있는 중독자 가족의 증상이다. 이것을 인식해야 중독자 가족 또한 회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