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가족의 마음 : 동반의존
알코올중독자가 술에 중독된다면 알코올중독의 가족은 중독자에게 중독된다.
무슨 말일까? 알코올중독자 가족에게는 중독자가 술병이라는 의미이다. 마시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술병을 집어들 듯이 중독자 가족은 오로지 중독자만 신경 쓰고 중독자에게 계속 집착한다. 중독자가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 제대로 걸어 다니는지, 퇴근하고 어디쯤에 있는지, 무슨 돈으로 술을 마시는지, 밥은 언제 무엇으로 먹는지 온통 중독자만 신경을 쓴다. 중독자가 오늘은 만취한 상태인지 아니면 대화가 조금 가능한 상태인지 내일 출근은 할 수 있을지 시시 때때로 중독자의 표정과 컨디션을 체크한다. 중독자가 들어오는 소리, 나가는 소리, 걸어 다니는 소리 등 각종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다. 출근해서 일을 하는 와중에도 문득문득 중독자에 대한 걱정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중독자 머릿속에는 온통 술 생각뿐이듯이 중독자 가족의 머릿속은 온통 중독자 생각뿐이다.
만약 중독자 가족이 중독자를 혼자 남겨두고 여행을 간다고 상상해 보자. 당신이 중독자 가족이라면 집에서 진탕 마시고 있을지 모르는 중독자는 까맣게 잊고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사고 그 순간을 즐길 수 있을까? 잠시 잠시 멋진 풍경에 행복해하다가도 문득 중독자가 머릿속을 스칠 것이다. 또다시 마시고 있는 건 아닌지, 무슨 사고를 치는 건 아닌지 집안은 어떤 상황일지 신경을 쓸 것이다. 해변가의 멋진 식당에서 노을을 보며 맛있는 저녁접시를 앞에 두고도 당신의 마음은 온통 중독자에게로 향해 있다. 지금과 현재는 없고 오로지 중독자만 관심이 초점이 되는 상태인 것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가족들은 혼자 여행이라는 것이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중독자와 주거를 함께 하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이런 물리적인 분리조차 어렵다. 중독자 가족은 철저하게 중독자와 심리적으로 묶여 있다.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과 같다.
이것이 중독자 가족의 동반의존 현상이다. 중독자가 병에 걸린 것처럼 중독자 가족도 동반의존이라는 병에 걸린다. 이 지독한 중독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조차 영향을 미치고 전염이 된다. 억울할 수도 있지만 가족은 나 자신도 이 동반의존 상태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독자가 자신이 중독자임을 인정해야 치료가 시작되듯이 가족 또한 본인이 동반의존임을 인정해야 이 동반의존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다.
정신적인 질병은 자기 인식이 첫 번째이다. 자신의 증상을 인정하고 병식이 있어야 모든 치료가 시작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가족은 중독자만 치료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중독자가 술만 끊으면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자신 또한 질병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황스러운 이야기이다. 많은 가족들은 자신도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처음에는 인정하지 못하고 거부하다가 나중에는 눈물을 흘리며 속상해한다. 자신이 치료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독자도 마찬가지이다. 중독자나 가족이나 모두 원치 않는 질병에 걸린 것이다. 이 사실이 마음 아프지만 이것을 철저히 인정해야 다음 치료의 길이 열리게 된다.