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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바라지하면 안 되는 이유

중독자 가족의 마음

중독자에게 중독된 가족은 어떻게 할까? 중독자를 뒷바라지하게 된다. 중독자를 돌보고 보살핀다. 중독자가 미처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해주기도 하고 중독자가 일으킨 사건사고를 수습해주기도 한다. 처음에는 술병을 치워주거나 겉옷을 벗겨주는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그러다 회사에 대신 전화를 해주거나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주는 심부름을 하기도 한다. 중독자를 위해 대신 변명하고 사과하기도 하고 행패를 부린 중독자를 위해 조사를 받거나 그가 음주 운전한 사고를 처리해 주는 등 점점 뒷바라지의 규모가 커져 간다. 나중에는 잠적한 중독자를 찾기 위해 실종신고를 하게 되고 지구대에 출석하게 된다. 중독자 가족의 크고 작은 뒷바라지가 끊임이 없다.      


여기서 멈추고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중독자 가족이 하는 수많은 뒷바라지가 중독자에게 도움이 될까? 중독자의 회복과 단주에 도움이 될까 하는 점이다. 많은 알코올중독자와 가족의 누적된 경험을 통해 비추어보면 가족의 뒷바라지는 중독자의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족의 뒷바라지는 오히려 중독을 더 심하게 한다. 왜냐하면 아무 도움을 구할 수 없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자립해야 할 때 중독자의 회복이 시작되는데 뒷바라지는 중독자를 의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달콤한 도움을 거절할 중독자는 없다. 자신이 역할을 다하지 않아도, 사고를 쳐도 누군가 대신 감당하고 수습해 주는데 굳이 자신이 수고를 하지 않는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영악한 중독자의 습성이 본능적으로 이걸 안다. 나의 건강을 걱정하고 회복을 위해 도와주려는 가족의 동기를 중독자는 이용하고 착취한다. 이것은 중독자가 나빠서가 아니라 중독이라는 질병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독자 가족은 뒷바라지를 멈추어야 한다. ‘그를 위해서 돕는다’는 것이 착각임을 알아야 한다. 나의 뒷바라지는 중독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발을 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중독자의 회복에 도움이 되는 길이다. 아이를 키울 때를 생각해 보자. 어떤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국수를 먹이고 있다. 엄마는 아직 포크 사용이 서툰 아이가 국수를 흘릴까 봐 대신 떠먹여 준다. 식탁에 국수를 쏟지 않고 포크에 입이 찔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 엄마는 자신이 ‘아이를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엄마의 행동은 아이가 스스로 경험해 볼 기회를 뺏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계속 떠먹여 준다면 아이는 실패를 통해 배울 기회를 잃게 된다. 진짜 아이를 위하는 길은 엄마가 떠먹여 주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흘리고 쏟더라도 아이는 스스로 떠먹어봄으로써 조절력을 배우게 된다. ‘이 모든 게 다 너를 위해서야.’ 이것은 중독자 가족의 심각한 착각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아이가 진흙탕에 빠질걸 알면서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엄마의 심정이 얼마나 불안할까. 신발과 옷을 버리면 결국 빨랫감이 늘어나니 아이도 나도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물웅덩이를 향해 가는 아이를 말려야 한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뻔히 보이는 상황을 알면서도 내 말과 손을 멈추고 이 순간을 견딜 때 아이는 이렇게 하면 옷이 더러워지는구나, 웅덩이에 빠지는구나를 배울 수 있다. 한두 번의 실수를 통해 걸음을 조절할 수 있고 조심하고 피하게 된다. 아이는 평생 동안 길을 걸을 때 어떻게 길바닥을 주의해서 살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이것이 조절과 통제를 그만두고 뒷바라지를 멈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한 일은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중독과 성인아이 기질에서 성숙하게 되는 방법이다. 그래서 회복하는 중독자 가족은 뒷바라지를 멈추기를 실천하기 시작한다. 중독자가 벌인 일에 개입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지도록 한다. 집을 난장판을 만들었으면 그가 술이 깰 때까지 대신 치워주지 않는 편이 좋다. 중독자가 충동적으로 계약한 할부대금을 대신 해결해주지 말고 스스로 갚게 한다거나 하는 것도 필요하다. 회복의 원리는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감당하도록 둔다는 것이다. 이것은 알코올중독자뿐만 아니라 도박중독 등 다른 중독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도박중독자가 일으킨 금융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지 않는다. 부모가 안타까운 마음에 빚을 갚아주고 정리해 주면 도박중독자는 또다시 도박에 손을 댄다. 결국 모든 재산을 탕진하게 된다. 처음부터 돕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그리고 중독자 가족은 중독자에게 신경 쓰고 중독자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대신 내가 할 일에 집중한다. 나의 일, 나의 집안일, 나의 아이들을 보살펴야 한다. 중독자 때문에 소홀했던 내 삶과 내 감정을 살펴보고 돌보아야 한다. 중독자가 어떠한 삶을 살든 그와 나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중독이 내 삶의 경계를 넘어 들어오지 않도록 담장을 견고히 쌓고 흔들리지 않게 내 마음의 평온을 유지해야 한다. ‘그는 그, 나는 나인 것이다. 그는 그가 돌보게 하고 나는 나를 돌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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